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북한이 발표한 새로운 핵교리와 핵무력법은 러시아가 제시한 ‘확전우세’와 ‘확산완화’개념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과 동맹국들에 ‘맞춤형 피해’를 주는 것으로, 이는 “군사력 사용의 결과로 공격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초과하는 주관적으로 수용불가한 피해”를 핵무기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다. 즉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하이브리드전의 수단인 셈이다.
◆하이브리드전의 양상을 띠는 북한의 핵 도발
캐나다 워털루대 국제정치학 교수인 알렉산더 라노즈카는 하이브리드전 공격에 이용될 수 있는 4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즉, ①공격자가 지역적 확전우세를 보유(글로벌 차원의 확전우세는 불필요하다), ②공격자가 대상 국가의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국경선 변경을 통한 현상(the status of quo)의 수정하려는 의사와 실행, ③대상국가 내부를 약화시킬 수 있는 인종적 또는 이념적 균열의 존재, ④공격자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인종적 또는 이념적 집단의 존재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북한의 경우에 적용시켜 보면, ①6차례의 핵실험을 통한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로 핵능력의 고도화에 성공한 북한이 비현실적인 비핵화 목표에 집착하고 있는 한국을 상대로 ‘확전우세’ 여건을 이미 확보한 것으로 판단할 가능성, ②정전협정, 남·북 불가침선언, NLL 등에 대한 부정 및 형해화를 통한 현상변경 지향 의도, ③한국 사회 내부에 남남갈등 요인 상존, ④한국에서 암약하고 있는 친북 성향을 갖는 정치, 사회 집단의 존재는 하이브리드전 공격에 이용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 이는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하이브리드전을 감행할 가능성이 충분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관성적으로 그간 단기, 전면전을 염두에 두었던 사고에서 벗어난 안보정책 수립 단계에서의 전면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북한의 하이브리드전 도발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기간 전면전 개념에서 벗어난 북한의 핵전략
2020년 개정된 노동당 당규약 서문에는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이 명시돼 있다. 또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노동당 규약의 대남혁명전략은 김일성·김정일의 ‘통일 유훈’을 계승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존립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노동당 규약에서 대남혁명전략의 포기나 삭제는 남북·북미 관계의 획기적 진전과 통일이 눈앞에 다가오기 전까지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대남혁명전략이 미시적·단기적 행동노선을 의미하는 전술이 아니라, 혁명이 완성될 때까지 거시적·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전략이라는 점이다. 이는 “적국의 영토 전체에 걸친 항구적 전선 구축”을 강조한 ‘게라시모프 독트린’, 나아가 더 이상 “자신의 의지에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1999년 중국에서 나온 “자신의 이익을 적이 받아들이도록 강제”하기 위한 군사력 운용을 강조한 ‘무제한전(超限戰: unrestricted warfare)’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제 군사안보전략이 한국전쟁과 같은 정규전 성격을 갖는 단기간의 전면전을 염두에 둔 기존의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핵무기의 중요성이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병합 과정은 ‘맞춤형 피해(tailored damage)’로 상징되는 구체적인 핵무기 실전사용 시나리오를 전제한 ‘확산완화’에 대한 러시아의 능력과 의도를 바탕으로 ‘확전우세’의 효과가 확립되는 순간부터, 크림반도 같은 지역에 사활적 국익이 걸려있지 않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억제력이 발휘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이 ‘맞춤형 피해(tailored damage)’를 통한 ‘확산완화’와 ‘확전우세’를 획득하는 데 목표가 있다는 것은 2022년 김정은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돐 경축열병식에서 공표한 새로운 핵교리와 2022년 제정된 법령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를 통해 잘 드러난다.
◆김정은 연설을 통한 북한의 핵교리 해석
먼저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돐 경축 열병식’ 김정은 연설을 살펴보자.
김정은은 열병식 연설에서 ①“우리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여 있을 수는 없다”, ②“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리익을 침탈하려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2022년 4월 4일 이른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김여정이 발표한 담화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이를 김정은이 핵교리로 확정한 것이다.
김정은이 열병식 연설에서 내외에 천명한 새로운 핵교리에서 “적대세력이 조선의 근본리익을 침탈하려든다면 조선의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이는 국가가 아닌 비국가 주체를 포함하는 것으로 적대행위의 주체를 확대한 것이다. ‘조선의 근본리익’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보다 훨씬 확대된 의미다. ‘침탈하려든다면’은 ‘조선의 근본리익’에 대한 적대행위 주체의 행동에 대해 해석의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더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는 핵무기의 사용조건에서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국내적 상황변화에 대해서도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워싱턴 선언: 북한의 핵교리와 관련한 외교적 대응
이러한 북한의 핵교리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병합 과정에서 보인 ‘메시지 운용 차원에서 핵전력 운용의 모호성 활용’을 연상 시킨다. 이제 북한은 그간 ‘미국의 적대행위에 대한 자위적 수단’으로 핵무기 보유를 정당화해 나가던 데서 나아가 러시아의 ‘확산완화(deescalation)’와 ‘확전우세(escalation dominance)’ 정책을 채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고도화되고 있는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은 하이브리드전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2023년 3월 19일 오전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전술탄도미사일을 발사해 800㎞ 사거리에 설정한 동해 목표 상공 800m에서 공중폭발시켜 핵탄두부의 핵폭발 조종장치와 기폭장치의 동작을 검증했다는 발표는 러시아가 군사적 위협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2000년부터 ‘제한적 핵타격 시뮬레이션을 포함하여’ 대규모 군사연습을 실시했던 것을 연상 시킨다. 국내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날 북한이 발사한 기종은 SRBM인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되며 미국 정보당국은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2023년 4월 23일 한미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선 한-미 확장억제 강화 방안이 담긴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워싱턴 선언’은 확장억제의 정보공유·공동기획·공동실행을 포괄하는 ‘한-미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NCG) 설립을 약속한 것이 뼈대다.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의무를 재확인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북한 핵 위협이 ‘확전우세’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억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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