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인지전은 공산권 국가에서 전통적으로 수행해온 통일전선전술(united front strategy)과도 맥을 같이 하는 측면이 있다. 레닌주의 전통에서 ‘통일전선’이란 강한 적에 대항하기 위해 공동의 적을 두고 있는 다른 세력과 일시적으로 연합하는 공산당의 행동노선을 의미한다.
중국 공산당은 창당 초기부터 코민테른의 영향으로 통일전선전술을 중요시했고 이후 국민당을 포함한 여타 집단 및 세력과의 통일전선을 형성해 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순차적으로 ‘모순이 적은’ 세력을 포섭해 ‘모순이 큰’ 세력을 분쇄하는 작업을 연쇄적으로 수행해나감으로써 공산당 세력을 확대해 유일화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국공합작과 국공내전
중국의 공산당과 국민당은 서로 모순을 이루고 있는 적대적 관계에 있지만 군벌, 제국주의 세력,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연합, 즉 통일전선을 형성하였다. 이것이 바로 1924년과 1937년의 1·2차 국공합작이 된다.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전술은 마오의 모순론에 직접적으로 기인한다. 모순론이 통일전선전술의 이론적 기반이자 실제적 지침이 됨을 의미한다. 모순론의 내용 가운데 주요모순과 부차모순, 모순의 상호 전화, 통일(동일성)과 대립(투쟁성),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 등의 개념이 통일전선 전술을 형성하고 실행하는데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기초로 작용한다. 국공합작과 국공내전이 대표적이다.
1927년 장제스 국민당 정부가 상해에서 기습적으로 자행한 백색테러로 국공합작이 분열된 이후, 십여 년간 대립하던 국공 양당은 1937년 일본의 중국 침략을 계기로 두 번째 합작을 하게 된다. 모순론의 관점에서 볼 때 제2차 국공합작의 성립, 즉 공산당이 국민당과 두 번째의 통일전선을 형성하게 된 이유는, 중일전쟁의 발발로 인해 정세와 국면이 변화되어 십여 년간 주요모순이던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계급모순이 부차모순의 지위로 후퇴하고 중국과 일본 간의 민족모순이 주요모순으로 부상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공산당은 모순론에 근거한 통일전선전술에 따라 적대세력이었던 국민당을 통일전선의 대상, 즉 연합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항일통일 전선’의 형성과 구축이다.
항일통일전선을 수립하여 일본에 대항하여 투쟁을 전개하던 중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더불어 중일전쟁도 끝나게 된다. 즉 중국과 일본 간의 민족모순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세와 국면의 변화에 따라 부차모순이던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모순이 다시금 주요모순의 지위로 부상하게 되었고, 이 주요모순을 처리하기 위해 양 세력 간의 통일전선은 해체되고 국공내전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1953년 이후의 통일전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과 그 이후 모택동 시기의 통일전선은 넓은 의미로 볼 때 기본적으로 혁명통일전선이라 표현할 수 있다. 통일전선을 형성·구축하려는 근본목적이 민족혁명, 신민주주의혁명, 사회주의혁명을 성취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기, 단계, 정세에 따라 모순의 성격이 달라지듯이 혁명의 단계와 과제에 따라 혁명통일전선의 성격, 내용, 대상, 범위 등도 달라지게 되는데, 1949년 이후 마오 시기의 혁명통일전선을 크게 일별해 보면, 1953년 이전까지 통일전선의 성격은 신민주주의혁명을 위한 통일전선으로 규정되었고 그에 따라 통일전선의 대상과 범위는 노동자 계급, 농민 계급, 소자산 계급, 민족자산 계급이었다. 이는 <공동강령>과 오성홍기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공산당 집권이 안정기에 접어든 1953년 6월부터 시작된 과도기 총노선 시기 이후에는 당과 국가 차원의 목표와 과제가 사회주의적 개조로 바뀌게 되면서 통일전선의 성격과 대상에도 변화가 생기게 된다. 신민주주의 혁명 단계의 인민민주정치에서 정부와 국가의 구성원으로 참여하였던 소자산계급과 민족자산계급이 제외된 것이다. 이처럼 통일전선전술에서는 일차적 최우선 과제인 주요모순을 해결하는 데 있어 유리한 환경을 확보하기 위해 부차모순과의 일시적 연합이나 우호적 관계 구축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때, 연합의 기반이 되는 동일성 속에서 투쟁을 멈추지 않으면서 결국 공산당과 공안당이 장악한 국가권력에 유리한 형태로 이끌어가는, 이른바 ‘동일성과 투쟁성의 변증법적 결합’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통일전선을 통하여 적대, 이질 세력들을 공산당과의 연합세력으로 포섭해나감으로써 소수의 적을 고립시키고 다수의 동조세력 혹은 우군을 확보하면서 공산당의 세력을 확대하고 나아가 집권 및 집정 역량의 강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 세계로 확대되는 통일전선전술
한편, 통일전선전술은 시진핑 체제의 아젠다 중 하나인 중국몽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제시되면서 국내 정치투쟁이 아닌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우위를 점하는 수단으로 전환되었고 통일전선전술의 대상도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2020년 11월 30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 회의는 통일전설전술 조례 수정안을 확정하며 마오의 ‘마법의 무기’ 교리를 언급했다. 인민일보는 직후 “단결할 수 있는 역량을 모두 단결하고, 동원할 수 있는 적극적 요소를 모두 동원해 애국 통일전선 사업을 추진하라”고 강조했다.
2021년 1월 5일에는 조례 전문이 공개됐다. 2015년 10장 46개 조문이던 조례 시행안은 14장 61조 1만225자로 늘었다. 권력 서열 4위인 왕양(汪洋·66) 정협 주석은 1월 18일 전국 통전부장 회의를 시작으로 조례 교육에 나섰다. 중앙통일전선공작부 영도소조 조장으로 통전을 진두지휘하는 왕양은 이날 “‘마법의 무기’로서 통전의 역할을 각인하고, ‘나라의 대사’로 마음에 품으라”고 촉구했다.
2019년 중앙통일전선공작부는 ‘온라인 인플루언서 팀’ 선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여우취안(尤權) 부장 주재로 중국 전역의 관련 부문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첫 회의를 열었다. 여우 부장은 회의에서 “여론과 다른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온라인 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 인민의 부흥과 중국몽 실현을 위해 지혜와 힘을 집중할 수 있도록 온라인 인플루언서들을 공산당의 지지자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직접 보고하는 기관인 중앙통일전선공작부는 전통적으로 중국 공산당과 국내외의 비(非)공산당 엘리트들 사이의 관계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아왔다. 그러나 2018년부터 이후 중앙통일전선공작부는 해외 거주 중국인 관계는 물론 민족 정책, 종교 사무 등에도 관여하는 등 역할을 확대해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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