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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in] 6월 1일자로 없어지는 것들: 고양 화정터미널

※ 다양한 인사이트를 담는 '윤준식 기자의 view-in', 2회도 [라이프스타일 관찰노트]로 구성했습니다.

윤준식 기자 승인 2023.05.31 23:56 | 최종 수정 2023.07.24 21:57 의견 0

다양한 기획이 있어 취재로 지방을 자주 오가는 저는 일종의 습관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지방의 원도심을 가보려는 노력이죠. 원도심에 가봐야 그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도시가 성장하게 된 건 어떤 이유인지, 도시의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 등 그 장소만이 지닌 로컬리티를 담뿍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빠르고 편리한 KTX를 이용하기 보다는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교통편, 무궁화호로 연결되는 기차편을 먼저 찾곤 합니다. 이런 저에게 작은 근심거리가 생겼습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대중교통 이용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방역을 위한 조치가 복잡해지면서 교통편이 점점 감편되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에 지방소멸의 속도까지 빨라지니 원도심은 점점 쇠퇴되고 공동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버스터미널도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한 겁니다.

예매용 어플 <고속버스 티머니>의 공지화면


2023년 6월 1일자로 고양 화정터미널이 폐업합니다. 화정터미널은 1999년 고양시 지하철 3호선 화정역 인근에 개장해 영업을 시작한 곳입니다. 폐업 직전에는 춘천, 강릉, 전주, 충주행 4개 노선만 남았는데, 충격적인 건 하루 이용객이 50명도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2012년 일산동구 백석동에 고양종합터미널이 들어오며 승객이 대폭 감소하면서 수익이 줄었고 이때부터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만 하는데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조금 더 설명해 볼까요?

우선 폐업한 터미멀은 화정터미널만이 아닙니다.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2020~2022년의 3년간 전국적으로 19개 터미널이 문을 닫았습니다. 고양시 화정터미널과 같은 경기도에 있는 터미널 중 하나인 성남터미널도 2023년 1월 1일 자로 폐업했습니다. 화정터미널, 성남터미널의 특징은 10만~20만 소도시가 아닌 100만 대도시에 있는 터미널이란 이야기입니다.

화정터미널 (원출처: 한국관광공사)

하나 더 예를 들어볼까요? 지난 4월 1일자로 서울 상봉터미널의 고속버스 운행이 종료되었습니다. 물론 상봉-원주 시외버스 노선 하나가 남아있지만, 노선 하나 운영되는 것 정도로 터미널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기엔 애매합니다.

상봉터미널은 80년대 마장터미널과 미아터미널이 없어지며 향후 건설될 동서울터미널의 보조기능을 위해 1985년에 개장했습니다. 한때는 서울 동쪽으로 이어지는 경기 동북부, 강원 북부 지역을 연결하며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기능을 톡톡히 하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라 부르는 서울외곽순환도로가 개통되자 1993년부터는 고속버스도 운행되며 대전, 동대구, 부산, 광주, 전주, 진주 등 삼남지방 거점도시를 연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감편에 감편을 거듭하며 달랑 상봉-원주 시외버스 노선 하나뿐이라니, 터미널이 북적대던 시절을 떠올리면 살짝 슬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조차 서울역-상봉-강릉으로 연결되는 KTX로 만종역이 이어지고, 청량리-안동으로 이어지는 KTX이음으로도 1시간 만에 원주역에 갈 수 있어 상봉-원주 노선은 열차 예매를 놓친 경우 대체하는 교통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자, 천만도시 서울도 버스터미널이 위축되는 판국입니다. 그러니 버스터미널끼리의 경쟁에 의해 이용자가 급감한다는 이야기는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이미 사례 속에서 밝히고 있듯 대체 교통수단인 KTX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성남터미널의 경우 인접한 SRT 수서역의 등장으로 성남과 전국 거점을 연결하는 역할을 빼앗기다시피 했습니다.

그렇다면 KTX는 우리의 이동과 관련한 라이프스타일을 풍요롭게 하고 있을까요?

KTX가 등장하며 '1일생활권'이라는 말이 현실화되었습니다. 사실 1일생활권이라는 말은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며 나오기 시작한 말인데요. 이때만 해도 1일 생활권은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시간만 가지고 1일생활권이라 산출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KTX로 인해 왕복 출퇴근과 업무시간을 포함한 1일생활권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우선 업무출장과 여행의 패턴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일치기가 가능한 것은 물론 멀리 가는 여정이 부담스럽지 않게 된 겁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관광붐을 일으킨 대표적인 곳이 여수, 순천입니다.

또 한 가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생활권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고속철도가 서울 지역을 시발역이나 종착역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서울이 가진 정치·경제·행정 중심지로서의 기능 외에도 서울 1천 만, 경기 1천 2백 만, 인천 3백 만 등 전국 5천 만 인구 중 절반에 해당하는 2천 5백 만 인구를 배후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지방의 소도시라 하더라도 KTX가 서느냐 서지 않느냐로 지역의 위상이 달라지고, 인적 자원의 왕래, 관광 활성화를 비롯한 지역경제 문제가 달라졌습니다.

이를 멋진 말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종적연결은 활성화된 반면, 동서에 해당하는 횡적연결은 미흡한 상황"이라고요. 그런데 이 문제는 따져보면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고속철도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마차바큇살같은 Hub & Spoke 전략을 구상한 겁니다. Hub & Spoke는 보통 항공산업에서 자주 이야기되던 개념인데요. 거점과 거점을 연결하는 대형공항을 Hub로 하여 대형기가 이착륙하고 수하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집중하고, 지방공항은 소형기 중심으로 가볍게 운영한다는 경제성과 효율성을 중시한 전략이죠.

따라서 종적연결은 거점간 연결, 횡적연결은 거점과 지방, 지방과 지방간의 연결을 의미하는 말인데요. 하지만 현실은 Hub만 존재할 뿐, Spoke는 사라졌기에 앞으로 큰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지방과 지방을 연결하는 기능은 무궁화호가 운행되는 노선과 시외버스 노선이 도맡아 하고 있는데요. 철도의 경우 KTX에 우선순위를 두다보니 무궁화호 편성 자체가 적습니다. 시외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접도시를 오가는 차편이 하루 1대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반면 서울과 해당도시를 오가는 차편은 4~5대인 아이러니한 경우가 있어요.

이에 대한 분석을 보면 핑계거리 같습니다. 자가차량 이용률이 높고, 편성이 적어 불편하고 등등...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이동하는 인구가 적다는데 있습니다. 인구소멸 말이죠.

많은 이들은 KTX의 등장으로 서울·수도권과 지방 간 이동이 많아지며 지방시대가 열리고 인구분산 효과가 있을 거라고 낙관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방소멸로 고민하는 곳들은 KTX가 가지 않거든요. 그나마 KTX 정차역 중 하나인 김제시는 인구가 줄고 오가는 사람도 줄면서 KTX 편성이 하루 한 번응로 줄어들었습니다.

교통의 단절은 소멸의 속도를 가속시킵니다. KTX로 인해 풍요로운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역시 대도시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이번 회 라이프스타일 관찰노트는 우울한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조차도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입니다. 쇠퇴하고 스러져가는 것들도 눈여겨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다음 회에서 뵙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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