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가 정의한 ‘인지전’은 “대중 및 정부 정책에 영향(influencing)을 미치려는 목적으로, 또는 정부의 행동 및 제도를 불안정화(destabilizing)하는 것을 목적으로 외부 주체가 여론을 무기화하는 것”이다. ‘대중’의 집단적 의견 체계, 즉 ‘여론’에 의하여 움직이는 새로운 정치 질서라고 정의할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는 인지전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여론은 인위적 조작이 가능하다
정치학에서 여론은 “‘관심있는 사람들’의 자유롭고 활발한 의견교환으로 추출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합의”로 정의된다. 여론은 현실적으로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을 의미하는 공중(公衆)의 의견이라기보다는 여론의 산출과정인 ‘해당 주제에 대한 토론에 참여한 능동적 소수’의 의견을 의미하기 때문에 의도적 인위적 조작이 가능하다.
또한 전통적으로 여론형성 주체의 역할은 ‘여론과 민주주의 사이’에서 양자를 상호 매개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온 언론과, 정치과정에서 수요측인 시민들의 요구를 공급측인 국가와 정부에 연결해주는 가교역할을 담당하는 정당이 담당해왔다. SNS, 1인미디어, 비정부 기구(NGO)의 등장은 민주주의 핵심 요소인 정치적 반응성과 책임성, 그리고 정치적 효능감을 강조하는 참여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이론적 현실적 관심과 맞물리면서 민주국가에서 정책결정과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론이 미치는 영향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여론의 영향이 커지면서 정치커뮤니케이션(political communication)의 중요성 역시 매우 커지고 있다. 정치커뮤니케이션은 ‘정치체제의 기능을 구축 또는 정치체제를 기능 시키는 메시지나 심벌(symbol)의 교환’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정치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인 정치언어, 수사, 정치적인 프로파간다(propaganda)와 선전, 토론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공간으로서 SNS, 1인 미디어의 역할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따라서 해당 국가에 적대적인 외부 세력으로서는 여론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핵심적인 정치과정인 선거에 개입해 상대국에 치명적인 결과를 일으키고자 하는 유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권위주의 국가들이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한 SNS와 1인 미디어를 통해 선거가 임박한 상대국의 여론을 조작함으로써 유권자들로 하여금 자국의 이익을 해치는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하려는 시도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6년 미국 대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Brexit) 국민투표 이래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선거 개입에 대한 견제와 경고
이러한 시도에 대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대응 역시 점차 공세적이고 체계적인 것으로 전환하고 있다. 2019년 미국 의회는 외국 정부나 조직이 미국 내 특정 기관이나 단체를 지원하거나 언론 조작, 테러 등을 통해 미국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외악성영향센터’를 설치할 것을 국방수권법에 명시한 바 있다. 실제로 2021년부터 국가정보국(DNI) 소속으로 ‘해외악성영향센터’가 운영 중에 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개입하려는 외부 세력에 대한 견제와 경고는 점차 활발해지는 추세다. 2018년 12월 17일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러시아가 각종 소셜미디어(SNS)를 사용해 2016년 미국 대선을 비롯한 여러 정치적 문제에 영향을 끼쳤다는 내용을 담은 두 개의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8년 8월 4일에는 국가정보국(DNI) 국장, 연방수사국(FBI) 국장, 국가안보국(NSA) 국장, 국토안보부(DHS) 장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백악관 정례 브리핑을 통해 외부 세력이 미국 선거에 개입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같은 해 미군 사이버사령부는 러시아 공작원들에게 중간선거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또한 한 미국 유력 일간지는 2022년 11월 8일(현지시각) 치러졌던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러시아 당국이 미국 소셜미디어(SNS)에서 유권자들의 여론 조작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직접 미국 현지 SNS 계정을 운영하면서 가짜뉴스 등으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호의적인 민주당을 공격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의 부당성을 적극적으로 유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사이버보안 및 인프라 보안국(CISA)국장 역시 미국 중간 선거일이 임박한 2022년 10월 29일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중국이 몇몇 주에서 선거 관련 자료(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하다 적발됐다”면서, 다가오는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에 위협 요인으로 러시아, 중국, 이란과 함께 북한을 지목했다. 미 국토안보부(DHS) 차관은 역시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2022년 10월 28일 ‘내년도 국토안보부 사이버 우선순위’를 주제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간담회에서 “중간 선거를 위해 안전한 선거 체계(시스템)를 확보하는 데 매우 집중”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미국은 2018년 미국 첩보기관의 핵심 공직자들이 과거, 현재, 미래의 미국 선거 보안과 관련해 각종 보고서, 평가서, 권고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투표 기기 보안, 투표 관련 전자 기술, 사이버 위협 탐지, 연방·주·지역별 선거 담당 공무원과의 소통 수단 및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밝히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18 회계연도 첩보수권법(Intelligence Authorization Act for Fiscal Year 2018)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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