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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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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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과 우리나라는 닮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두 나라는 재벌 대기업에 유리한 경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두 나라 정부는 세금이나 규제, 성장 전략을 재벌 대기업 중심으로 설계했습니다. 자본을 집중시켜서, 경제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조직한 것입니다.
스웨덴에서는 무려 192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부터, 재벌 대기업은 각종 혜택을 받으며 중소 자본을 흡수하고, 수출을 주도했습니다. 지금도, 두 나라 경제에서 몇몇 재벌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두 나라 정부는 노동자를 다르게 대우했습니다.
스웨덴 정부는 재벌 대기업에 각종 혜택을 몰아주는 대신, 노동자의 힘을 키웠습니다. 노동조합은 대기업과 정기적으로 협상하며 안정적인 임금을 보장받았습니다. 정부는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적절한 직업 교육과 높은 실업 급여를 보장해서, 혹여나 해고되더라도 곧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왔습니다. 사회적인 스웨덴은 노동자도 경제성장의 성과를 함께 누릴 수 있는 구조를 갖춘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노동자를 외면했습니다. 1950년대에 우리나라 정부는 꽤나 선진적인 노동법을 도입했습니다. 하루 8시간 근무제나 생리휴가도 그때 도입되었습니다.
문제는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노동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노동시간은 가혹했고, 임금은 너무 낮았습니다. 정부의 방임 하에, 재벌 대기업은 다른 기업을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삶도 흡수하며 덩치를 키웠습니다.
1970년 11월 13일에 전태일 열사가 스스로 몸을 불태우며 요구한 것은 계급 혁명이나 부자 증세가 아니라 '법대로 해달라'였습니다. 이 절절함은 최근까지도 관철되지 못했습니다. 경제는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노동자는 그 결과를 함께 누리지 못했습니다.
흔히 좌파는 재벌 대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여깁니다. 재벌 대기업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져간다는 것입니다. 재벌 가문에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좌파는 재벌 개혁 이슈를 꺼내듭니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재벌 대기업이 아닙니다. 노동자의 처지에 무관심한 정부입니다. 일부 음모론을 좋아하는 좌파는 마치 재벌 대기업이 경제력으로 정부를 움직여서 노동자를 탄압했다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재벌 대기업은 정부의 눈치를 보며 울며 겨자 먹기로 정부 사업에 자금을 대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관계는 박근혜 정부 때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애초에, 재벌 대기업은 옛 군사정부의 투자와 보호 덕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정부가 연기금 등을 통해 대기업 지분의 상당부분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예전부터 재벌 대기업과 노동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않았습니다. 그게 문제였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벌 개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은 재벌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아니라, 노동자의 힘이 닿지 않는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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