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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게남는거(30)] 한계절 더 빠른 강원도의 맛! - 강원오계절

한계절 더 빠른 평창에서 강원도의 또다른 맛을 느끼다!

김혜령 기자 승인 2019.10.08 21:19 | 최종 수정 2019.12.12 20:07 의견 0

강원도는 다른 지역보다 한 계절이 먼저 찾아옵니다. 산 아래에서 여름 감자를 캘 때, 강원도는 가을감자를 캡니다. 가을 무를 한참 수확하는 데 정신이 없는 산 아랫마을과 달리 벌써 가을무 수확을 마무리했죠. 이렇게 다른 지역보다 계절이 하나 앞서가기 때문에 ‘계절이 하나 더 있다’고 합니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앞선 계절을 걷는 강원도라는 의미의 ‘강원, 오계절’입니다.

오늘의 방문지는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입니다. 미탄면의 한자는 미탄(美灘), 아름다울 미를 넣어 부르는 지명이지만, 이전에는 쌀 미(米)를 넣었다고 합니다. 강원 산간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쌀이 생산되던 지역입니다. 고지대부터 저지대까지 강원도가 품고 있는 보물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만났던 주인공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첩첩산중 미탄면. 강원 산간지방에는 드문 쌀의 고장이었다 한다.  (김혜령 기자)

강원도 날씨는 생각보다 많이 쌀쌀했었습니다. 특히 해발 1250m 고지대를 먼저 방문했기 때문에 10월 초 따사로운 햇살과 공기를 생각하신다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 따뜻한 옷은 꼭 한 벌 챙겨주세요. 날씨가 춥다고 웅크릴 수만은 없죠. 고지대가 주는 대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먼저 눈에 담아보았습니다. 탁 트인 광경과 파란 하늘이 가슴을 뻥 뚫어주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절로 콧물을 훌쩍이자 따뜻한 차 한 잔이 절로 생각났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알았던 것인지 마을 분들께서 이곳 1250m에서 나는 무로 우려낸 무차를 준비해주셨습니다. 사전 준비물이었던 텀블러를 지참한 방문객들은 따뜻한 차 한 잔에 몸을 절로 녹일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추운 날씨에 굳었던 몸을 풀고 성큼성큼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곳은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 한 켠에 자리한 드넓은 무밭이었습니다. 농사는 다 마무리 되었지만 밭주인은 방문객들을 위해 무를 조금 남겨두셨었습니다.

약재로 쓴다는 가을무를 우려낸 차를 마시고 무밭 사이도 걷고...  (사진: 김혜령 기자)

가을무는 약재라 불릴 만큼 몸에 좋고 맛도 좋기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하지만 이곳의 무는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던 무와는 맛이 달랐습니다. 알싸하고 매운 맛에 끝이 톡 쏘는 게 꼭 와사비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가을무 맛은 달달하고 시원한 맛인데 말입니다. 이곳 무는 초록색을 띤 끝 부분을 와사비 대신 넣어 먹어도 맛이 좋을 만큼 맵싸한 맛이었습니다. 마요네즈와 곁들여 먹거나 샐러드 재료로 흔하게 사용되는 샐러리 역시 허브나 향신료만큼 강렬한 향을 자랑했습니다.

‘육백마지기’에서 농사를 짓는 우리나라 유기농업인 1호 이해극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해극 할아버지는 토박이 농부도 버린 땅에서 오랜 기간동안 농사를 짓고 계셨습니다. 특히 할아버지는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으시는데, 이는 벌레가 먹을 수 있어야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할아버지의 철학을 담은 내용이었습니다.

이해극 할아버지가 세운 잡초공적비  (사진: 김혜령 기자)

특이한 것은 할아버지께서 ‘잡초 공적비’를 세우셨다는 것인데요. 흔히들 잡초가 많으면 농작물이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할아버지께서는 농약을 치지 않고도 잡초와 농작물이 공존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경사가 진 고지대에 비가 많이 올 때 잡초가 있어야 농작물이 유속에 쓸려가지 않고 잘 버틸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무 밭에서 이해극 할아버지의 농산물 철학과 이 땅에서 나는 무와 샐러리, 나물의 맛을 보고나서 집으로 가져갈 맛있는 무를 직접 뽑았습니다. 강원도의 토양을 머금고 자란 무는 매끈하고 뽀얀 모습을 땅 속에 숨기고 있다가 사람들 손에 이끌려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내 손으로 뽑은 무를 챙겨가는 사람들은 함박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직접 수확한 가을무에 행복해하는 참가자들  (사진: 김혜령 기자)

추웠던 1250m 고지를 뒤로하고 해발 540m고지로 내려가 다른 식재료를 만나러 갔습니다. 노인 회관 옆 작은 집 한 채로 들어 가보니 킁킁,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출출한 배를 자극했습니다. 이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정오모 할아버지 댁에서 오들오들 떨었던 몸을 녹일 수 있는 옥수수와 홍차를 간식으로 받았습니다. 옥수수는 쫀득하고 구수한 식감을 자랑했습니다. 오늘 맛보는 식재료는 모두 이 평창 미탄면에서 나고 자란 음식들입니다. 이곳에서 강원도 평창이 자랑하는 다양한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입말한식가 하미현 선생님의 손길과 목소리를 따라 바닥에 놓인 강원도의 보물들을 바라봤습니다.

크게 해발 1250m, 540m, 300m로 나누어 재배되는 다양한 식재료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나볼 수 있는 감자와 옥수수도 한가지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이 곳에서 설명을 들은 감자만 해도 중월감자, 노란감자, 남작감자 3가지 종류였습니다. 남작감자는 감자를 얼리고 삭혀 가루를 만들어 빵이나 면 등 다양한 요리에 쓰입니다.

강원 5계절을 느끼게 하는 평창의 다양한 먹거리들  (사진 김혜령 기자)

특별히 중월감자와 노란 감자를 시식해볼 수 있는 기회도 주셨는데요. 오, 두 감자의 맛이 확연하게 다릅니다. 좀더 포슬포슬하고 시중에서 맛볼 수 있는 맛이 나는 노란감자와 달리 중월감자는 껍질부터 고구마처럼 약간 붉은 빛을 띠고 달짝지근한 맛에 쫀쫀한 식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옥수수 역시 흑찰옥수수, 황옥수수, 팔줄배기 3가지 종류를 소개받았습니다. 각 식재료의 특성에 따라 만들 수 있는 요리들도 차이가 나는군요. 식재료와 재료에 어울리는 음식, 음식에 어울리는 추억까지 마을 주민들의 보따리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참동안 선생님의 이야기에 경청했습니다.

강원도의 별미 덤벙김치. 적시는 듯 묽은양념이 특징  (사진: 김혜령 기자)

강원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별미, 덤벙김치를 즉석에서 만드는 시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정원옥 어머님의 설명에 따라 무심한 듯 슥슥 무쳐지는 빠알간 김치를 보니 꼴깍, 오랜 여정에 잠시 사라졌던 식욕이 살아났습니다. 약간 새콤한 향에 김장김치와 달리 묽은 양념으로 적시듯 무치는 덤벙김치. 아삭아삭한 물김치의 식감과 새콤한 맛이 별미중의 별미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이어 빠른 손길로 메밀전병도 부쳐주셨습니다. 고소한 메밀 맛에 시큼새큼한 소가 곁들여져 마냥 집어먹을 맛이었습니다.

간식으로 입맛을 돋우고 나서 한상 그득 차린 음식들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습니다. 감자 송편, 올챙이국수, 옥수수 묵, 메밀전병, 덤벙김치처럼 마을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이 드시던 음식도 있었지만 삭힌 감자가루 빵, 메밀 맥주, 메밀 카눌레처럼 강원도의 음식을 현대화한 음식들도 있었습니다. 옛 것과 새로운 것들이 어울려 이색적인 한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아주 특별한 점심밥상. 이게 1인분이었다.  (사진: 김혜령 기자)

미탄면은 원래 광부들이 살던 마을이었습니다. 우리도 미세먼지를 먹으면 삼겹살로 먼지를 씻어낸다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탄광에서 먹은 묵은 먼지를 돼지고기로 씻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탄에 구운 돼지고기도 준비해주셨습니다. 강원도는 식재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관하고 먹을 장 말고도 빠르게 발효시켜 먹을 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장을 토장 또는 튀장이라고 부릅니다. 어머님께서 정성껏 끓여주신 찌개는 강원도의 별미, 토장으로 끓인 찌개였습니다, 쿰쿰하고 시큼하면서도 청국장과는 또 다른 맛이 식욕을 더욱 자극했습니다.

음식을 한 입 머금을 때마다 무심하고 투박한 어머님의 손길만큼이나 덤덤하고 깊은 맛에 감탄이 연신 튀어나왔습니다. 음식을 먹는 사람들 표정에서도 미소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식재료 본연이 가진 힘이 입속으로 들어가는 음식들마다 느껴졌습니다. 어르신에게 한상 잘 대접받고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수확한 식재료로 만든 모빌  (사진: 김혜령 기자)

마지막으로 우리가 배운 식재료들을 되새기면서 벽에 걸어놓을 수 있는 모빌을 만드는 시간으로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개량품종이 아닌 매운맛, 대화초, 강원도 옥수수 뿐 아니라 대추, 산초 등도 곁들여져 알록달록한 색채를 드러냈습니다. 이 모빌은 식물이 말라가면서 새로운 빛깔을 자랑하기 때문에 더욱 매력 있는 모빌입니다. 처음엔 멈칫하던 분들도 나중엔 신이 나서 서로의 모빌을 자랑하기까지 합니다.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새 마을 어르신들에게 정이 든 모양인지 손을 꼭 잡은 채 연신 인사를 건네고, 어르신들과 한껏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강원도의 소박하지만 산골처럼 깊은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 새 연재 [로컬이좋다]는 로컬크리에이터와 로컬콘텐츠 전문웹진 <비로컬>과 공동기획, 공동게재되는 특집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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