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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게남는거(32)] 산과 숲이 선물한 치유의 맛 - 숲향지혜 트레킹

"산과 숲이 선물한 치유의 맛 "- 평창 산너미목장 '숲향지혜 트레킹'
평창미식회 3탄: 산양삼백숙, 산나물 3종, 메밀전과 메밀전병 외

김혜령 기자 승인 2019.11.11 21:50 | 최종 수정 2019.12.12 20:11 의견 0
평창 산너미목장에서 펼쳐진 <숲향지혜 트레킹>  (사진: 김혜령 기자)

‘가을이 왔나?’ 싶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산이 울긋불긋한 단풍 옷을 입었습니다. 나무들도 마지막으로 예쁘게 꽃단장을 하고 겨울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모양입니다. 오늘 산너미 목장에서는 단풍과 함께하는 특별한 여행을 준비했다고 들어서 한시바삐 달려왔습니다. 가을이 가기 전 흑염소가 뛰어노는 산너미목장에서 펼쳐진 특별한 숲 여행 ‘산너미목장 숲향지혜 트레킹’에 함께 가보시죠.

‘숲향지혜 트레킹’이란 동물들에게 있는 ‘영양지혜’라는 개념을 차용해 붙인 제목입니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부족한 영양소를 찾고 그 영양소를 채우려는 활동에 노력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향과 맛을 통해 영양소가 있는 식품을 감별하는 본능이죠.

‘영양지혜’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잃어버린 능력입니다. 대량생산되는 가공식품을 많이 먹다보니 조미료와 식품첨가물로 만들어진 가짜 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죠. ‘숲향지혜 트레킹’은 자연 그대로 보존된 평창의 숲을 거닐며, 평창의 숲이 제공하는 자연 그대로의 먹거리를 통해 향과 맛에 대한 감각을 일꺠워 영양지혜를 회복하는 취지의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트레킹 가이드가 되어 준 산너미목장 임성남 목장지기와 국립 '대관령 치유의숲' 김진숙 센터장님  (사진: 김혜령 기자)

 

◇ 잠들어 있던 내 몸을 깨우는 가벼운 트레킹

먼저 가벼운 트레킹을 시작으로 도시생활 속에서 잠들어 있던 눈과 코와 귀를 열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특별히 국립 ‘대관령 치유의 숲’ 김진숙 센터장이 동행하며 트레킹 전반의 가이드가 되어 주셨습니다.

구불구불 가벼운 등산이 이어지던 중 살짝 갈증이 나던 차에 오미자 주스 한 병을 받았습니다. 병에 담긴 맑은 빨간색 음료가 루비색과 같아 보석 한 통을 선물 받은 기분입니다. 쌉쏘롬하면서도 새큼한 맛, 거기에 달달함까지 가미돼 혀끝에서부터 몸에 활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랜 도시 생활로 울퉁불퉁하고 가파른 길이 조금 험하게 느껴졌지만 오랜만에 낙엽을 밟으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한걸음 내딛을 때 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귀에 살며시 다가옵니다. 숲 속에서 풍겨져 나오는 가을 냄새와 나무 향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런데 낙엽 사이로 슬며시 보이는 작고 검은 알갱이들이 보입니다. 알고 보니 검은 알갱이들의 정체는 흑염소 똥이었습니다. 눈여겨보니 이 흑염소 똥이 지천에 널려있습니다. 악취가 전혀 나지 않아서인지, 숲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일부라서인지 트레킹하는 내내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게 신기했습니다.

정상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도넛과 삶은 감자

 

◇ 산 정상에서 듣는 임성남 목장지기 이야기

성큼성큼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트레킹으로 출출해할 사람들을 위해 새참으로 도넛과 삶은 감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강원도’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식재료 중 하나가 감자인데요, 평창 감자의 식감은 보통 감자보다 농도가 훨씬 짙었습니다. 고구마 같은 농도로 감자의 질감이 쫀쫀해서 보통 먹어보던 포슬포슬한 감자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평창의 대표적인 로컬푸드 빵집 <브레드 메밀>이 만든 도넛 역시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맛이었습니다.

정상에 앉아 새참을 즐기는 동안 산너미목장 임성남 목장지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임성남 목장지기는 증조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져온 목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영농후계자입니다. 이곳에서 기르고 있는 흑염소는 약 600마리. 삼남매가 힘을 합쳐 흑염소 농장을 이어받아 운영하면서 염소 고기의 가공과 판매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흑염소는 임신 후에 뱃속에 5개월간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가 출산을 합니다. 이후 3개월간 포유하며 새끼를 길러냅니다. 때문에 출산 주기는 2년에 약 3번 정도이며, 번식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목장 생태계를 고려해 개체 수를 조절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늘 밑으로 숨어든 흑염소 2마리. 사람을 피하는 습성이 있어 사람들이 다가오는거리만큼 조금씩 달아난다고 한다.  (사진: 윤준식 기자)

산너미목장은 전국에서 2번째로 큰 흑염소목장인 동시에 자연순환농법으로 염소를 키우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흑염소들은 이곳에서 자생하는 풀과 약초를 먹고 변을 배출합니다. 이 변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비옥한 토양을 이루는 밑거름이 됩니다. 트레킹하던 길에 흑염소 똥이 흩뿌려져있었지만 변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산너미목장에서 자라는 흑염소들은 자연방목 과정에서 환경에 적응하며 잔병없이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염소는 야생성도 강한 반면 귀소본능이 있는 동물이라 자연방목으로 키워도 달아나지 않고 우리로 돌아온다고 하는군요. 다만 봄, 여름, 가을처럼 자연에 먹을 거리가 널려있을 때는 흑염소를 한데 모으는 게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산 이 곳 저 곳을 떠돌아 다니며 한껏 먹성을 부리고 다닌다고 합니다.

임성남 목장지기의 목장이야기가 마무리되고 김진숙 센터장과 산속 공기를 느끼면서 테라피를 즐기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산속에서 명상을 즐기며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와 냄새와 광경에 귀와 코, 눈을 열었습니다. 드높은 평창의 하늘, 곳곳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 코끝에 맺히는 나무 향까지 그야말로 힐링시간입니다.

목장 뜰에 일렬로 펼쳐진 테이블  (사진: 김혜령 기자)

 

◇ 향긋한 산양삼 백숙과 엄마손맛 가득한 나물 3종을 한 자리에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내려오니 뱃속이 요동치며 어서 음식을 들여보내라고 명령을 합니다. 오늘의 점심식사는 향긋한 산양삼을 넣어 만든 산양삼 백숙과 어머님들의 멋진 손맛으로 버무려진 산나물 3종, 여기에 메밀을 넣어 반죽한 전과 전병까지 가미된 강원도 한상차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캐나다 사람이 만든 이핵 평창맥주 화이트 크로우 맥주와 산양삼주 등 색다른 술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강원도 감자가 들어간 감자백숙. 국물에서는 은은한 산양삼 향이 풍겨져 나옵니다. 국물은 진하면서도 달큰한 맛이 났습니다. 탱탱하고 쫄깃한 육질의 백숙을 찢어 갓김치를 싸 먹으니 일품입니다. 알싸하면서 톡쏘는 갓김치 덕에 닭고기를 뱃속으로 무한투척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 손맛이 듬뿍 담긴 곰취나물, 곤드레나물, 산마늘 장아찌 3종세트는 강원도의 숲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메뉴였습니다.

산양삼백숙, 메밀전과 메밀전병, 산나물 3종세트로 구성된 오늘의 식탁  (사진: 김혜령 기자)

곰취는 처음의 진한 향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지만, 질깃질깃한 식감과 씹을수록 입안에 가득차는 향이 좋아 입으로 향하는 손을 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곤드레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나물답게 보드라운 식감이 일품이었습니다. 곰취의 질깃함과 대비되는 보드라움 덕에 더욱 매력적이었습니다.

산마늘은 마늘향이 나는 산나물이라는 특징에서 이름 붙었습니다. ‘명이나물’로 알고 있는 분도 있는데, 이는 춘궁기 때 목숨을 이어준 나물이라는 뜻으로 울릉도의 전승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평창에서 맛본 산마늘 장아찌는 흔히 맛보던 명이나물과 달랐습니다. 사람 얼굴을 가릴 만큼 거대한 크기도 특징이지만 보통의 명이나물보다 향이 2배는 더 진해 백숙과 곁들인 풍미가 좋았고, 다른 고기 요리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메밀전병은 전병의 피에서부터 메밀의 향이 올라와 군침을 돋게 했습니다. 전병의 소는 고소한 두부향과 탱탱한 당면, 아삭한 김치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메밀 특유의 텁텁한 구수함이 이어지며 전체적인 맛을 한 단계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어머님의 손맛이 흠씬 묻어나는 곰취나물, 곤드레나물, 산마늘 장아찌  (사진: 김혜령 기자)

 

◇ 쫄깃한 식감에 지방층의 풍미가 일품인 흑염소 고기를 맛보다

이곳의 백미는 지금부터입니다. 서울에서도 흔히 먹을 수 없는 염소고기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염소고기를 맛봤던 사람들 중에는 “염소고기? 글쎄..? 잡내나잖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냄새는 잡고 풍미는 살리는 산너미목장만의 숙성방법이 곁들여져 처음 맛보는 분들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염소는 ‘양 풍미를 지닌 소고기’로 불립니다. 소고기의 특성과 비슷해 바싹 굽지 않고 먹어도 괜찮고 맛이 더 훌륭합니다. 지방층이 많은 부위에서는 씹는 순간 “엇, 양고기인가?”하는 느낌의 식감과 향이 납니다.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를 먹고 자란 흑염소인지라 육질은 그야말로 쫄깃함 그 자체입니다. 돼지고기에 비해 입자가 아주 땅땅하지만, 그렇다고 고기가 질기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촘촘한 고기입자 덕에 아주 탱탱하고 쫄깃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오늘 맛본 흑염소고기는 살짝 떫고 씁쓰름한 맛이 나는데, 지금이 가을이라 도토리를 먹은 흑염소의 특징이 나타난 것입니다. 도토리 껍데기에 있는 성분이 흑염소의 몸에 고스란히 흡수되었기 때문이라네요.

염소고기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표현하자면, "양고기의 풍미를 지닌 쇠고기?"  (사진: 김혜령 기자)

 

◇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아로마테라피

모든 프로그램의 마무리는 아로마테라피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가족 간에 손을 잡고 마사지를 하며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지만 서로 친해질 계기로 만들었습니다. 함께 살면서도 서로의 손을 유심히 볼 기회가 없었던 가족들도 많은데, 이번 기회에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정성을 기울여 봅니다. 테라피에 사용한 아로마오일은 프로그램을 진행한 포레스트로드700팀에서 특별히 준비해주셨습니다.

마사지가 끝나자 매트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이 곳에서 나는 소리에 귀기울여보기도 했습니다. 이제껏 우리가 도시에서 소음공해, 빛공해로 잊고있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소리, 내가 맡고싶은 향에 집중하며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 어쩌면 이런 시간이야말로 우리몸이 영양지혜를 되찾아 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로마테라피-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  (사진: 김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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