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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_시대] ‘포퓰리즘 기본소득’ 누구를 위한 것인가?

조인 작가 승인 2020.03.12 14:53 | 최종 수정 2020.03.27 14:32 의견 0

‘코로나 19시대’가 계속 연장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를 수습해 4주 안에 정상 궤도에 올려놓겠다고 했다. 4주 차를 맞이한 지금, 다행히 확진자 증가 추세는 줄어들고 있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증가 수’가 줄고 있다는 것이지,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적 확진자 수는 여전히 증가세다. 팩트는 확진자 수는 늘어나고 있고, 전염의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경제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다. 인적 교류와 관련한 여행업, 관광사업, 운수업 등은 거의 폐업 지경이며, 소소한 모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에 카페나 주점 등도 다 문을 닫을 상황이다. 정부는 추경예산을 늘려 대처하겠다고 하지만, 졸속 시행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가운데, 몇몇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기본소득’을 언급하고 있다.

존 주디스는 저서 <포퓰리즘의 세계화>에서 “앞으로 정치는 ‘금권 정치’와 ‘포퓰리즘’으로 이뤄질 것”이라 주장했다. 전자는 흔히 아는 ‘가진 자들을 위한 정치’를 의미하고, 후자는 대중 선동적인 공약을 중심으로 유권자들을 ‘혹’하게 하는 정치꾼들의 득세를 말한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19’로 인해서 ‘포퓰리즘’, ‘금권 정치’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들고 있다.

◇포퓰리즘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아무 일 하지 않아도 국민이거나 시민이기에 ‘주는 돈’이다. 실제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국가나 도시는 있다. 그 효과 또한 긍정적이어서 기본소득 확산 주장은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제도라 하지만, 이런 기본소득 제도를 실행하는 국가나 도시들이 어느 날 갑자기 우발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했을까?

그렇지 않다. 기본적인 의결과정이 있었고 시민이나 국민투표 등을 통해서 실행하게 된 것이다. ‘기본소득’을 준다는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중요하다. ‘돈’을 주면 무조건 좋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세금’이 늘어날 수도 있고, 기존 혜택이 줄어들 수도 있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효과, 그리고 현금을 받는 대신 포기해야 할 혜택들이 있다. 이런 플러스와 마이너스 요소를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기본소득’과 관련한 보수와 진보 논쟁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전자는 ‘무임승차자’와 ‘도덕적 해이’ 등을 제시하면서 반대할 것이고, 진보는 ‘평등’과 여러 실험의 긍정적인 사례를 근거로 반격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는 ‘빨갱이’ 논쟁도 불붙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다한 논의와 토론, 의결과 실험 과정을 거치고 나서 국민투표나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청년 기본소득?

이미 경기도와 서울시에서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제한적’으로 지급한다. 기본소득이라고 명명하기에 빈약한 수준이다. 모든 청년에게 주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의 기준에 따라 지급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십분 발휘돼 실행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명 자체도 과대 포장되고 선동적인 명칭이다. 지급과정 역시 전혀 민주적이지 못했다. 대상이 된 청년들은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아니다. 기본소득을 받아서 기분이 좋다면, 이미 구별된 제도다. 모두가 똑같이 받는 것이 ‘기본소득’인데, 왜 기분이 좋아지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더 나아가 빚진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이런 촌극은 ‘기본소득’의 개념 자체를 포퓰리즘화 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최적의 후보자라 하더라도 지지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코로나 19 기본소득’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김경수 지사가 말한 ‘일시적인 기본소득 100만 원’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일종의 대출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공짜로 보이지만 절대 ‘공짜’가 아니다. 내년이나 후년에 세금으로 환급해야 한다. 부자들한테 과세해서 세금을 충원한다면, 좋은 실험이 될 수 있지만 ‘금권 정치’가 판치는 세상에 재벌들한테 과세할 수 있을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세계 민주주의 선봉 국가라는 미국이 살린 건 파산한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금융 기업이었다. 또한 당시 대통령이 혁신 정치인이라 불린 버락 오바마였다. 그조차 보수도 진보도 환영하지 못할 구제정책을 구현했다고 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할까? 당장은 ‘포퓰리즘 기본소득’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이후 세금으로 환원하게 할 것이다. 현 정부가 부자들에게는 무상으로 추경예산을 지원하듯이 환급 과정에서 부자들의 부담을 낮출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당장 위기를 극복하는 데 1인당 100만 원은 꽤 괜찮은 금액이다. 4인 가구 기준으로 400만 원이라면, 1개월은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소득이기 때문이다. 이 금액을 나중에 조금씩 갚아간다고 생각해도 크게 나쁜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소득’이라고 명명했다면, 대출과는 구분해야 한다. 저리 대출을 ‘기본소득’이라고 하는 건 언어도단(言語道斷)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이야기가 왜 등장했을까?

첫째, 4월 선거용이다. ‘코로나 19’ 여파는 여당에 악재다. 정부의 대처가 신속 정확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신천지’로 여론몰이 한다고 해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완전히 회피할 수 없다. 따라서 전염병으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역시 가장 좋은 해결책은 역시 현금이다. 100만 원이 가족 수만큼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자. ‘코로나 19’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100만 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의 ‘기본소득’은 ‘금권 정치’와 같은 말이다.

둘째, 개인의 정치적 목적이다. 김경수 지사,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에 찬성했고, 이어서 곧 박원순 시장까지 ‘기본소득’에 찬성할 것이다. 각자의 상황을 보면, 김경수 지사는 지사직 임기 이후를, 이재명 지사는 선거법 위반 논란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코로나 19’와 ‘기본소득’을 활용할 것이고, 박원순 시장 역시 시장 임기 이후를 생각할 것이다.

셋째, 책임 회피다. 고작 100만 원으로 국민의 고통을 덮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포퓰리즘’ 성격이 강한 ‘기본소득’ 제안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의 불만이 커지고 ‘기본소득’ 지급이 대세라고 여겨지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꿔 말해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면, 돈을 나눠주는 위로회를 열어 주는 것이다. 기분 좋은 잔치에 초 치려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포퓰리즘’이고 ‘금권 정치’이다

여기에는 민주주의의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포퓰리즘을 대세로 인정하고 물적자원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한다. 국민, 시민 역시 과정보다는 당장 피부에 닿는 해결책을 좋아한다. ‘코로나 19’로 만신창이 된 개인과 소상공인들은 당장의 현금 수혈이 절실하니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포퓰리즘’과 ‘금권 정치’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개념이다. 정부의 무책임한 대처와 책임 회피로 시작한 ‘코로나 19’가 ‘포퓰리즘 기본소득’으로 마무리된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경로를 후진하는 꼴이 될 것이다. 달리는 도로에서 후진한다는 건 곧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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