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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신화", Artist 게르하르트 리히터

사진작가 정영혁과 만나는 현대예술이야기(1)

사진작가 정영혁 승인 2019.05.22 10:28 의견 0

현재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독일의 예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2002년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대규모 전시 ‘Gerhard Richter: Forty Years of Painting’을 통해 그의 명성을 전 세계에 재확인시켰다.

리히터는 추상의 사실성, 표현주의, 포토 리얼리즘, 팝 아트 등 다양한 페인팅 스타일과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 양식을 보여주었다. 리히터의 시각은 어느 한 예술 형식에 그치지 않았다. 화가로서 40여년을 살아오며 다양한 종류의 예술적 스타일을 보인 것은 그의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 Atlas 13, 1964


1932년 독일 드레스덴(Dresden)에서 출생한 리히터는 이미 10대 후반에 무대와 빌보드(1948~1951)의 페인팅을 제작하는 상업적인 기술을 습득했다. 리히터는 드레스덴의 Kunstakademie에서 전통적인 교육과정을 수학(1951~1956)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파블로 피카소, 레나토 거스투소의 작업에 정통했으며, 제도자(Drafstman)로서, 사실주의 화가로서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959년 리히터는 화가로서 중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독일의 카셀에서 개최된 ‘국제 아트 페어 다큐멘타 II'를 관람하면서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의 작업에 깊은 인상과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추상 표현주의와 팝 아트가 한창 미술 세계를 지배하던 시기의 작업들로, 리히터는 자연스럽게 세계 미술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에 리히터는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이주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이것은 곧 “프롤레타리아 집단이라는 명명 아래 지배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였다.”고 리히터는 말한 바 있다.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포기는 것이며, 동시에 예술이 어떤 행위나 목적을 위해 고용될 때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사라진다는 리히터의 예술적 의지와 판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 Ema(Nude on a Staircase), 1966

1960년 리히터는 서독의 뒤셀도르프(Dussel-dorf)로 이주한 후 칼 오토 고츠Karl Otto Gotz로부터 추상 표현주의를 접하게 되었고, 플럭서스(Fluxus)와 팝 아트의 영향으로 화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즉 자신만의 예술관인 ‘사진을 그리는 회화(paint a photo)’를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아트 인터내셔널(Art International) 매거진을 통해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과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업을 접하게 되었다.

뉴욕 팝 아트의 대표적인 두 작가는 인쇄매체의 이미지들을 그들의 작업 재료로 활용했다. 리히텐슈타인은 미국에서 유행하는 만화의 일부분을 차용해 작품을 제작했으며, 워홀은 자신이 직접 촬영한 이미지나 인쇄매체의 사진을 그대로 차용해 실크 스크린 했다. 리히터는 이러한 팝 아트 작가의 작품 특징으로부터 어떻게 페인팅이 재생산의 의미로 재현이 가능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사진을 재료로 페인팅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심취하게 됐다.

▲ GOMA_GerhardRichter_installationview_photo_Natasha Harth, 2017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이용하기 시작한 리히터는 종종 뉴스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 아마추어 스냅사진, 잡지, 포르노 사진, 자신이 직접 촬영한 사진 이미지로부터 모사(copy) 페인팅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집된 사진들은 『아틀라스(Atlas)』라는 타이틀로 약 600개의 판넬에 5천 여 이미지 사진들로 만들어졌으며, 1995년에는 뉴욕에서 전시를 가지기도 했다.

사진을 이용해 그림을 재현한 리히터는 사진에 대해 “내가 사진으로부터 그림을 그릴 때 의식적인 사고를 제거한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진은 그림, 드로잉 그리고 일러스트레이션을 대신하고 사진은 그것들의 진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사진은 진실로 간주되고 그림은 인위적이다. 사진은 어떤 그림보다 더 굳건하고 믿을 만한 것이다. 사진은 객관적인 시각을 지녔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실을 말해준다. 사진은 기술적으로 단점을 지녔고 내용이 거의 동일함을 증명할 수 없을지라도 믿음을 지니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리히터는 사진이 진실의 전형을 완전히 갖추지 못했지만, 일반인들이 ‘사진은 진실하다’는 일반론적인 신념을 지녔다는 것을 바탕으로, 그러한 개념을 그의 그림에 적용하고 응용한 것이다.

그 당시 리히터는 추상 표현주의와 팝 아트, 플럭서스를 접하면서 페인팅에 대해 반 예술적인 테크닉을 구사하는 객관적인 페인팅의 이미지를 연구했다. 리히터 자신은 스스로 페인팅에 대해 “페인팅의 방식 그 자체가 곧 비평적 대상이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는 리히터 자신이 제작한 페인팅의 방식이 곧 하나의 스타일이자 내용 그 자체라는 말이다.

1963년부터 리히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선명하지 않은(Blur), 그러나 정확한 그림’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대상의 자세한 외부 디테일을 무시한 채 대상을 최초의 반응, 즉 하나의 모양새로 여기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 Reader, 1994

리히터는 “하나의 대상이 지닌 재현의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예술적인 면을 강조하고 재현하는 것이다.”라고 그의 작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선명하지 않은 이미지는 이미지가 원래 구성하고 있는 독특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리히터가 사진을 이용해 그림을 묘사할 때 사진을 아무렇게나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내용 보다는 구성과 형식에 초점을 맞춰 선택한 사진들을 그림으로 다시 복원시키고 있다. 비록 아마추어 사진가가 촬영한 사진이라도 리히터는 그것들을 선택해 그림을 그리곤 했다. 리히터는 마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평범한 오브제를 조각으로 간주했듯이 자신의 그림을 ‘레디메이드(ready-made)’로 간주하고 있다.

예들 들어 ‘계단을 내려오는 여인(Woman Descending the staircase)’은 리히터의 ‘아틀라스(Atlas)’ 판넬 13의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판넬 사진의 이미지는 한 여인이 긴 흰색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귀에는 원형의 검은색 귀걸이를 달고,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화려한 드레스와 구두를 착용하고, 힘차게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이 잘 포착된 스냅사진이다. 마치 패션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사진이다.

그러나 리히터의 그림은 이러한 세부적인 내용을 정확히 읽어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진 원본에서 볼 수 없는 선명하지 않은 떨림의 효과가 리히터의 그림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계단을 내려오는 여인’으로부터 이전에 언급한 사항들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리히터의 그림에는 사진 만큼이나 역동적인 순간이 묘사되었으며, 사진 이미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나름의 디테일이 재현되었다. 머리모양, 흰 스카프, 귀걸이, 드레스와 구두, 경사진 계단이 잘 표현됐다. 우리가 만약 이 그림의 원천 재료가 된 사진을 알 수 없었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우리는 이미지를 사진 만큼이나 역동적이고 순간 포착이 잘 표현된 하나의 그림으로 보고 느끼게 될 것이다.

▲ Woman(Descending on a Staircase), 1965

즉, 우리가 하나의 사진 이미지를 볼 때 그 사진 이미지만을 보는 것이지 사진의 재료인 사실적인 배경, 인물 그리고 사물 등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 사진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로서 프레임 안을 채우고 있는 요소들을 보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리히터는 사진이 지닌 객관적인 진실과 재현의 힘을 빌려 믿을 만한 진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리히터가 그린 또 다른 종류의 그림들은 마치 초점이 흐린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특히 가족과 친척들의 스냅사진을 이용해 그린 그림에서 이 같은 특징이 잘 드러난다. 훌륭한 디테일과 부드러운 광선에 감싸인 리히터 딸의 이미지 ‘Betty’, ‘Re-ading’은 사진인지 그림인지 혼동될 정도이다.

1966년에 제작한 ‘Ema(Nude on a Staircase, 1966)’는 부인의 컬러사진을 이용한 것이다. 이 이미지는 마르셀 뒤샹의 대표작 ‘Nude Descending a Staircase’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지만, 뒤샹과 달리 매우 자연스러운 형상을 지니고 있다. 이 작업은 뒤샹이 추구한 레디메이드를 반전한 의미의 그림이다. 이러한 리히터의 그림들은 마치 회화가 사진을 닮으려는 회화 리얼리즘의 최고점을 보는 듯하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매우 복잡한 작가이다. 그의 작업들은 특정한 예술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시대정신과 예술 사조를 반영하고 있다. 그는 초창기에 사회주의 예술가로부터 출발해 추상 표현주의, 팝 아트, 개념미술, 플럭서스, 포토 리얼리즘을 그림에 농축시켰다.

리히터의 개인적인 스타일은 예술과 실재 혹은 진실의 경계에서 다양한 예술 장르가 지닌 매체적 특성을 한데 모아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리히터는 예술론에 대해 “예술이란 사물을 재현하는데 있어 스타일, 테크닉, 재현된 사물 등이 예술가의 개인적인 자질-삶의 방식, 환경, 능력-에 따라서 새로움이 수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작가 정영혁>

뉴욕시각예술대학교 사진미디어 대학원(School of Visual Arts, MFA)

동양인 최초 아론 시스킨드(Aaron Siskind) 예술 지원금 수상

강남피플(인터뷰 다큐멘터리 매거진) 발행인

한국콘텐츠생산연구소장(KCPL)

1인1미디어 시대 퍼스널 콘텐츠 브랜딩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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