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본지를 통해 연재되었던 <노벨문학상 그대로읽기> 시리즈를 기억하시는가? <노벨문학상 그대로읽기> 시리즈에 이어 2023년 초 노벨문학상 작가 30명과 그들의 작품 30편을 엄선해 한 권의 단행본으로 펴냈다. 연재 당시의 원고가 아닌 새롭게 쓴 원고를 통해 노벨문학상 작가와 작품을 보다 시의적절하게 설명했다. 초판 발간 20일만에 2쇄에 돌입했으며, 현재는 전자책을 통해서도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지금은 새 연재 <문학 한 잔> 시리를 통해 노벨문학상 작가와 작품 외에도 세계의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해 나가고 있다. 『노벨문학상 필독서30』와 관련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왜 노벨문학상 관련한 책을 쓰게 됐는지?
독서 인구가 줄었다고 하지만, 출간 되는 서적은 과거와 비교하면 더 많아진 게 사실입니다. 책을 내는 작가가 늘고, 더 많은 책이 출간된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니, 본인의 취향을 고려해 책을 고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책 중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할 지를 떠올린다면, 꽤나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문학 분야는 역사도 길고 양도 방대하다보니 읽고 싶은 작품을 고르기도 힘들죠. 그래서 저는 적어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노벨문학상 수상작품과 작가를 소개하기로 한 겁니다.
1901년부터 시작한 노벨문학상은 지금까지 119명의 작가가 수상했고, 작가들이 내 놓은 작품 수만 해도 수 천 권에 이를 것입니다. 그들의 모든 작품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 관심을 갖고 봐야할 만한 작가와 대표적인 작품을 선정해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노벨문학상 하면 왠지 문학을 좋아하는 찐 매니아들만의 점유물이라는 오해도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임을 소개하고 싶어서 『노벨문학상 필독서30』을 출간하게 됐습니다.
▶작품 후기에 보면 이문열의 『삼국지 평전』이 아니라 노벨문학상을 읽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고등학교 시절 신문 광고면에 아주 크게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 평전』을 읽고 논술에 도움을 받았다”는 서울대 공대 합격생의 사연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광고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중고등학생들이 그 책을 읽었습니다. 듣기에는 매년 100만 부 이상을 팔았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박’이었죠. 저도 두 번에 걸쳐 구매해 여러 번 읽었을 정도였어요.
삼국지를 평가절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세계화 시대에는 삼국지 보다는 노벨문학상을 읽는 게 청소년들에게 더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삼국지는 오래 전 중국의 가치관이 녹아들어간 책입니다. 충, 효, 의리 등 여러 좋은 덕목을 반영한 교훈을 주는 책이기도 하고요. 특히 ‘평전’이라는 타이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문열 작가만의 해설도 돋보였고요.
한편, 노벨문학상은 세계 모든 대륙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충, 효, 의리를 넘어 사랑, 인권 등 더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작가의 견해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논술을 대비한다고 하더라도,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은 더 다양한 사고를 요구하고 창의력 신장의 기회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삼국지’ 보다는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이 효용적인 측면, 다양성의 측면, 창의력 증진 측면에서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터 노벨문학상에 관심을 가졌는지?
처음 ‘내돈내산’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을 구입한 시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우연히 서점에 들렀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이 눈에 보였습니다. 당시 따끈따끈하게 등장한 책을 들고 나와 1주일 걸려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 고전 작품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읽어나갔습니다. 그러다 대학교 때 카뮈를 읽기 시작했고, 매달 번역되어 나오는 카뮈를 차곡차곡 모으며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카뮈 외에도 다른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에 대한 관심이 생기더군요.
본격적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와 작품을 읽기 시작한 시점은 2007년이었고,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작품을 읽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 저술까지 우연이라는 요소에서 출발해 고전을 읽어야겠다는 독서 계획이 이끌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편적인 내용만 모아 ‘책을 소개하는 책’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원전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하거나, 원전을 읽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는 거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류의 책이 등장하더라도 비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를 전망하는 책들이 등장하면 맞는 예측이 별로 없다는 비판을 받죠. 역사책이 등장하면 보수냐 진보냐의 인식에 따라 비판하고요.
‘책을 소개하는 책’도 비판받을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답을 하자면, 제가 대학 시절에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에 도전한 적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완전 패배였습니다. 한 페이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찾은 책이 해설서였습니다. 대표적인 해설서가 질 들뢰즈의 책이었죠. 그래서 질 들뢰즈의 『칸트의 비판철학』을 우선 읽었습니다.
그렇다고 이후 칸트의 원저는 읽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순수이성 비판』을 세 번 읽었습니다. 소개서가 책을 읽지 않게 한다는 비판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소개서만 읽고 끝낼 수도 있지만, 서른 권 중 한두 권이라도 원저를 읽는다면, 작가로서 소임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 다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노벨문학상에 대한 지식 정도는 쌓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독서의 가치는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안 읽게 한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한 권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게 요즘 분위기에 어울리는 비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소개서도 많이 읽지 않는 게 현실이니까요.
▶이번 책을 통해서 독자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먼저, 노벨문학상 수상 저자들의 책을 좀 더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상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분명 권위있는 상을 받을 만한 작가와 작품들입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열린 결말을 지향하고 있어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을 좀 더 다채롭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안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저서를 통해 노벨문학상이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읽고, 원전도 찾아 읽기를 바랍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대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20세기 초부터 거의 후반까지 유럽이나 미국 남성이 아니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최근까지 수상자의 면모를 보면, 유럽과 미국 중심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으며 여성 작가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은 남녀 작가가 번갈아 가면서 수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2022년 수상자가 ‘아니 에르노’라는 여성 작가이니 2023년은 남성 작가의 수상을 점쳐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즉, 지역·남성 중심적 한계를 극복하며 노벨문학상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적합한 ‘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은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노벨문학상 수상은 국력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 대한민국에 존재해도 국가가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수상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 말은 한류를 통해 한국의 이미지가 제고되고 있기에 수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작가들이 국제적인 상을 많이 수상해야 합니다. 수상자들 대부분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이전에 국제적인 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 한강을 통해 잘 알게 된 ‘부커’상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수상 경력을 지닌 작가들이 화룡점정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 한강 작가의 수상과 관련한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보다 『소년이 온다』와 같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다룬 작품이 조금 더 알려져야 노벨문학상 수상작 후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선진국 반열에 들어 선 대한민국이기에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는 수상자가 등장하리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도서 관련이미지 출처: 도서출판 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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