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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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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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탱자씨네 실내 포장마차 옆엔 건물 귀퉁이를 개조한 약 두 평 남짓한 생선가게가 있었다.
그 생선가게가 위치한 그 골목을 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방천시장이라고 부르는데 예전에 재래시장이었던 방천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큰 건물 몇 채가 들어서서 예전의 시장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나마 탱자씨네 옆 생선가게가 예전 시장이었던 풍모를 보여준다.
그 생선가게에선 부부가 함께 일을 했다. 아내는 후덕한 품세고 아저씨는 상당히 호전적인 외모이다. 이 아저씨는 덩치가 큰 편인데 얼굴이 호랑이상이라 눈이 부리부리한 편이고 말수가 너무 적어 동네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평판을 못 듣는 편이다.
방천시장의 불친절한 생선가게는 지금은 통닭튀김집으로 바뀌었고 욕쟁이 탱자씨네 실내포차는 로또가게로 바뀌었다.
(이정환 작가)
한번은 기백 엄마의 심부름으로 생선을 사러 갔을 때 일이다. 얼큰한 동태 찌개로 저녁을 차리려던 아내가 동태를 잘 다듬어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생선가게 아저씨는 생선을 다듬다가 생선 머리랑 내장을 따로 처리를 하는 게 아닌가 생선은 머리와 내장이 우러난 국물이 제 맛인데, 그걸 따로 빼는 걸 보고 내가 한마디 했다.
“아니, 아저씨 머리 부분하고 내장도 같이 주셔야죠.” 그랬더니 이 아저씨 대답이 가관이다.
“그럼 우리 부부는 뭘 먹는대유”
나는 어이가 없어서 버럭 화를 냈다.“팔다 남은 거 드시면 되겠죠. 왜 내가 산 생선 부위를 아저씨네가 드셔야 하는데요”
그러자 치사하다는 듯 나를 뻔히 쳐다보면서 지지 않고 한마디 한다.“어여 돈이나 주고 가세유.”
이 사람 충청도 사람인데 고집 세고 꽉 막힌 사람이다. 처음엔 탱자씨와 엄청나게 싸웠단다. 지금은 이웃한 관계로서 서로 위하며 잘 지내지만 말이다. 이 사람한테 가격 흥정이란 건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깎아 달라는 말만 하면 바로 한마디 내뱉는다.“됐구만유, 그냥 가세유.”
물건 사는 사람은 어이가 없지만 이 동네엔 유일한 생선가게라 그 집에서 생선을 사지 않으면 한참을 나가야 재래시장인 숭인시장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집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배짱이 대단한 거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 집 물건이 나름대로 신선한 편이고 주인장 태도가 맘에 안 들어도 발품 팔아 큰 길 건너 까지 나와숭인시장까지 가서 사는 수고를 덜기 위해 이 집을 이용하는 편이다.
처음엔 탱자씨네 포장마차도 안줏감 생선을 숭인시장에서 떼다 팔았다. 생선가게와 탱자씨네 포장마차는 화장실을 같이 쓰는데 사소한 다툼이 무지 잦았고 성깔있는 욕쟁이 탱자씨는 지지 않고 다투었던 모양이다.
생선가게는 길가 쪽까지 생선을 진열해서 팔고 생선 박스를 탱자씨네 가게 문 옆에 쌓아두었는데 여름이면 생선 박스에 달라붙는 파리들 때문에 음식 만들어 파는 자기네 가게엔 조금 치명적이었던 거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생선가게와 탱자씨네는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두 집이 너무 잘 지냈다. 공존 공생하는 관계라고 할까 생선가게 생선들이 선도가 조금 떨어지기 전 생선을 탱자씨는 싸게 사서 안주거리를 만들어 판다. 생선가게는 팔다 남은 생선을 쉽게 떨이 칠 수가 있어 좋고 탱자씨는 생선을 사러 멀리 안 다녀도 좋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꼴이었다.
간혹 생선 가게 아저씨가 탱자씨네 집에서 술 마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자기네 끼리 얘기하다 웃는 모습을 보니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닌 듯한데, 아직도 생선가게 아저씨는 불친절하다. 그리고 그 양반의 부인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어쩌랴 그 집이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유일한 생선 가게인걸.
그러나 내 군 시절 고참인 최재욱 병장이 친절해도 너무 친절한 큼지막한 생선가게를 근처에 차리면서 이 불친절한 생선가게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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