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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한잔(10)] 토마스 만(Thomas Mann) 『마의 산』

- 병 들었음을 인정하는 게 우선이다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3.04.20 00:10 | 최종 수정 2023.04.20 02:49 의견 0

토마스 만은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 그나마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며, 우리나라 작품 염상섭의 『삼대』를 떠오르게 하는데 한 시민 가문이 몰락하는 일대기를 다룬다. 『마의 산』은 토마스 만 하면 떠올리는 대중적인 작품일 듯한데,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읽는 동안 새벽 녘 자욱한 산안개에 휩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란 의미다.

대개 소설이라 하면 잘 구성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연상할 수 있으나, 작품은 기승전결 형식을 준수하지 않았고 작가가 당시 고민했던 내용을 ‘주우욱’ 설명하고 있다. 특히 토마스 만이 이공계 쪽으로도 박식했던 작가였기에 인문학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어, 작가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작품의 핵심 내용을 이해하기는커녕 줄거리조차 파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독자 중 한 명이었음을 밝힌다. 그저 일독했다는 정도로 만족했었던 기억이다.

토마스 만의 여러 작품을 20~30대에 읽었다. 하지만, 약 15~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과거에 읽었던 작품이 아닌 듯했다. 일부러 다른 번역본으로 찾아 읽었으니 더 생소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읽었던 작품의 ‘낯 섬’이라는 경험과 함께 고전의 위력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는데, 고전은 나이가 들어 다시 읽어도 새로운 흥밋거리와 감동을 주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과거 『마의 산 』은 그야말로 넘지 못할 ‘마의 산’ 같았는데, 마흔 중반에 이른 지금은 그럭저럭 넘어 볼 만한 산이어서 종아리가 조금 당기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지런히 올라갈 수 있었다.

생전 토마스 만의 모습을 담은 을유문화사판 표지


이야기는 ‘한스 카스토르프’가 ‘요아힘 침센’이라는 사촌이 머무는 요양원에 방문하며 진행된다. 처음에는 3주 정도의 요양, 그리고 사촌을 방문할 목적으로 찾아왔으나, 오히려 사촌 요아힘이 견디다 못해 먼저 내려가고 한스는 요양원의 터주 대감이 되어버린다. 이후 한스가 요양원에 머물면서 겪은 여러 가지 경험,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사건 등을 중심으로 작품은 이어진다.

고산지대에 자리한 요양원은 저 아래 일반적인 세상과 다르고, 그 시간 개념부터 다르다는 게 작품의 전제다. 아울러 이곳에 오래 머문 인물들은 아래 세상으로 내려가길 포기하고, 요양원을 하나의 세계, 즉 고향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인문주의자 세템브리니와 예수교 수도사 나프타의 논쟁은 곧 인문주의와 종교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둘의 결투 장면에서 나프타가 자살함으로써 결국, 종교의 시대가 지났음을 보여준다. 작품은 계속해서 전쟁의 발발을 연상케 하는데, 결국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며 요양원에 머물던 환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한스는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떨어진 포탄의 위협 속에서도 “이 세계를 뒤덮은 죽음의 축제에서도, 사방에서 비 내리는 저녁 하늘을 불태우고 있는 저 끔찍한 열병과도 같은 불길 속에서도, 언젠가는 사랑이 솟아오르겠지?”라고 희망을 품은 채 작품은 끝을 맺는다.

◆아픈 사람들이 모인 곳 요양원

일반 세상에서 지치고 병든 몸에 휴식과 치료를 위해 찾는 곳이 요양원이다. 작품 속 한스가 찾은 요양원은 당시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유럽 전역에서 환자들이 모인 곳이다. 작가는 요양원을 당시 유럽에 비유한 듯하다. 서로 다른 생각과 아픈 몸을 조금이나마 낫게 하기 위해서 모인 요양원에서 벌어지는 강연, 토론, 사랑 등은 모두 유럽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정치상황, 사상적 대립 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작가는 세계를 요양원으로 설정했을까? 작품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이었다. 당시 유럽 정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작가였기에, 당시 상황을 토대로 『마의 산』이라는 가공의 공간을 설정했을 수 있다. 즉, 전쟁을 앞둔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유럽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요양이 필요한 사람들에 빗댄 설명한 것은 아니었을까?

◆시간의 상대성: 진보의 시간?

『마의 산』의 출간은 1924년이다. 그 직전인 1921년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작가가 『마의 산』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이보다 전이다. 다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작품의 마무리와 출간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루어졌다.

작품은 시간을 다룬다. 고지대에 위치한 요양원의 시간과 아래 세상의 시간 개념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여러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마다 혹은 국가마다 시간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작가는 각 공간–국가, 사회, 지역 등–마다의 시간을 전체적으로 다루지도 않고, 우열을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인문주의자 세템브리니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 이전까지 유럽의 시간이 동양의 시간보다 낫다”고 언급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해야 할 부분은 ‘왜 시간의 상대성을 다뤘는가’다. 작가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 머물며 살아 갈 거라는 일반 인식에 전환을 촉구한다. 모든 사람, 사회, 국가 등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면, 결국 강자의 이데올로기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다. “너희들이 게을러서, 발전이 늦어서 어쩔 수 없이 계몽돼야 하는 거야!”라는 주장에 항변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간의 상대성을 고려하면, 조금 늦을 수도 있고 진보하다가 퇴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무한 진보를 신뢰했던 유럽의 시간은 양차 대전을 통해 후퇴했으니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아이작 뉴턴의 진리의 벽에 균열을 가져왔다. 여전히 뉴턴의 벽은 튼튼히 서 있지만, 균열이 생기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전체적으로는 맞지만, 오류가 있다는 의미다. 작가는 시간의 상대성을 이해하고, 유럽의 진리, 진보에 대한 의구심을 작품으로 옮긴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간의 상대성을 통해 작가는 어떤 세계도 정답이 아님을 강조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만의 시간’ 혹은 ‘우월한 진보의 시간’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시간’도 있음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고찰 아니었을까?

'사랑'을 묘사한 동서문화사판 2권 표지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의 대립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작품의 백미는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인문주의자로서 인간의 이성을 중시한다. 후자는 예수원의 수도사 지망생으로 여전히 종교, 신의 섭리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들의 대립은 원활하게 결론을 맺지 못하고 결투로 이어진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상대방을 쏘지 못한다. 세템브리니는 공중에 사격을 하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나프타는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나프타의 죽음은 곧 ‘종교’, 특히 ‘기독교’의 패배를 의미한다. 유럽 세계를 정신적으로 지배하던 기독교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그 부재를 인간의 이성, 과학 기술 등이 채운다는 의미다. 이성, 과학, 진보 등의 언어가 신의 섭리를 대체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세계를 이끌어 줄 거로 믿었던 인간의 이성, 진보, 기술의 발전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전쟁의 발발로 인류의 기대를 허무하게 저버려야만 했다.

“포악해진 과학의 산물인 포탄이 가공할 힘을 싣고 날아와서, 그의 앞에서 비스듬히 30보쯤 떨어진 지점에 악마의 화신처럼 땅속 깊숙이 들이박히며” 그들이 진리로 믿어도 충분하다고 여겼던 과학, 진보의 결과가 바로 30보쯤 앞에 악마의 화신으로 다가 온 것이다. 이쯤 되면, 신을 대체했던 새로운 정신이 오래 버틴다는 것은 희망고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현재까지 세계의 모습은 인본주의와 신의 섭리가 대립하는 형태이다.

◆낭만적인 대안 바로 ‘사랑’

작가의 해답은 뜻밖에도 추상적인 ‘사랑’이었다. 요양원 안에서도 사랑은 존재했다. 애정행각이 있었다. 그들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한스도 ‘쇼샤’라는 러시아 출신 유부녀를 흠모했다.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요양원에서 지내는 생활 가운데 활력소였다. 그녀가 없는 요양원에서 지내면서도 다시 돌아 올 그녀를 생각하면서 기다릴 수 있었다.

작가는 전쟁의 화염 속에서도 언젠가 피어날 사랑을 기대했다. 당장의 생사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의 사랑을 염원한 것이다. ‘베르크호프’에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었던 이유도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각기 병든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인간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환자라는 사실, 같은 시공간에 머물고 있다는 동질감이 요양원의 다양성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다. 작가는 서로 다른 부분을 화합으로 이어줄 수 있는 고리로 ‘사랑’을 제안한 것이다.

결투 장면을 묘사한 열린책들판 하권 표지


◆먼저, 병 들었음을 인정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베르크호프’는 요양원이다. 그리고 요양원은 아픈 사람, 혹은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한스는 처음에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3주 정도 휴가를 지내다가 다시 아래 세상으로 돌아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가 아픔을 인지하고 환자 됨을 인지한 순간, 요양원 시스템에 녹아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사회를 보자. 폭력이 난무한다. 그리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갈등이 없는 곳이 없다. 정치는 여야가 분쟁만 일삼고 있고, 정치적 신뢰를 잃은 상태인데, 이를 타계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정치적 진보는 중단됐다. 경제적으로도 노사 갈등이 심각하고, 경제적 빈부격차도 쉽게 좁혀지기 힘든 상황이다. 사회는 여러 계층별 간극이 사회 분열을 조장하고, 점점 그 골을 깊고, 그 영역을 넓혀 갈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병들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고, 우리 현실에서 필요한 게 요양원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나’로 치환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건강한데, 네가 아파서 그런 거야!”라는 억지춘향 격 주장이 아니라, 너와 내가 다 아프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너만 아프다는 생각이 안개로 가득해서 한 치 앞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통수권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스스로 무흠한 자로 선언하고,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돌린다. 그러니, 치료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문학이 그렇듯 작품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인류 보편적 감정의 언어인 ‘사랑’에 호소했다. 사랑은 갈등을 봉합(화해)하게 한다. 나를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의 주장에도 경청(똘레랑스)할 수 있게 한다. 사랑을 하려고 해도 우선 나의 병든 몸을 치료한 이후의 단계가 아닐까? 물론, 환자도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병든 정신에서 말하는 ‘사랑’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애인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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