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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만드는 공간, 함께 만드는 동네(2)] 마을공동체를 위한 커뮤니티 디자인 기업의 길

정리: 박종민 기자 승인 2021.10.26 00:00 의견 0

도시재생 스타트업 오롯컴퍼니 이종건 대표님과 함께 하는 DIT 이야기, 그 두 번째.
오롯컴퍼니의 초창기 이야기 속에서 도시와 마을, 공동체에 대한 생각, 활동가 영역의 일을 비즈니스로 정립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커뮤니티 디자인 기업이 도시 내에서 일정한 역할을 감당하고, 이를 통해 마을 공동체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어떤 활동이 필요할까요?
정답은 없지만, 해답을 내기 위한 노력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시죠.

초창기 구축했던 오롯스페이스 모습 (오롯컴퍼니 제공)

윤: 1회가 해피엔딩으로 끝났는데요... 주민으로부터 주문을 받아서 처음에는 80만원으로 20만원 적자를 보는 시공을 했지만 3천만원까지의 매출을 올렸다고 하셨어요. 처음에 오롯컴퍼니를 설립을 하고 커뮤니티디자인을 하고자 하셨는데, 뭘 하셨길래 “오롯컴퍼니가 만들어 놓은 공간을 보니 우리 가게를 꾸며달라” 이렇게 오더가 들어온 건가요?

오롯: 당시에는 ‘커뮤니티디자인’이란 용어를 알지 못했어요. 주민들이 뭘 원하는지 궁금했던 것이 시작이에요. 저는 건축가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원하는 건축설계를 하고 싶었고 회사까지 설립하게 됐으니 사업을 하면서도 커뮤니티디자인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을 만났어요.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사람들이 어떤 욕망을 가지고 사는지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동네에 아지트를 만들었는데 그 당시 저는 공간시공을 인테리어 기법으로 배운 게 아니라 모형을 만드는 것처럼 공예하듯 했거든요.

윤: 1:1스케일 모형을 만들 듯이요?

오롯: 저는 컬러를 다채롭게 쓰는 걸 좋아해서 전역하자마자 컬러리스트 기사 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색감을 화려하게 쓰고 싶었어요. 공간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주민들이 계속 방문 하면서 비싸지 않게 꾸몄다고 하니까 “우리도 꾸며줘” 이렇게 했던 거죠. 마음에 들었나 봐요.

윤: 근데 어떤 공간을 운영했길래 그걸 보고 “우리 공간을 만들어줘” 라는 얘기가 나왔나요?

오롯: 우리 아지트에서 주민들하고 회의도 하고 면담도 하고 술도 마시고 했거든요. 자연스럽게 회의하러 왔다가 여기 저기 “이종건 코디가 직접 만든 거에요?” 물어보니 “제가 만들었죠”라고 답했죠. 그냥 동네 형들이 “종건아, 이거 만들어 주면 안 돼?” 라고 하는 식으로 동네 동생으로 관계 맺으면서 무엇인가 만들어 주곤 했어요. 저는 모형 만드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재료비 받아서 내가 만들고 싶은 거 만든다는 느낌으로 했던 거죠.

윤: 아지트를 만든 이유가 오롯컴퍼니가 처음 설립되고 나서 앞으로 해야 될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한 장소였던 거군요?

오롯: 사업적으로 접근을 했던 게 아니라 저 스스로 연구자적인 성격으로서 순수하게 접근했고 그게 진심이 통했는지 순수하게 다가와 주셨고요. 주민들과 그런 관계들 속에서 시장에서 일 하시는 분들부터 시작해서 주민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싶어서 5개 정도의 공동체에 가입했어요. 자율방범대부터 시작해서 시민 연대, 여성, 가족, 청소년 단체 등 다양한 단체 속에서 활동하느라 엄청 바빴어요.

주민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지며 커뮤니티를 형성했고 주말에는 종교행사를 갔죠. 저는 종교행사에 가서도 솔직하게 얘기합니다. 제가 신앙심이 깊은 건 아니지만 여기에 괜찮은 청년들이 많다고 해서 왔는데 다녀도 되나요?”그렇게 물어보면 당연히 다니라고 하죠. 그렇게 지역 주민들과 교류를 하면서 연계를 맺고 공감대를 쌓아갔습니다.

초창기 구축했던 오롯스페이스 모습 (오롯컴퍼니 제공)


윤: 1회차에서 “도시재생센터에서 발굴된 주민으로서 코디네이터 활동을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코디네이터라기보다 연구원으로 생활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2회차 이야기도 기업을 설립을 했는데 기업인답게 행동하지 않고 시민활동가처럼 생활하신 거잖아요.

오롯: 코디네이터 시절에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스스로 연구하는 배움의 시간이었고, 이후에는 “습득한 것을 써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한 구조를 만든 거죠.

윤: 사회적 경제 실험이라든가 1:1 모형 만들기처럼 구성해보고 싶은 기업이 된 거네요?

오롯: 그렇게 목표를 가졌던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습니다.

윤: 그런데 회사 이름 하고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녹음을 하고 있는 이 공간도 ‘D스쿨’이죠. 여기보면 “오롯하다” 라고 회사 이름이 들어간 현판이 걸려있거든요?

오롯: ‘오롯’이라는 말이 순 우리말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온전하다”라는 뜻이거든요. 회사 이름을 이렇게 짓게 된 이유는 제가 생각한 것을 흔들리지 않고 지속발전해 나가고 싶어서 ‘오롯’이라고 정했고, 한편으로는 우리 회사가 글로벌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영어로 표현하기도 좋을 것 같아서 ‘오롯’이라고 지었습니다.

‘컴퍼니’라는 말은 컴퍼니에 “빵을 나눠먹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어서 우리말로 표현하면 “한솥밥을 먹는다”는 거랑 똑같은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보통은 우리가 기업이라고 표현하는 공동체성을 내포한 그런 회사로 만들고 싶어서 ‘오롯’ 뒤에 ‘컴퍼니’를 붙여서 ‘오롯컴퍼니’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저희가 어떤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저희가 갈 길을 가니까 사람들이 밈(meme)처럼 “참 오롯스럽다” 자꾸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오롯' , '오롯답다', '오롯스럽다' 이런 표현을 계속 쓰다 보니까 ‘그래, 우리는 오롯하게 가자.’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름이 지어지게 된 겁니다.

D스쿨 벽면의 현판 (사진: 윤준식 기자)


윤: ‘스스로 만드는 공간, 함께 만드는 동네'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오롯컴퍼니의 역사를 이야기 하게 된 것 같네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초창기 도시재생에서부터 단련되어 시공회사와 커뮤니티 디자인을 지향하는 기업 활동을 하시면서 그 과정 속에서 거쳤던 여러 가지 일들이 DIT로 녹아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오롯컴퍼니가 지나왔던 길들을 계속 말씀해 주십사 계속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면 처음에 주민조직화의 형태로 회사 활동이 시작이 된 거잖아요.

오롯: 거대하지는 않지만 제가 만들고 싶었던 공동체 작업들을 하면서 주민조직화라는 이름을 붙이면 수백 명의 큰 숫자일 것 같지만, 제가 생각하는 (마을)공동체는 작은 공동체들이 많아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의 일부분으로서의 주민조직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군 생활을 오래 하며 갇힌 생활을 하다보니 주민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조차도 즐거웠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같이 야유회에도 따라가고 행사도 같이 하고 코디네이터 때는 일로 하던 것을 주민으로서 참여하면서 재미있게 깊은 관계 맺기를 하게 됐죠.

시공현장 모습 (오롯컴퍼니 제공)


윤: 지난 회 마지막 부분에서 얘기했던 3번의 시공이 그 이후 오롯컴퍼니의 방향을 바꿔 놓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일단 매출이 발생했잖아요?

오롯: 네, 매출이 발생했고요. 같이 하는 친구들의 월급도 생각해야 됐어요. 저 혼자 있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친구들은 가정도 꾸려야 되고 뭔가 안정적인 생활을 원하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것 위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 서로 많은 논의를 했어요.

“우리가 적정한 수익을 벌면서 커뮤니티 활동을 해나갈까?”, “다른 어떤 활동들을 할까?” 등등 논의를 했지만 합의보는 게 쉽지 않았어요. 따라서 가치관을 공유하는 노력들을 많이 했어요. 시공회사 하면서도 시공으로 돈을 많이 벌 것 같은데 저는 스톱을 한 거죠. 시공이 잘 되면 잘 될수록 지역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는 거예요.

“건설회사에 취업하는 것도 뿌리쳤는데 내가 왜 이걸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역하고 나서 우리나라 대기업 건설사인 모 건설사의 소속으로 중동을 갔으면 군 생활 때 해외 파병 경력도 있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도 쌓을 수 있었는데 저는 하고 싶은 게 더 먼저였어요. 7년 동안 하고 싶은 걸 못 하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열망이 너무 강했고요. 그런 것들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돈을 벌지?” 진지하게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친구들하고 내 사람을 돌보지
못 하고 외부의 주민들을 생각하다가 내 사람들한테 집중하게 됐습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시공이라는 정해진 틀 안에서 시공을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제안도 하고 제가 또 디자인을 전공했고 컬러리스트 자격증도 있으니까 다양한 방식을 제안하고 그런 것들을 해나가는 방식들이 시장에서는 통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을 스톱한 거죠. 그러다가 “처음마음먹은 것처럼 일단 동네에서 해보자” 그래서 이어진 것이 옥반지 프로젝트였어요.

윤: 오롯컴퍼니 메인 타이틀처럼 따라붙는 게 옥·반·지 프로젝트잖아요? 하나 더 있죠? 곰팡이 연구소!

오롯: 그게 사실 이어지는 건데요. 옥반지 프로젝트를 통해서 창업 공간을 확대를 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처음에 만들었던 공간에서 제대로 일을 하려면 장비실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 공간들이 필요한데 공간이 너무 비싼 거예요.

돈을 어느 정도 벌었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저것 하다 보니 돈이 별로 없더라구요. 직원들 월급 나가고 다른 곳에 돈 들어가고 하다 보니까 몇 백만 원씩 월세를 내는 곳을 찾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이즈만 커 보이지 시공이라는 게 실제로 우리가 영위 할 것들을 제외 하면 벌긴 벌었지만 그것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한동안 일을 못하고 그렇게 반복 되다 보면 수익률이 높진 않거든요. 어떻게 보면 이러한 것들이 제가 사회적 기업이라는 테두리 속에 있다 보니 감내해야 하는 사항이기도 하구요. 보통 시공으로 움직이는 분들은 법인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 개인사업자거나 프리랜서로서 일당이나 재료비만 받고, 부가세를 낸다거나 그런 게 없죠.

시공현장 모습 (오롯컴퍼니 제공)


윤: 보통 건축일 하시는 분들 노가다라고 부르는데, 그 노가다가 영어로 하면 프리랜서잖아요.

오롯: 그렇죠. “소속이 없다” 어쨌든 그런 부분들이 뭐가 맞지가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굴러가지 않았고 공간도 확장하고 제대로 사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중간 지점에서 우리는 필요한 공간으로 지하를 찾았는데 또 저희가 같이 생활했거든요. 모든 스타트업이 그런 것처럼 저희도 사무실에서 자고 밤새고 다 같이 연구 할 공간이 필요했어요.

윤: 그러면 훈련장도 필요하고 공사가 없을 때는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셨을 텐데, 하신 거 보면 공방도 필요하고 주거 공간도 필요하고 그 다음에 업무를 진행하기 위한 공간이라든지 시공과 관련된 업체니까 자재라든가 장비를 수급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거잖아요?

오롯: 그래서 저렴하면서 일도 할 수 있고 의식주도 해결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없을까? 하고 고민을 계속 하다가 누군가 “그럼, 반지하 있잖아?”라고 하는 거에요. 생각해보니 반지하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반지하 하나는 작을 수 있지만 같은 건물 반지하 3~4개를 빌려가지고 하면 되지 않을까?

“공사를 해서 곰팡이는 없애면 될 거고 우리가 새롭게 인테리어 하면 되겠다” 그렇게 모두가 찬성을 했어요. 당시 제가 도시재생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이런 걸 보고 ‘지옥고’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옥탑방, 반지하, 지하 창고를 합쳐서 지옥고 탈출하는 ‘옥반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옥반지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죠.

‘옥반지 프로젝트’ 라는 슬로건은 미국의 개러지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애플이나 구글 아마존 같은 데를 보면 공통점이 있죠. 자동차 안이나 차고지에서 창업을 했다는 것인데요. “창업을 하려면 차고로 가야 된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나라로 보면 헝그리 정신 같은 건데 기업이 출발하는 스타트 지점에서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어떤 부가적으로 고정비를 적게 나가야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런 것들을 다른 청년들한테도 알리고 비어있는 공간들이나 열악한 공간들을 저희가 개선도 해주고 진짜 돈이 없으면 어떻게 개선하는지 교육도 해주고 해서 사업과 운동을 콜라보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옥반지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고 그게 또 운이 좋아서 서울시 혁신사업에 선정이 됐었고 마침 그 때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4관왕을 하면서 매체에서 반지하 이슈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시공현장 모습 (오롯컴퍼니 제공)


윤: 그러니까 오래된 5층짜리 아파트나 지금 연립주택, 빌라 이런 데 보시면 반지하들이 있는데 왜 반지하가 있었는지를 조명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게 분단의 아픔에서 나온 건데 방공호로 쓰기 위해서 반지하가 만들어진 건데요. 전쟁이 나지 않으니까...

오롯: 원래는 지하인데 창문을 뚫어 놓는 형태의 반지하가 있다가 사람들이 서울로 상경을 하면서 그 공간들은 전쟁의 위험이 느껴지지 않기에 사용하게 되었죠. 그런데 그 때 당시에는 방공호로 썼었기 때문에 제대로 집이나 어떤 공간으로 갖춰지지 못한 상태에서 있었겠죠.

건축법상 층 제한 등으로 인해 3층으로 짓지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법상 2층짜리 건물로 짓고 지상층은 절반을 묻는 형태로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반지하 주택을 보면 사실 3층짜리로 만들어도 되는 집들이 너무 많습니다. 포크레인을 한두 번만 파더라도 지상층으로 쉽게 만들 수 있거든요. 물론 모든 반지하가 다 쉽게 개선되는 구조는 아니지만요. 활용 가치가 있는 곳을 저렴한 비용으로 청년들이 쓰면서 이용하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옥반지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여서 진행을 한겁니다.

윤: 일단은 지하나 반지하가 생기게 된 것은 전쟁을 대비한 방공호 시설로서 시작이 됐다가 그 다음에 건축법을 편법적으로 활용을 해서 건물의 층수를 높이기 위해 임대료를 더 많이 받아내거나 건축 평수를 늘리기 위한 꼼수에서 출발이 됐다는 거네요?

오롯: 표현하자면 자본주의의 짜투리 공간으로 볼 수 있는거죠.

윤: 옥탑의 경우에는 원래 물탱크가 들어가야 하는 곳인데 물탱크를 넣지 않거나, 넣었다가 철거하고 또 임대료를 받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한 거네요.

오롯: 법적으로는 무리가 있고, 지금 있는 옥탑방들은 건축법에서 제한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는 거죠. 건축선 제한 등으로 안으로 들어가서 최상층부는 절반 정도의 건축을 지어야 할 때 조금이나마 임대료를 더 받기 위해서 만든 공간들이 될 수도 있겠죠.

윤: 옥반지 프로젝트에서 얘기한 이 공간들은 원래 사람이 거주하는데 제한이 되는 사항이 많은 공간들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건축법을 편법으로 적용한 그런 공간으로 해서 임대료를 최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린 이런 공간들이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 되게 된 것은 이 촌향도 현상이 심해지면서 서울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주거 공간이 모자라다 보니까 여기까지 들어오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돌이켜보니 어린 시절을 보면 서울도 수해가 많이 났었어요. 그래서 반지하나 지하에 살던 친구들은 수해가 나면 수재민이 되고 그럴 때면 학교 운동장이나 교실로 대피 오기도 했고 체육관이 있는 학교도 수용시설로 전락 되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었습니다. 서울도 그런 아픔들이 있었죠.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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