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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만드는 공간, 함께 만드는 동네(5)] 5분 생활권의 활성화–거점공간형 DIT

윤준식 기자 승인 2022.08.12 00:02 의견 0

오롯컴퍼니 이종건 대표와 DIT에 대해 하나씩 풀어가고 있습니다. 4회의 축제형 DIT에 이어 5회에서는 지역 공동체가 원하는 거점공간을 만들어가는 거점공간현 DIT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윤준식 편집장(이하 ‘윤’): 이번에는 ‘거점공간형 DIT’ 이야기를 주로 해봤으면 하는데요... ‘거점공간형 DIT’는 뭔지, ‘축제형’과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주신다면요?

오롯컴퍼니 이종건 대표(이하 ‘오롯’): 여기서 제시하는 것들은 관공서나 도시재생현장센터, 마을공동체센터에서 진행하는 공간들을 중점으로 모델화한 네용입니다. ‘거점공간형 DIT’는 주민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공동체가 형성되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유휴 공간과 접목시켜 주민 사랑방 형태의 거점 공간들을 만들게 되는데요. 공간을 만들 때 주민들을 모아서 기획 단계부터 시작해 기술 교육 등 거점 공간이 창출되기까지의 일련의 프로세스를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DIT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습니다.

도시재생과 관련한 강의를 진행중인 이종건 대표. 진정한 주민 거점공간이라면 주민들이 5분만에 접근할 수 있는 곳마다 존재해야 한다. 5분 생활권의 활성화는 마을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오롯컴퍼니 제공]


윤: 중소 도시로 가면 폐가나 공가가 많잖아요? 이 공간들을 활용할 방법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얘기가 많죠. 그래서인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유휴 공간들을 새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대출 형태의 자금지원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오롯: 방식은 조금씩 달라도 목표점은 비슷합니다. “비어진 유휴 공간을 어떻게 하면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주민들을 모이게 할까?” 공간은 예쁘고 클수록 좋지만, 막상 공간과 주민 사이에 괴리감이 있다면 안 되겠죠. 실제 비싼 돈을 들여서 유휴 공간을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지은 곳도 있어요. 그런데 정작 주민들에겐 부담스러운 거죠. 마을 사람들끼리 활용하기에는 옛날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처럼 가깝고 편하게 갈 수 있게 만들어도 충분한데 말이에요. 심할 경우, 전기세가 많이 나오니까 야간에 못 쓰게 하는 등의 제약도 있고요.

저는 거점 공간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이용가능한 시간에 장벽이 존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돈이 적게 들어가는 빈 공간에 만드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유휴 공간은 자본의 선택을 못 받은 곳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비용을 적게 들여서 공간을 형성할 수 있죠. 전기세가 많이 나와서 안 되고 시설이 망가지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더 쉽게 고칠 수 있고 접근 방식도 높아야 하는 거죠.

비전문적인 분들이 시공하는 거니 “삐뚤삐뚤해도 괜찮아”라는 DIY 정신이 통용되는 공간이어야 하고, 노후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덜 가졌던 곳이 좋죠. 기존의 도시재생에서 폐가 등이 점점 많아지면서 주민들도 외부로 빠져나가는 현상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공간을 고쳐나가 보자는 목표를 가졌던 거거든요.

처음에는 지역의 시니어분들이 이런 걸 주도하지만, 이 시스템이 잘 자리 잡힌 지역은 청소년들도 보고 따라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유휴 공간들이 개선되고 활성화됩니다. 저는 이런 데서 DIT의 가치가 파생된다고 생각하고, 거점 공간형의 경우 10~20평 정도의 유휴 공간을 목표로 잡습니다.

학교내 유휴공간에 자신들의 거점공간을 조성중인 청소년들 (오롯컴퍼니 제공)


윤: 굉장히 넓은 공간이 아니어도 되네요? 거점 공간과 랜드마크는 다르니까요.

오롯: 많이 다르죠. ‘축제형 DIT’는 랜드마크화하기 위해 벌이는 거고, 공간의 활성화가 필요하니 공간이 너무 작으면 효과가 적겠죠. 그래서 ‘축제형’은 더 넓은 공간에 더 다양한 사람이 오게 하는 데 목표점을 둬요.

‘거점공간형’의 경우에는 실제 그 공간 안에 모일 사람들을 위한 규모로 짓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거기에 목표점을 두고 다양한 센터들과 이를 개인적으로 희망하는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윤: 10~20평 정도의 공간이 좋다고 특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오롯: 저는 ‘5분 생활권’을 좋아해요. 주민들이 자주 모이고 쉽게 모이려면 오가는 동선상에 공유 공간이 있어야 해요. 즉, 10평, 15평 공간이 그 마을에 딱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여러 개 있어야 더 좋죠. 저는 이 5분 생활권 내에서 모일 수 있는 주민이 20명 이내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체적으로 다 모이면 더 많겠지만, 그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고 실제 모일 인구가 5분 생활권 내에서는 20명 이내일 거라고 본 거죠. 필요하다면 또 만들면 되고요. 이러면 관리하기도 편하죠. 넓으면 관리하기가 힘들어요. 저는 마음 맞는 사람끼리 공간을 잘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적정 규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 5분 생활권으로 구상했을 때 10~20평 정도면 주민 20명 정도가 모여서 함께 활동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기 충분하다는 거네요. 괜히 크고 넓은 공간으로 만들려다 불발되는 것보다 남는 공간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오롯: 외지인한테 자랑하려고 만든 공간이 아니라, 주민들이 쉽게 방문해서 편하게 쓸 공간이어야 하니까 주민에게 최적화된 공간이 필요한 거죠.

윤: “자기 집을 자신의 손으로 짓는 것처럼, 우리의 공간을 우리의 손으로 만든다.” 거점 공간형 DIT의 취지가 정리되네요. 내 공간을 나 혼자 만들면 DIY, 우리 공간을 같이 만들면 DIT...

오롯: 네, DIY를 하는데, 같이 만드니까 DIT가 되죠.

목재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시공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 [오롯컴퍼니 제공]


윤: 함께 쓰는 공간이니까 그 DIT의 구성원도 곧 수요자가 되는 거네요. ‘축제형’은 “나는 목공이 즐거워, 목공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한번 좋은 시간 가져보자”하며 즐기며 참여하는 거라면, ‘거점공간형 DIT’는 공간을 쓸 실제 수요자가 와서 동참하는 거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거점공간형’은 상황통제 면에서 ‘축제형’과 비교해 필요한 인적자원 규모가 다를 것 같아요.

오롯: ‘축제형’은 주로 다양한 지역에서 모집을 하고요. ‘거점공간형’은 이미 활동 중이던 실제 주민들이 공유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 매칭되는 경우가 많아요. 안전통제 측면은 축제형과 같습니다. 거점 공간형의 경우도 한 10~15명의 주민들과 함께 교육을 진행하고요. 그 공간을 직접 필요로 해 쓴다는 점에서 적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6명 정도로 DIT 마스터를 구성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윤: 어떤 면에서는 도시재생대학의 집수리 교육이 방금 말씀하신 거점 공간형 DIT와 유사성이 있어 보여요. 집수리 교육도 일종의 DIY를 가르치는 거고, 집수리 교육을 함께 수강한 분들이 한 거점 공간에 투입되면 이것이 바로 DIT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오롯: 집수리와 관련한 얘기가 나올 때 ‘DIY’, ‘DIT’, ‘집수리 지원사업’ 이렇게 세 용어가 가장 많이 언급되는데, 이 세 가지의 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요.

도시재생에서 진행하는 집수리 지원사업은 내가 사는 건물이 너무 노후되어 DIY 정도로 개선이 안 되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수준일 때 진행하는 사업입니다. 전문가가 투입돼 고쳐야하기 때문에 요구되는 수준도 높고, 비용도 많이 들죠. 그래서 실제 시공회사가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아 공간을 고쳐줍니다. 개인 재산권도 복잡하게 포함되기 때문에 지원사업으로 풀고 있고요.

DIT는 어떻게 하면 유휴 공간에 공유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이게 할지, 그 안에서는 무엇을 함께 할지 등 커뮤니티 디자인 접근 방법을 갖고 있죠. 집수리와 DIT, 두 가지가 혼재돼 있을 수도 있고, 서로 접목시킬 수도 있지만, 그 시작점 자체는 다르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집수리 지원사업을 원하는 분들을 모셔서 DIY를 한다고 집수리가 되지는 않으니까요.

DIT는 어떤 사람을 모으냐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DIY가 충분히 가능한 공간을 잘 선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폐가나 국토부에서 관심을 두는 ‘멸실 수준의 공간’도 DIT가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정도 공간이라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DIY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도전해 진행하는 것이 맞겠죠.

저 같은 경우도 건축법상 문제가 없는 조건의 ‘멸실 수준의 공간’을 찾고 있어요. 대도시에서 공간을 구하려면 비싸잖아요. 그런데 그런 공간은 서울에서 한 평 값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비용으로 건물을 살 수 있더라고요? 이런 공간을 시간을 두고 고칠 때, 사람들을 모집해 교육을 병행하며 진행할 수도 있어요.

그런 공간에 사람이 제일 많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공간을 치우고 정리하는 간단한 작업을 반복해야 할 때거든요. 앞으로 공간이 어떻게 활용될지 홍보해야 하고 일할 사람도 많이 필요하기에 축제 형식의 프로그램을 열 수도 있고, 교육 방식으로 풀어낼 수도 있어요. ‘DIY’, ‘DIT’, ‘집수리 지원사업’ 등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나누고, ‘DIY 교육’, ‘축제용 DIT’, ‘공간형 DIT’ 등으로 수단을 달리해 사용하는 거죠.

[오롯컴퍼니 제공]


윤: 실제 경험하신 ‘거점공간형 DIT’는 어떤 케이스였나요?

오롯: 지자체 또는 도시재생지원센터와 협업해서 진행한 사례가 3건 있습니다. 실제로는 DIT에 대한 문의가 많이 오는데, 집수리 지원사업으로 풀고자 하는 경우는 거절했어요. 그 공간을 쓰고자 하는 주민들, 기술 이전을 받고자 하는 명확한 모체가 있는 취지가 명확한 경우에만 진행했죠.

윤: 아마도 집수리를 받은 분들이 유휴 공간을 같이 꾸며서 마을을 위한 공용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취지로 집수리 교육과 병행하는 DIT를 부탁하셨을 것 같아요.

오롯: 저희 <오롯컴퍼니>가 하는 DIT는 맞고 다른 방식은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양한 방식이 필요하죠. 그런데 스스로 만들어갈 주제를 갖고 있는 것과 실제 집수리 분야에 요구되는 전문성에는 갭이 있죠.

DIY는 일종의 ‘응급처방’이에요. ‘엄마의 약손’이나 공공장소에 비치된 ‘CPR 장비’같은 거죠. 얼마든지 주민들이 배워서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DIT는 건강을 증진하고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같이 운동을 하자’는 제안이죠. 그런데 집수리 지원사업은 ‘응급의료센터’에요. 포인트가 아예 다르고, 필요성이 달라요. 상황에 따라서 어떤 차이점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 뭐가 필요한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하는데, 응급의료센터에서 명상하고 요가를 하겠다고 하면 안 맞는 거잖아요.

윤: 오히려 지역 주민을 위한 목공교실 이런 쪽이 DIT 문화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나요? 소품 제작교육에 많이 치중돼 있긴 할 테지만요.

오롯: 전체적인 인테리어에 대해서도 얘기하면서 같이 쓸 테이블이나 의자를 만든다면 DIT로서 가치가 있고 DIT 프로세스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만, 각자 자기 집에서 쓸 의자나 테이블을 만든다면 DIT가 아닌 거죠.

서울전자고등학교에서 진행된 DIT [오롯컴퍼니 제공]


윤: 어떤 면에서는 DIY와 DIT가 서로의 영역을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도 있는데, 명확히 구분하시네요.

오롯: 그 구분이 딱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근데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DIY 교육을 10회 받으면 집수리 회사를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응급처방법을 잠깐 배워서 병원을 설립할 수 있을까요?

사실 시공 자격증도 마찬가지예요. 도장기능사 자격을 땄다고 전반적인 페인트 시공을 모두 할 수 없는 거고, 자격을 따고 난 후에도 깊이 있는 전문교육과 다양한 방식의 훈련을 쌓아야 하죠. 의대를 졸업하고도 괜히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잖아요. 집수리 회사를 설립할 목표를 세운 주민들을 교육해야 하는 거라면, 지금 고용노동부에서 NCS 과정으로 진행하는 집수리 교육 과정을 참고하시고 그 교육기간이 6개월인 이유를 생각해보시면 된다고 답변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집수리 지원사업과 집수리 봉사와 연계된 일도 경계하는 편이에요. 봉사활동은 좋은 마음으로 하는 것인 만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야 해요. 곰팡이가 엄청 피어 있는 곳인데, 집수리 봉사로 접근해 1회성 시공에 나서면 한두 달 있다가 또 곰팡이가 생길 경우 곤란한 일이 벌어져요. 그러면 실제로 집수리를 하려 했던 분은 한 번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지원을 더 못 받는 일이 벌어져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치는 거죠.

이와 비슷한 사례를 많이 접하는데, 봉사활동도 제대로 해야 좋은 일이 되고, 제대로 된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함께 해야 봉사를 받는 분들에게도 실제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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