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러시아와 중국이 발전시켜온 하이브리드전과 회색지대 전술은 이들 국가와 오랫동안 교류해온 북한의 군사 전략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핵무기의 지원을 받는 러시아의 하이브리드전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운용 교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해상민병대를 중요한 수단으로 하는 중국의 회색지대전략을 북한은 언제든 NLL 무력화의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배타적 경제수역과 이어도 등을 두고 분쟁 가능성이 잠재해 있는 중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수행해온 회색지대전략을 언제든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수행할 가능성도 상존해 있다.
이처럼 전통적인 군사적 능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전쟁의 임계점 이하에서 갈등을 일으켜 목표를 달성하려는 러시아와 중국의 다양한 시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고 건국 이래 우리나라를 체제 전복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북한의 군사 전략에 영향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전략을 발전시켜 온 국가들 역시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적대행위를 수행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국가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지전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
특히 가장 필요한 것은 ‘인지전에 대한 경각심’이다. 식상하지 않은 방법으로 ‘북한이 수행하는 인지전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는 것은 사실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라 할 수 있다.
중국의 통일전선전술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우위를 점하는 수단으로 전환되면서 발생한 문제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건국 이래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으로 북한에 의해 수행되어 온 안보 저해 활동이다.
북한은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으로 1949년에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한 바 있고 이후 반미구국통일전선·반파쇼민주연합전선 등의 구축을 외치며 1980년대에 한국민족민주전선을 위장 출범했며, 1990년대에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등을 결성한 바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전통적 방식에서 사이버 공간 등으로 통일전선 전술을 변경해왔다.
한편, 북한은 2023년 3월 노동당 선전선동부 산하에 대외 인터넷 선전을 총괄하는 조직을 신설하는 등 대남 ‘심리전’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김정일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군사적 도발뿐 아니라 2009년 디도스 공격, 2011년 농협 전산망 파괴 등을 주도했던 전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장 김영철을 통일전선부 고문으로 임명했다.
김정일은 김영철에게 한국 사회 혼란, 국정 훼방 등 대남 공작 강화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북이 김영철을 사령탑으로 세워 내년 총선 등 한국 정치 일정에 맞춰 대대적인 사이버 정보전을 전개해 사회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미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에 따르면 25%의 사람이 새로운 가치관이나 소수 의견에 동의하게 되면 고정관념이나 새로운 가치관이나 소수 의견이 전면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25%에서 25%를 약간 상회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가치관이나 소수 의견에 동의하게 되면 이 소수집단은 소속 그룹의 72~100%에 이르는 사람들을 바꿀 수 있다. 연구진은 25% 룰이 적용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온라인 공간을 지목했다. 로봇과 같은 자동화된 메시지 전달자를 구별할 수 없는 경우에는 로봇 역시 변화를 주도하는 ‘행동하는 소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에리카 체노웨스가 1900년에서 2006년까지의 시민저항운동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3.5%가 저항운동에 참여하면 거대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즉 전체 인구의 3.5%가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비폭력 저항운동에 참여하면 이 저항운동으로 인해 즉시 정권이 바뀌거나 참여가 정점을 찍은 후 1년 이내에 목적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즉 북한이 우리 사이버 공간에서 ‘로봇’을 이용해 우리 국민 중 25%가 북한이 유통하는 가치관이나 의견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하거나 우리 국민의 2.5%가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비폭력 저항운동에 참여하도록 할 수 있다면 곧바로 혹은 1년 이내에 선거 이외의 방식을 통해 정치권력이 교체될 수 있는 셈이다.
◆인지전에 둔감한 사회적 분위기
그러나 서구와 달리 이미 인지전이라 할 수 있는 환경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던 우리나라는 인지전의 위협에 매우 둔감하고 관성적인 대응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통일전선전술에 대응하는 서방 국가들의 대응은 크게 참고할 만한 점이 있다. 또한 러시아 중국 등 다른 권위주의국가들이 수행하는 인지전, 통일전선전술에 대한 서방 국가의 대응에 우리나라도 참여함으로써 북한이 수행하는 인지전, 통일전선전술에 대한 대응에 서방 국가들도 참여하도록 해 우리의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지전이 상시적으로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인식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인지전은 ”외부 세력이 여론을 무기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론을 무기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대응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이성적 사고 능력과 근거 중심의 사고 능력을 배양하고 정파적 사고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적대적인 외부세력이 직접적으로 국내 여론 형성 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지만 적대적인 외부세력에 동조하거나 이들과 일체가 된 자들이 국내에서 적대적인 외부세력에 동조하는 여론을 형성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여기에는 이러한 행태가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반대하는 강력한 여론의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여론의 힘이 뒷받침될 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사실상 치외법권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영역들이 적대적인 외부세력에 동조하거나 이들과 일체가 된 자들에 의해 악용되며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민주주의로 인해 민주주의 국가가 파괴되는” 현상을 우리가 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법적, 문화적 장치들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연재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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