<컨저링> 시리즈만큼 앞날이 창창한 프로젝트가 또 있을까요. 이 시리즈의 1편은 공포와 휴먼드라마의 조합에 구마사를 성직자라기보다 차라리 ‘직업인’에 가깝게 묘사하는 방법으로 호러 아래에 사실상 작은 장르(sub-genre)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수작입니다. 이는 <블레어 윗치> 이 후 <파노라말 액티비티>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파운드 푸티지'가 하나의 영화학 용어가 된 것과 견줄만한 성과죠.
이미 많은 아류가 나왔지만, 아직 제임스 완 만큼 이 작업을 완벽하게 해 낸 감독은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에드와 로레인 부부라는 실존 인물을 선점하는 데 성공했죠. 이들 부부가 갖고 있는 '실화'만 1만여 개. 무리한 속편만 꾸역꾸역 찍어대다 나중엔 제임스 완의 이름이 제작자 명단에서조차 빠져버린 감독의 전작 <쏘우> 시리즈와는 달리, <컨저링>은 8편, 9편, 심지어 10편 그 이상까지도 프랜차이즈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리즈입니다. <애나벨>이나 내년 개봉을 앞둔 <더 넌> 등 외전의 틈새 흥행은 덤이고요.
제가 이 시리즈의 밝은 앞날을 이토록 확신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임스 완과 시나리오 팀은 전편 <컨저링>이 성공한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이번 2편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그 성공 요인이라는 게 뭐냐,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강점은 관객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내숭을 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모든 편견과 혐오가 무너져가는 2010년대지만, 놀랍게도 공포영화에 대한 선입견은 비평가들 사이에 아직도 만연해있어요. <로즈마리 베이비>나 <엑소시스트> 등의 극히 예외적인 몇몇을 제외하면 공포영화는 아무리 만듦새가 좋아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상당수 공포영화는 공포 뒤에 뭔가 철학적인 상징이 숨겨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로즈마리 베이비>가 자기 몸에서 내 의도와 다른 생명체가 탄생하는 것에 대한 엄마들의 본능적 두려움을 묘사해낸 것처럼요. 물론 로즈마리 베이비는 성공적인 케이스지만, 이렇게 심오한 척을 하려다가 망한 사례가 실제로는 훨씬 많습니다.
<컨저링>은 그보다 훨씬 직설적이에요. 관객들은 귀신의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이고 제임스 완은 그걸 압니다. 그래서 예고편에 등장해 엄청난 화제를 낳고 의정부고 졸업식에 패러디되는 영예까지 얻은 '수녀 귀신'장면은 영화 시작한 지 5분 만에 나옵니다. 본론 들어가기 전에 먼저 관객의 니즈부터 잽싸게 만족하게 하는 거죠.
그 후의 리듬도 매우 경쾌합니다. 빙의의 타깃이 돼 영화에서 가장 고생하는 소녀 '자넷'이 침대에서 갑자기 거실 구석의 의자로 순간 이동을 해 관객을 놀라게 하는 장면의 재생시간을 확인해보니 13분이더군요. 그렇게 사사로운 사건들이 쌓여 마침내 자넷이 악령과 대화를 하는 데까지도 2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28분째가 되면 악령이 사람을 물고 애들 엄마가 보는 앞에서 서랍장이 날뜁니다. 134분짜리 영화의 초반 30분이 이렇습니다. 장르 팬들은 신이 날 수밖에 없죠.
<컨저링 2>가 이렇게 속 시원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여기 귀신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오면 없어지기'라는 공포영화의 아주아주 오랜 클리셰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악령은 도무지 숨을 생각이 없어요. 경찰이 와도 의자를 움직이고, 방송국 카메라가 찍어도 빙의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점은, <컨저링 2>는 어떻게, 그 '엄마를 부르면 사라지는 귀신'클리셰를 극복했나 하는 점입니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애초에 그 클리셰가 왜 생겼는지부터 따져봐야겠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을 설명할 수 없는 그 갑갑함과 단절감 같은 것이 하나의 장르 규칙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컨저링 2>의 초자연현상은 누가 있건 없건, 누구와 있건 계속 일어나요. 그러다 보니 상황은 종종 코미디가 됩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와 있는데 막상 본인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이 얼마나 민망합니까.
제임스 완의 영민함은 여기서 드러납니다. 감독은 이 코믹한 상황에서 웃음기를 빼려 애써 노력하는 대신 그냥 관객들과 함께 웃어버려요. 딸들이 자꾸 귀신 타령을 하는 게 귀신 부르기 게임판 같은 걸 만들어 노는 탓이라며 꾸짖는 중에 엄마의 눈앞에서 서랍장이 살아 움직이고, 종국에 다섯 식구가 짐도 없이 앞집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어찌 아니 웃을 수 있겠습니까. 도망치듯 집을 나서는 경찰의 모습은 또 어떻고요.
제임스 완은 여기에 전편의 요소 그대로, 귀신들린 집에 사는 가족들의 사연을 세세히 다루어 이들에게 ‘인간적으로’ 몰입토록 하고 에드, 로레인 부부의 사랑을 섬세히 묘사해 이야기에 온기를 불어넣는 연출도 이어갑니다.
제가 시리즈의 앞날을 긍정하는 것은 어쩌면 바람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컨저링>을 다른 호러와 구분해주었던 1편의 모든 요소는 2편에 고스란히 담겼고 없던 것이 생겼으며 몇몇은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3편을 기대하기에 충분하지요. 수녀 귀신 이야기를 다룬 외전 <더 넌>의 개봉이 올해가 아닌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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