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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논단] 불공정 사회 만드는 구제 정책

칼럼니스트 이완 승인 2022.07.20 13:34 의견 0

정부가 부채 부담을 분산시킬 수는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부채를 탕감해 주거나 신용을 회복시켜 주는 정책은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데에 도움됩니다. 너무 많은 부채 때문에 위험에 처한 은행이나 기업을 방치해서 경제 전체를 위태롭게 하기보다는, 정부가 구제 금융으로 위험 부담을 사회 전체로 분산시키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개인이 자초한 위험을 분산시키는 정책이 불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공정함은 사회가 따라야 하는 유일한 가치가 아닙니다. 때로는 자유와 연대를 지키기 위해, 또는 더 큰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어느정도' 불공정한 정책을 도입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이 자초한 위험 부담을 사회화하는 정책 자체를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순전히 개인이 자초한 위기를 정부가 대신 감당해 주는 상황이 아닙니다. 정부가 물가를 제압하기 위해 금리를 올렸습니다(왜 올렸는지는 납득 못하겠습니다).

그 정책 탓에 본의 아니게 이자 부담이 늘어나 버린 사람이 생겼습니다. 정부 정책 탓에 불의의 피해자가 생겼으니, 정부가 구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기간 시설을 짓기 위해 보상을 주고 토지를 수용하는 것과 유사한 논리입니다. 여러 환경 요소와 정부 정책 탓에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제해 주는 정책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입니다.

도덕적 해이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부의 구제 정책은 위기 상황에 급하게 투입되는, 일시적인 조치입니다. 이런 조치를 보고 나중에도 탕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넘겨 집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있습니다.

설령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또 빚을 져서 투자할 만큼 신용을 회복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설령 신용을 회복한다 하더라도, 그만큼 재산과 소득이 생겼다는 의미이니, 정부의 구제 대상에 다시 포함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애초에, 정부가 다수의 여론을 의식한다면 또 다시 구제 대상을 확대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개인회생제도를 도입할 때에도 도덕적 해이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개인회생제도는 많은 사람을 구제하면서도 특별히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지 않아서 그 쓸모를 인정받았습니다. 이번 대책은 개인회생제도처럼 사회 구조를 바꾸는 수준의 개혁이 아닙니다. 정부의 구제 정책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 올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막연하게 인간을 불신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무려 125조 원이라는 큰 규모의 예산을 계획했지만, 그 예산을 모조리 정부 재정으로 충당할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애초에 작은 정부에 집착하는 윤석열 정부가 그런 엄청난 재정을 동원할 리가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계획은 소위 말하는 관치 금융의 힘으로 사회 전체가 아니라 금융권 내에서만 위험 부담을 분산시키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 은행의 빚을 저 은행으로 옮겨서 돌려막는 정책입니다. 충분한 '위기의 사회화'도 아닌 셈입니다. 실제로 투여되는 정부 재정의 규모를 보면, 마냥 국민의 혈세로 투자에 실패한 사람을 구제하는 정책이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윤석열 정부의 구제 정책은 우리나라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경제 전반에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의 손에 의해 탄생하고 성장했습니다. 그 영향 탓에, 어떤 민간 자본도 정부의 영향력 밖으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구제 정책은 그 근거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정책이 필요한 근거가 정당한가와 정책이 구제하는 대상이 적절한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금리 인상 탓에 위기에 빠진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일확천금을 노리고 무리하게 가상 화폐와 부동산에 투자한 청년까지 구제할 계획입니다.

요즘 세상에 갚을 능력을 확인하지 않고 선뜻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은 없습니다. 빚을 졌다는 말은 곧 금융기관으로부터 신용이 있다고 인정받았다는 말입니다. 신용을 인정받았다는 말은 곧 재산이나 소득이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금리 인상 탓에 피해를 입은 빚투족와 영끌족은 빈곤한 청년이 아니라 재산이나 안정된 일자리가 있는 청년일 가능성이 큽니다. 삶에 치여 바쁘게 살아가거나 절망에 빠져서 아무것도 못하는 청년은 그런 도박에 돈을 들이부을 경제적, 심리적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보통 '위기의 사회화'는 위험 부담을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을 여유 있는 사람이 함께 거들어 주는 연대 정책을 의미합니다. 정말 위험 부담을 혼자 감당할 수 없는지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심지어 금리 인상 탓에 늘어난 이자를 넘어서 그 이상을 지원해 준다면, 이는 '어느정도' 불공정한 정책이 아니라 '지나치게' 불공정한 정책입니다.

이번 구제 정책의 문제는 관치 금융이라는 점도 아니고,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점도 아닙니다. 과하게 불공정해서 괜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는 점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을 강조하며 집권했습니다. 그런데 충분한 해명도 없이 불공정한 정책을 가져 온다면, 정권의 근간을 스스로 흔드는 셈입니다. 역차별 논란을 해소하고 정부를 향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정부는 구제 대상을 보다 공정하게 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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