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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민간인 폭격 다룬 다큐 <초토화작전> 텀블벅 펀딩 진행중

- "칼을 쳐서 보습으로, 창을 쳐서 낫으로 만들 수 있을까?"
- 70년 전 한국의 슬픈 역사가 세계 평화의 메시지가 되길

윤준식 기자 승인 2022.10.18 02:08 | 최종 수정 2022.10.18 02:44 의견 0
https://www.youtube.com/watch?v=jCIwIJlYtNM

<먼지의 집-늙은 광부의 노래>, 80년도 사북항쟁을 다룬 다큐 <먼지, 사북을 묻다>, <NOlympics> 등 한국사회의 숨겨진 문제들을 드러내온 다큐멘터리 감독 이미영의 신작 <초토화작전>이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의 공개에 이어 텀블벅 펀딩 마감을 앞두고 있다. 마감일 14일을 앞둔 현재 펀딩금액 1천만원을 목표 금액 중 약 650만원의 펀딩이 진행된 상황이다.

펀딩을 위한 프로젝트 소개 페이지를 아래로 내려 읽어나갈수록 펀딩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펀딩 내역을 살펴보면 작은 시사회 개최를 희망하는 펀딩이 7건이나 되어 다큐 <초토화작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가늠할 수 있다.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오랜 숙성시간을 들이는 이미영 감독의 제작방식은 이번 작품에서도 두드러진다. 무려 5년에 걸쳐 기밀 해제된 미군 보고서와 시청각자료, 생존자들의 증언을 수집했다. 특히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로 국내외에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역사고증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가능한 모든 자료를 찾아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은 100만회 이상의 출격 과정에서 남북한 대부분의 도시, 마을, 산업관개시설들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고, 민간인들에게 기총사격 및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한국전쟁 3년간, 400만 명의 민간인 사망이 일어났는데, 미 공군의 작전에서 최소 20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베트남 전쟁의 20년 간의 민간인 사망률보다 높은 수치이다. 특히 이번 다큐멘터리 속에서는 실제 민간인 사망 사건들이 일어난 일시, 장소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미군 아카이브 필름과 더불어 관련자 및 전문가들의 상세한 고증을 시도했다.

(이미영 감독 제공)


이미영 감독이 이번 다큐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집안 어른들이 전쟁 피난 길에 자녀를 잃었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에서 출발했다. 전쟁의 참화로 인한 슬픔, 정치적 약자였기에 함부로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다큐를 통해 하나씩 드러낸다.

필자도 어린 시절부터 한국전쟁 기간 피난 행렬에 올랐던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피난 행렬이 전투기의 기총소사를 받았다”, “전투기가 지나가고 나면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었다.

당시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라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세월이 흘러 사리를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적지 않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2개월이 지난 1950년 8월부터 UN군이 한반도 제공권을 장악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피난행렬에 대한 기총소사의 주체는 미 공군이었을 거라는 개연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북에서 남으로 남하하는 게릴라 부대로 간주하고 피난행렬을 대상으로 한 폭격이 있었다는 TV 프로그램에서 접하기도 했다. 실제로 38선에서 가까운 북측 도시 주민들의 경우, 미군의 폭격이 너무 심해 살길을 찾아 목숨을 건 피난을 감행해 남으로 왔다고도 들었다. "자유를 찾아 대한의 품에..."가 아니라 "폭격이 없는 곳은 남한 뿐"이라는 슬픈 진실... 적과 아군을 구분할 방법이 없기에 공공연히 자행되는 전쟁 속의 비극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B-29 폭격기를 통해 수행된 융단폭격 (이미영 감독 제공)


그렇다면 이런 비극이 벌어진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이 미 공군으로 하여금 ‘초토화작전’을 선택하게 했을까? 여기서 필자는 미국의 공군 장성 ‘커티스 르메이’의 행적을 통해 당시 미 공군의 폭격기 작전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자 한다.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 조종사를 꿈꾸던 커티스 르메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 주둔한 미 제8공군에 배속되며 전략폭격 개념을 발전시키게 된다. 이는 기상상태, 적의 대공방어 등 정밀폭격이 불가능한 상황을 극복해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커티스 르메이는 우리가 영화에서나 보던 폭격기 편대가 대형을 만들고 목표물 상공을 직선비행하며 폭탄을 퍼붓는 융단폭격의 개념을 만든 인물이었다.

1942년 독일 본토 폭격 임무에 성공한 커티스 르메이는 1944년에는 일본 본토 폭격임무를 맡게 된다. 일본 상공은 제트기류가 지나고 있어 당시 개발된 최신예 폭격기를 투입했음에도 고고도 정밀폭격이 어려웠다. 커티스 르메이는 저고도 소이탄 폭격을 명령해 일본의 도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피해가 일어났지만 그는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민간인들도 군수물자 생산과 노동을 통해 전쟁수행을 돕고 있기 때문에 무고하지 않다는 논리다. 1945년 3월 10일 동경대공습에서는 건물 26만 7천 채를 파괴하고, 약 8만 9천여 명의 민간인 사망, 6만 6천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참고: [일본을알자] 커티스 르메이와 안중근 http://www.sisa-n.com/View.aspx?No=771754)

커티스 르메이는 한국전쟁에서도 미 공군의 폭격을 지휘했다. 당시 인민군이 민간인으로 위장하고 민간인에 섞여 움직인다는 첩보가 있어 무차별 공습 지침을 내렸다. 또한 인천상륙작전을 앞둔 시점부터는 낙동강 방어선과 대전의 인민군 집결지대에 융단폭격을 실시했다. 이후 1.4 후퇴 때는 중공군을 의식해 서울에도 융단폭격을 실시했고, 한국전쟁 말기에는 평양과 원산을 대상으로 융단폭격을 감행했다. 소위 ‘기합’이라 부르던 가혹행위 중 머리를 땅에 박고 엎드리게 한 자세를 ‘원산폭격’이라 부르던 이유도 무시무시했던 폭격의 기억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는 논란의 말을 남긴 커티스 르메이의 행적을 기점으로 미 공군의 ‘초토화작전’의 기원을 추적해 보았지만, 한국전쟁 당시의 ‘초토화작전’이 전쟁을 수행하는 지휘관 한 사람의 독단이라 여기는 것은 오산이다.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한반도 핵공격 감행을 고려하기도 했다. 즉, 비인도적인 작전을 승인하게 만든 보다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와 자유진영(자본주의 세계)의 대립이라는 냉전상황 속에서 체제경쟁과 체제의 존립이 우선되는 세계관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의사결정 체계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구성원을 이루는 민간인이 모두 죽어나가더라도 체제만 존립할 수 있다면 ‘전략상 승리’라는 발상이 가능한 시대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내년으로 정전협정 70주년을 맞는 한국전쟁은 여전히 한국사와 세계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필자도 글 속에서 ‘한국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전쟁’은 명칭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수상한 전쟁이다. ‘한국전쟁’의 어원은 적확(的確)하게는 미국에서 ‘Korean War’라 칭한 것과 일치할 뿐, 우리 스스로 규정한 명칭은 존재하지 않는다. ‘6.25’, ‘6.25 전쟁’, ‘6.25 사변’, ‘6.25 동란’ 등 다양한 명칭이 혼재하는 이유다. 또한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 중국에서는 ‘조선전쟁’, ‘항미원조전쟁’이라 칭하는 등 참전 국가들마다의 정치적 계산이 다르고, 역사적으로 민감한 이유도 명명이 불가능한 원인일지 모른다. (참고: [6.25-70주년] 때 아닌 종전선언 논쟁 - "지금 종전 가능한가?" http://www.sisa-n.com/View.aspx?No=1269738 )

어디 그뿐만인가? 문재인 정부 시절 ‘종전선언’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휴전을 반대하던 이승만 정부의 입장 등 정전협정 당시 합의 주체에서 대한민국은 제외되어 있기에 우리만의 ‘종전선언’은 외교적 효력이 없는, 허공에 외치는 구호에 지나지 않는 씁쓸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이미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초토화작전>은 체제 경쟁 속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수많은 민간인들의 삶을 대변한다. 영상을 통해 담을 수 없었던 증언들을 청소년의 목소리로 낭독하는 것을 통해 잊히려는 전쟁의 비극을 후세에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현재 세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지속되고 있고, 한반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대만의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의 참화를 겪었던 한반도는 아직도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가운데 북한은 강성대국과 선군정치의 슬로건을 내리지 않고 있으며, 남한은 방산수출 호황을 자랑하는 무기수출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칼을 쳐서 보습으로, 창을 쳐서 낫으로 만드는 평화의 시대는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70년 전 한국이 겪었던 슬픔의 역사가 세계인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텀블벅 펀딩 참여:
한국전쟁 민간인 폭격에 관한 기밀해제 미군보고서 초토화작전
( https://www.tumblbug.com/scorchedearth?ref=GNB%2F%EC%98%81%ED%99%94%20%C2%B7%20%EB%B9%84%EB%94%94%EC%98%A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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