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베르메르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화가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엄청나게 유명한 그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리며, 네덜란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화다. 하지만 그림의 배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알려지지 않은 그림의 비하인드스토리를 배경으로 쓰여진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콜린 퍼스는 이미 스타였지만 반면에 영화가 개봉할 당시에는 크게 각광을 받던 배우가 아니었던 스칼렛 요한슨이 그림 속의 주인공과 엄청나게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여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이 영화와 더불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영화로 각종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되기도 하였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스틸
17세기의 추억을 먹고 산다는 네덜란드의 당시 모습을 그림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색감들로 영상을 만들어낸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림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노력이었을지 모르겠지만, 허구라는 것을 알고 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은 연출과 구성의 힘이다.
실제 사실은 무엇이고 만들어낸 허구는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주는 영화이다.
◇ 하늘을 봐라... 구름의 색이 모두 같아?
영화의 배경이 되는 17세기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화가들의 전성시대이자 네덜란드가 해양 패권을 거머쥐었던 시기다. 영화는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 있는 여자가 그의 뮤즈였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하녀였던 그리트의 남다른 재능에 영감을 얻는 베르메르, 그녀는 영문도 모르는 사이 그의 뮤즈가 되어 알듯 모를 듯 미묘한 감정들이 생겨난다. 그리트를 좋아하는 피터의 질투, 그녀를 소유하려는 부자 반 라이즈번의 사이에서 감정적 혼란을 겪던 그리트, 그녀를 뮤즈로 그림을 그리려는 베르메르는 그녀에게 자신의 아내의 장신구인 진주 귀걸이를 착용하게 하여 그림을 완성시킨다는 내용이다.
역사적인 명작들을 파고 들어가면 늘 등장하는 뮤즈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그 안에 있을법한 사랑보다 끈끈한 무엇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스틸
◇ 천재적인 뮤즈를 통해 위대한 명작이 탄생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사람의 미묘한 마음을 눈치챌 수 있지만, 사실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이 나누는 대사는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뮤즈라는 단어가 더욱 와닿는 것 같다.
베르메르가 그리트의 귀를 직접 뚫어주는 이 장면은 굉장히 관능적이고 에로틱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흐르는 피, 눈물뿐만 아니라 이 장면에서 서로 간의 존재를 인정하고 허용하며,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다양한 의미를 느껴볼 수 있다. 신분의 격차가 있는 사회에서 하녀 신분이 진주 귀걸이를 착용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금기에 가까운 일이고, 믿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실제 화가에게 12명의 자녀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영화와 섞어서 생각해보면 실제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고 있는 뮤즈라는 개념은 이들의 행위가 사랑보다 더 위에 있는 두려움을 초월한 행위였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스틸
◇ 캐스팅은 어쩌면 감독의 행운
지금이야 킹스맨이지만 당시의 콜린 퍼스는 한참 전성기를 향해 질주하던 시기였다. 대사는 거의 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 표현해야 하는 베르메르는 아마도 콜린 퍼스를 위해 준비된 배역이 아니었을까 한다. 또한 신인감독이었던 피터 웨버에게는 커다란 행운이 아니었을까.
영화를 보려고 하는 이들은 스칼렛 요한슨의 굉장한 싱크로율에 매료돼서 영화를 선택하는 이들이 절대다수일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오히려 대사도 없는 콜린 퍼스에게 매료되어 있을 것임을 확실할 수 있다.
좋은 배우는 모든 것으로 대사 전달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콜린 퍼스가 딱 그런 연기자라는 생각이 든다. 예나 지금이나 말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
감독: 피터 웨버 / 출연: 스칼렛 요한슨, 콜린 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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