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잡아 10~15년 전에만 하더라도 이 배우들의 조합이라면 흥행은 따놓은 당상이고, 주인공으로 열연한 두 배우가 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조차도 홍보의 요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국내에서는 극장 개봉조차도 못하고 넘어갔으니 참 세월의 비정함은 피해 갈 도리가 없는 것 같다.
본 영화는 사이먼 윈체스터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포스터 상으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은 것인지 궁금한 조합이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교수와 광인이라고 출판된 바 있는데 영화라고 굳이 영어로 된 원제를 사용하려는 센스가 참 안타깝다.
두 사람의 분위기로 미루어보아 영화의 내용을 섣불리 짐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여기저기 소개된 곳이 많다 보니 알고 있는 이들이 상당히 많음에 놀라게 되었다. 간단하게는 옥스퍼드 영어 대사전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정리를 하면 쉬울 것 같다.
◇옥스퍼드 사전에 얽힌 두 위대한 천재의 이야기
제임스 머레이 교수가 사전을 편찬하면서 획기적으로 도입한 자원봉사 제도에 맞물려 이에 참여하게 되었던 살인범이자 정신병자인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의 이야기를 영화는 다루고 있다. 그들이 사전을 만들면서 교류했던 내용들과 마이너의 광기 그리고 그가 다시금 고향인 미국으로 송환될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내용 중에 제임스 머레이를 둘러싼 암투가 그려지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마이너의 광기와 그가 죽인 남자의 미망인인 엘리제의 이야기가 주축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결론은 옥스퍼드 사전이라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성실함의 대명사였던 제임스 머레이 교수과 미쳤지만 언어 쪽에는 천재인 마이너의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이 인류사의 축복이었던 영어사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고르게 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궁금증을 자아내는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느냐인데 그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충족하고 있는 영화라고 여겨진다.
◇종류가 다른 천재의 만남이 위대한 탄생을 이끌어내다
성실함으로 상징되는 천재인 제임스 머레이와 번뜩이는 광기의 천재인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 두 사람의 만남은 인류에게는 축복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사전이라 일컬어지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세상에 존재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면 더욱 그렇다.
일생을 사전에 받친 사람과 사전 작업을 할 때만 정상적인 정신을 유지했던 사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어쩌면 어떤 이야기보다도 극적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 그려지는 내용은 우리가 기대했던 바와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이끌리고 있음에 안타깝기까지 하다. 사전에 대한 이야기보다 마이너와 미망인 간의 일종의 썸과 정신병으로 인한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보는 것도 재미의 요소일 수는 있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원목적인 위대한 궁금증을 보기 위해 영화를 찾은 이들에게는 실망의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원작과의 괴리도 너무나 크다.
원작을 훼손하는 영화가 결코 평이 좋을 리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한다.
◇연기를 보는 재미는 충분한 영화
제작을 하면서 생겼던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영화라서 완성도에 문제 제기를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명불허전이라 연기를 보는 재미마저 포기할 수는 없는 영화다. 관록의 두 배우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열연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 한 축이었던 여자 연기자의 연기도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왕좌의 게임의 마저리 왕비였던 나탈리 도머의 연기도 일취월장이 느껴질 정도로 두 노장 사이에서 밸런스를 훌륭하게 유지하고 있다. 흔히 대배우 틈바구니에서 연기를 하면 연기가 는다고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훌륭한 연기자 대열에 나탈리 도머가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 출연자들이 흥행과 연이 없는 것처럼 그녀 역시도 그 저주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상당한 불안요소일 뿐이다.
위대한 사전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나 배경을 알리는 데는 나름 충실한 역할을 하였으니, 홍보로서의 사명을 다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옥스퍼드 사전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영화를 기대하였으나, 어설픈 신파극으로 마무리된 영화라고 하고 싶다.
영화에 대한 평을 절대로 놓게 해줄 수는 없는 영화임은 확실하다.
더 프로페서 앤 더 매드맨
( The professor and the madman, 2019)
연출 : 파헤드 사피니아
출연 : 멜 깁슨, 숀 펜, 나탈리 도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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