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지금까지 15년간 줄 곳 매달 한 번씩 둘째 아들 기현이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부형 엄마들과 모임을 갖는다. 일찍 귀가한 어느 날 나는 아내의 모임이 있는 날인 줄 모르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어디야 이 시간까지 집에 안 오고 뭐해 배 고픈데......"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아내가 오히려 버럭 화를 낸다.
"당신 출근할 때 오늘 모임이라고 얘기했잖아요" 바깥 일이 정신 없어서 깜빡 잊었나 보다. 허기가 지고 바깥일로 지친 나는 엄청 화를 내고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한 동네에 사는 외삼촌한테 전화가 왔다.
"정환아 동네에 기막히게 싸고 분위기 좋은 집이 생겼다. 나와라. 한 잔 빨자" 외삼촌이 오라는 곳으로 가니 사장과 종업원들이 모두 교복을 입고 서빙을 한다. 술집이름이 촌스럽게 <봉숭아 학당>이다.
"음식가격이 정말 착하네요 이렇게 장사해도 남는 게 있어요"
내 물음에 사장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한다. "박리다매죠"
▲ 나의 젊은 시절의 우상이며 멘토 그리고 술벗인 외삼촌(오른쪽), 지금은 고흥군 나로도에 귀촌해서 펜션을 운영한다. 영화배우 조인성이 단골이다. ⓒ 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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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과 나는 급하게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는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니, 아내가 대여섯 명의 아줌마들과 수다 떠는 모습이 보인다. 그쪽으로 가서 "아까 화내서 미안해" 라며 말을 건네니 합석했던 아줌마들이 나와 아내를 번갈아 보며 "누구야 형부"라고 묻는다.
아내는 또래들보다 조금 늦게 결혼을 해서 같은 학부모 사이에선 언니 대접을 받고 있었다. 기현이 아빠라고 소개를 하니 "안녕하세요, 형부"라며 합창하듯 인사를 한다. 잠시 앉으라고 권하기에 합석해서 소주 서너 잔을 같이 마시고 외삼촌이 계신 자리로 옮겼다.
며칠 뒤 외삼촌과 나는 그 집에 다시 갔다. 그런데 지난번과 특별히 바뀐 게 없는데 뭔가 이상하다. 그땐 분명히 사장과 종업원들이 모두 다 남학생들 이었는데...... 이번엔 모두 여학생들인 거다.
"어 주인이 바뀌었나요" 내 물음에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여고생 복을 입은 아줌마가
"네, 제가 인수했어요"라고 답을 한다.
물론 음식 맛이나 가격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지난 번 남자교복들보다 여학생이 훨씬 좋지 않겠나 나는 남자니까......
"아줌마 그런데 예전보다 손님이 적네요" 내 질문에 여사장은 안색이 변하면서
"속았어요. 지난번 사장이 권리금 잔뜩 받고 나한테 넘겼는데 바로 요 밑에 똑같은 컨셉으로 또 하나 차렸어요 게다가 가게 이름도 <학창시절>이라고 지었어요" 라며 속상해 한다.
얼마 후 봉숭아학당은 문을 닫고야 말았다. 그 자리에 다른 음식점이 들어섰는데 그때 그 예쁜 사장아줌마가 안 보인다. 아마도 가게를 넘기고 동네를 뜬 거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봉숭아학당 첫 사장은 영업이 부진한 자리의 점포를 저렴하게 얻어서 어느 정도 자리에 올려놓고 비싼 권리금을 받아 넘기며 옮겨 다니면서 돈을 버는 스타일이었던 거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 방천시장 입구 호프집 자리에 <조개0번지>라는 조개구이집이 생겼다. 궁금해서 동네 선배랑 가보니 예전 봉숭아학당의 그 남자사장이 인사를 꾸벅 한다. 조개구이집을 차린 거다.
"성심껏 할 테니 자주 오세요. 형님." 이 친구 변죽도 좋다.
“나랑 얼마나 알고 지냈다고 형님이야 자네 이 집은 얼마나 운영할 건데” 내가 살짝 시비조로 꼬아 물으니 “형님, 이 집은 이 동네 떠날 때까지 유지할 겁니다. 소문 좀 잘 내주세요” 란다.
그런데 그 집은 무척이나 장사가 잘 돼서 근처에 분점까지 냈다. 돈 버는 건 사람심성을 따라 가는 게 아닌가 보다.
‘그래 이 나쁜 놈아! 악질이라고, 악덕 사장이라고 소문을 내주마’ 물론 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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