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거버넌스(5)] 거버넌스의 등장: 서구 복지 국가의 한계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08.21 13:26 의견 0
거버넌스는 ‘키를 조종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Kubernan’에서 유래된 말이다.  (출처: 픽사베이)

필자가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된 건 90년대 말이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는 냉전체제 종식 이후였고, 국내도 군부독재 혹은 그 잔류당의 집권이 끝나고 문민정부(故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서 국민의 정부(故 김대중 전 대통령)가 수립된 시점이었다. 

대학가에서도 뜨겁게 날아다니던 ‘꽃병’(*화염병을 화병, 꽃병이라는 은어로 불렀다)이 열정적인 날개짓을 서서히 접었고, 대학이 취업학교로 변신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IMF 이후 학생 운동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달렸다. 이와 동시에 <제3의 물결> 등의 서적을 통해 ‘정보화’라는 단어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뒤덮었다. 

1990년대는 정보화뿐만 아니라 인터넷이 일반인에게도 급속도로 보급돼 정보 획득 방법이 다양해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런 일상생활만 보아도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런 시기에 ‘거버먼트’를 대신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등장한 건 우연이 아니다. 시대적인 상황이 새로운 치리기구를 간절히 소원한 것이다. 
 
거버넌스는 ‘(키를) 조종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Kubernan’에서 온 것으로 거버먼트와 유사하게, 때로는 거버먼트와 같은 의미의 단어로 사용되었으나 독일의 정치학자 칼 도이치(Karl w. Deutshcht)에 의해 ‘키잡이, 수로 안내인’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 ‘Kubernetics’를 본 딴 말인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를 정치에 적용해 거버넌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즉 정부가 혼자 키를 잡지 않고, 시민 사회와 키를 나눠 잡고 역할을 분담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아울러 형태도 정부와 시민 사회의 관계를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로, 위계적인 형태에서 네트워크 형태로의 변화를 말한다. 

그렇다면, 왜 세계사에서 주인공 역할을 감당하던 거버먼트는 거버넌스로 변해야 했을까? 

서구의 상황을 기준으로 볼 때,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복지 국가의 위기, 그리고 1990년대 이후의 정보화·세계화·지방화 등의 사회 변화 과정에서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거버넌스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않고 정부와 시민 사회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국가가 다양한 구성원의 니즈를 해결해 주기 힘들어졌다는 한계 인정이며, 따라서 새로운 해결방법이 필요하다는 걸 선언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복지국가 재정위기가 거버넌스 시스템을 가속화  (출처: 픽사베이)

그렇다면, 그 원인을 간단히 따져보자.

첫째, 서구를 기준으로 할 때 복지국가 재정의 위기이다. 알다시피, 서유럽의 복지 국가는 모든 국가의 종착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주택 문제, 교육 문제, 노후 문제(의료를 포함)가 모두 해결된 국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계속 추구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단, 복지국가의 전제는 넉넉한 재정이 충분조건을 이루어야만 한다. 그러나 자본이 국외로 빠져나가고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생산력이 떨어지고, 후세대가 전(前) 세대를 부양해야 할 부담이 과중해지기 시작하자, 점차 복지 정책을 유지할 재원이 부족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기존 거버먼트 체계의 변화를 통해 효율적인 방법을 마련하자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특정한 혜택을 제공하다 보면, 불필요한 예산이 반영될 수 있다. 그러나 거버넌스 시스템에서 사전 논의 후 집행한다면, 필요에 의한 공급이 더 작은 단위(지역)에 반영될 수 있다.

둘째는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정치체제(정당 정치)는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었으나,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말처럼 부패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부패를 바탕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정치 생태계는 국민의 무관심을 가져왔다.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정치행태는 새로운 사회 변화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무시한 것이고, 당연히 미래에 대한 만족할만한 전략도 내놓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곧 투표율로 이어졌는데, 최근 한국 투표율만 보더라도 투표율이 87년 이후 계속 떨어지다가 최근에야 소폭 상승했다. 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89.2%의 투표율에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63%까지 떨어졌었다). 

셋째로 국가 간섭이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았다. 복지 국가를 비판적으로 본다면 “유모 국가(Nanny state)”처럼 보일 수 있다. 복지를 이유로 국민의 일상까지 침투하고 간섭·통제해서 자발성과 자율성을 해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물론, 복지 국가의 장점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기 때문에 국민 개개인이 걱정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는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이 중요해졌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를 위해 자유를 제한받는 상황은 견디기 힘든 족쇄였다. 아울러 과거처럼 국가가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개인은 과거처럼 국가의 권위에 고개 숙일 이유가 없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새로운 시대는 거버먼트를 대신할 다른 통치 시스템을 찾아야 했다. 이때 등장한 방식이 거버넌스이고, 그 차이는 전문관료 집단에 모든 걸 위임한 ‘베이비’ 국민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자결(自決)할 수 있는 ‘어덜트’ 국민으로의 성숙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는 힘든 과정은 지금까지도 지속하고 있다.

이처럼 거버넌스는 서구 복지 국가의 한계를 바탕으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 흐름의 당연한 요구이기도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