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드메밀’은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가 되는 평창에 자리 잡고 있는 로컬베이커리다. 글루텐이 나오지 않는 메밀은 빵에 적합한 재료가 아니다. 그러나 최효주 대표는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메밀 빵 개발에 성공했고, 평창에서 나는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해 ‘평창을 담은 빵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의 로컬푸드의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역 전통주와 메밀 빵의 페어링, 지역 유제품을 곁들인 메밀 빵 등의 다이닝 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평창을 힐링이 있는 미식여행지로 이미지화 하는 등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로컬크리에이터다.
평창의 로컬베이커리 <브레드메밀> 최효주 대표 (사진: 김혜령 기자)
음식은 로컬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 중 하나다. 특히 그 지방에서 나는 대표 농산물-로컬푸드는 로컬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는 코드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로컬베이커리 <브레드메밀>은 아주 특별하다. 평창은 예로부터 메밀 산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평창군 봉평읍은 <브레드메밀>이 있는 평창읍의 옆마을이다.
메밀은 한의학에서 유일하게 약초로 분류하는 곡물이다. 찬 성분이 강해 예로부터 해열제로 쓰였던 약초였다. 브레드메밀은 몸에 좋은 메밀을 활용해 밥보다 자주 찾는다는 빵을 만들며 평창 메밀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최효주 대표가 메밀을 재료로 빵을 만들기 시작한 동기는 외국인 친구 덕분이었다.
“평창에 내려와 평창 농협 하나로마트의 빵집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였죠. 인근에서 원어민 교사를 하고 있던 아시아계 캐나다인과 친해지게 되었어요. 평창 출신이지만, 학교 다니고 일하다보니 평창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거든요. 오히려 그 외국인 친구가 평창의 콘텐츠를 더 많이 알고 있어 저에게 평창의 관광지를 소개해주고, 농장에도 데려가 주곤 했죠.
덕분에 지역 농산물을 빵에 접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찰나 친구가 캐나다로 돌아갈 시기가 돌아온 거예요. 그는 평창의 먹거리를 캐나다로 가져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 때 메밀가루를 재료로 만든 쿠키를 선물하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일이 지금 <브레드메밀>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로컬베이커리 <브레드메밀>. 평창읍내의 전통시장 골목에 자리잡은 작은 빵집에 지나지 않지만 로컬푸드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 김혜령 기자)
메밀로 빵을 만드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메밀은 밀과 달리 글루텐 성분이 없다. 글루텐은 곡류에 들어있는 성분으로 물과 만나면 음식의 점성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글루텐이 없는 메밀가루는 서로 엉기지 않기 때문에 반죽하기가 어려워 밀과 달리 완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험난하다. 곡식 알갱이가 작아서 탈피 과정도 힘든데다가 제분하는 것도 까다롭다. 게다가 시중에 유통되는 메밀 중에는 중국산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메밀로 만든 빵은 희귀하기도 하고 비쌀 수밖에 없었다.
이에 최효주 대표는 끊임없이 메밀을 연구하고 있다. 빵에 적합한 메밀을 개발하는 한편, 메밀을 재료로 한 신작 빵을 출시하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평창 메밀을 알리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메밀 함량 100%의 빵도 개발하고 있어요. 글루텐이 형성되지 않아 빵을 만드는 데 무척 애를 먹지만, 안되는 걸 되게 하는 과정이 너무 즐겁습니다. 빵에 맞는 제분을 위해 봉평 영농조합 장호식 대표님과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개발을 위한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메밀 함량 100%를 목표로 개발된 식빵. 오직 <브레드메밀>에서만 맛볼 수 있다. (브레드메밀 제공)
숲과 산으로 둘러싸인 평창 주민들의 산업은 농업과 축산업이다. 보통 노동량이 많은 농촌 사람들은 밥을 주식으로 삼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브레드메밀의 빵은 마감 시간 전에 다 팔린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브레드메밀의 빵으로 식사를 즐기고 있다. 브레드메밀이 평창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지역민 입맛에 맞는 빵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요즘의 빵 트렌드는 사워도우를 이용한 빵이에요. 사워도우는 사워종이라는 발효종으로 발효시킨 빵이에요. 발효종은 자연적으로 밀가루에 포함된 미생물이 배양되어 만들어지는 발효물질이에요. 멕시코 음식에서 자주 쓰는 사워크림에 넣는 요거트와 같은 개념이죠. 빵을 만들 때 샤워종으로 발효시키면 소화가 잘 되는 대신 시큼한 맛이 강해요.
이 지역 분들은 사워도우의 시큼한 맛을 좋아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게다가 메밀은 흰 도화지 같은 재료에요. 다른 식재료와 섞으면 그 식재료의 특성을 잘 흡수하죠. 그래서 특색이 강한 발효종을 넣으면 메밀이 줄 수 있는 구수한 향과 맛을 잃어버려요. 그렇기 때문에 지역민이 자주 찾는 맛에 맞춰 요즘 유행하는 사워종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브레드메밀>에서 시판하고 있는 다양한 메밀 빵. (브레드메밀 제공)
지금은 입소문이 많이 나 도시에서도 브레드메밀의 빵을 사러 오는 분들도 있지만, 주 타겟층은 평일 빵을 사러 오는 지역민이다. 지역민의 입맛에 맛는 빵을 만드는 기본적인 이유는 여기서 온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트렌드를 벗어난 특색있는 빵이 탄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연히 브레드메밀을 들렀다가 이렇게 개성 강한 빵을 맛본 관광객이나 다른 지역민들은 브레드메밀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메밀 빵을 구하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는다.
또한 빵에 필요한 재료는 모두 지역 농부들에게 요청해 조달한다.
“평창에는 훌륭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들이 많이 있어요. 단순히 농사를 짓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재배한 농작물을 요리해서 먹어보기도 하죠. 지역 식재료(로컬푸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 분들입니다. 농작물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어떻게 조리를 해 먹어야 맛있는지 유용한 정보들도 함께 받을 수 있어요. 새로운 메밀 빵을 만들기 위한 엄청난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기도 하죠.”
실제로 빵을 만드는 아이디어는 농부들에게 듣는 요리법에서도 많이 얻는다. 재료구매의 장이 정보를 교류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된 셈이다.
브레드메밀은 계절마다 지역에서 나는 다양한 식재료를 도입한 빵을 연구한다. 봄에는 곤드레 나물, 여름에는 멜론을 넣은 빵을 만든다.(평창은 멜론 산지로도 유명한 고장이다.) 단, 식재료를 복잡한 방법으로 섞지는 않는다. 곤드레 메밀 빵은 곤드레 나물을 넣은 반죽으로 만든다. 멜론빵은 메밀 빵을 반으로 갈라 생크림과 멜론 과육을 듬뿍 넣어 만든다. 모두 평창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착민들에게는 익숙한 음식인 셈이다. 그렇게 지역에 있던 재료들로 새롭게 재해석해 식재료 본연의 맛은 살리면서 새로운 맛의 신작 빵을 만들어 낸다.
멜론은 평창의 대표적인 농산물 중 하나다. 멜론 과육이 듬뿍 들어간 멜론빵. (브레드메밀 제공)
최효주 대표에게 ‘로컬’이란 바로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외국 사람들에게 ‘로컬’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우리의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곤 합니다. 예쁘게 꾸며진 거리나 유명한 음식점이 줄지어 있는 거리가 아니죠. 마찬가지로 ‘로컬’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땅을 일구고 흙을 만지며 살아온 분들입니다. 그분들이야 말로 진짜 ‘로컬’이죠. 그 곳에서 나는 식재료를 맛보는 것이야 말로 ‘로컬’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역의 역사를 전부 보고 자란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로컬’입니다.”
이렇게 재해석된 ‘로컬’의 문화는 누군가가 소비해야 비로소 가치를 얻는다. 지역 식재료를 쓰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나고 자란 식재료를 최효주의 손으로 재해석하고, 그 빵이 다시 누군가에게 전해져 먹고 맛보며 새로운 생명력이 생겨난다. 최효주 대표는 브레드 메밀을 통해 평창의 식문화(라이프 스타일)이자 새로운 식문화(라이프 스타일)를 동시에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빵은 누군가에게 주식이 될 수 있는 빵이다. 한국인의 주식이 밥이라고 하지만, 평범한 밥상차에 밥 대신 빵을 차려도 어색함이 없는 한국적인 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빵집을 찾는 사람들에게 빵에 반찬을 얹어 먹어보라고 추천하기도 한다. 평창의 로컬푸드로써가 아닌 빵에 반찬을 곁들여 먹는 새로운 식문화(라이프 스타일)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봄에 만드는 곤드레 나물 메밀 빵은 장아찌를 얹어 먹으라고 권하기도 해요. 저도 종종 그렇게 먹어요.”
남해의 시금치를 올리브빵에 적용해보았다. 올리브와 시금치의 만남을 빗대 '뽀빠이빵'이라는 별명을 붙여보았다고... (브레드메밀 제공)
새로운 식문화(라이프 스타일)를 제안하는 작업은 빵을 판매하는 것 뿐 아니라 빵과 술, 다른 음식과 어울리는 식단을 제공한 다이닝 프로그램에서 더 큰 빛을 발한다. 여러 차례 빵과 맥주, 와인 뿐 아니라 전통주까지도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빵 식단을 제안하는 미식행사를 기획했다.
“한국인 식탁에는 빵, 잼, 시리얼이 올라가는 식단이 다소 어색하잖아요. 그래서 술을 다양하게 마셔보며 술과 어울리는 음식을 먼저 떠올려요. 그리고 그 음식과 어울리는 빵을 떠올리죠. 맥주는 빵맥이라고 해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콜라보 식단이 많이 이뤄지고 있어요. 하지만 전통주는 달랐어요. 전통주를 하나씩 마셔보며 어울리는 음식. 빵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죠. 생소한 작업이었지만 매력적이었습니다.”
지난 가을 평창의 청년농부들과 함께 결성한 <포레스트로드700> 프로젝트팀과 함께 ‘포레스트투테이블’이라는 특별한 미식기행을 선보인 적 있었다. 그 중 ‘주빵페어링 식탁’은 평창과 강원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전통주와 로컬푸드에 브레드메밀에서 만든 다양 빵을 페어링해 다섯 차례의 코스 메뉴로 선보인 이색 다이닝 프로그램으로 이날 참석한 80명의 손님들을 만족시켰다.
프로젝트팀 <포레스트로드700>을 결성해 청년농부들이 만들어가는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했다. 평창을 무대로 한 특별한 미식기행을 연출하는데도 최효주 대표의 역할이 컸다. (사진: 김혜령 기자)
제1코스 평창서주 감자술과 요거트빵, 제2코스 옥수수 생동동주와 메밀빵+훈제연어+산초장아찌의 평창삼합, 제3코스 메밀맥주와 메밀빵 3종세트, 제4코스 김삿갓 예밀와인과 흑염소 불고기 샌드위치, 제5코스 평창산삼주와 보양식빵을 통해 로컬푸드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그녀는 최근 프랑스식 농촌체험 우프를 통해 프랑스 브루타뉴 지방을 방문했다. 브루타뉴 지방은 프랑스에서도 메밀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지방이기도 하다. 메밀을 보다 폭넓게 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도 있지만, 빵을 만드는 일에서 벗어나 다른 노동을 체험하며 아이디어를 환기시키고 로컬 식문화와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다.
“브루타뉴 지방에서 메밀을 소비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걀레뜨를 만들어 먹는 것이었어요. 걀레뜨는 얇게 부친 메밀반죽 위에 계란, 치즈, 햄 등을 넣어먹는 지역 대표 먹거리죠. 근데 그것을 보는 순간 평창의 메밀전병이 생각났어요. 크레이프는 꽤 높은 금액을 지불하더라도 사 먹잖아요. 우리 메밀전병도 그렇게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거죠.”
저녁 어스름이 다가오는 평창읍내의 풍경 (사진: 김혜령 기자)
평창은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곳이기 때문에 도시화 많이 진행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방문해 보면 아무 것도 없다. 특히 평창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평창읍은 평창IC와도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여행객이 유입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이곳에 살고 있는 지역민마저 평창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발전하기가 더욱 어렵다.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평창에 더 무관심해요. 이렇게 좋은 문화적 자산들을 두고도 안으로부터 외면 받는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어르신들이 많으셔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한다고 하면 덜컥 반대부터 하시죠. 그래서 지역 사람들부터 지역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창의 젊은이들부터 우리가 가진 문화적 자산들을 소중히 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면 외부인들은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브레드메밀이 택배로 빵을 판매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빵을 소비하러 온 사람들이 평창의 다른 식재료, 다른 먹거리들에 관심갖고 소비하는 파급력이 생기길 소망하는 것이다. 최효주 대표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유입이 일어나다보면 평창에 여행 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도시가 활력을 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브레드메밀> 매장 앞에서 (사진: 김혜령 기자)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은 의, 식, 주를 통해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이 중에서 식(食)에 해당하는 먹거리, 특히 식재료는 지역의 특산물로 여겨져 그 식재료가 나고 자라는 지역의 상징으로 쓰이거나 그 지역을 연상하게 만드는 매개체로 활용된다. 그러다보니 전국의 지자체들이 지자체 홍보나 지역산업발전을 위해 브랜드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로컬크리에이터들은 새로운 해석을 통해 전통의 틀을 뛰어넘고 있다. 새롭지만 전통을 포괄하는 새로움을 창출할 뿐 아니라, 먹거리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로컬’을 새롭게 경험하도록 만들어 가고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를 찾아서> 1편과 2편은 로컬푸드 분야의 로컬크리에이터 2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1편에서는 로컬베이커리 <브레드메밀> 최효주 대표를 통해 로컬푸드를 통해 다가오는 로컬, 전통적인 로컬푸드의 재해석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다음 2편은 로컬와이너리 <작은알자스> 신이현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로컬을 통해 경험하는 글로벌에 대해 들어보고자 한다.
▲위 기사는 로컬트렌드 미디어 <비로컬>과 인터넷신문 <시사N라이프>가 공동기획·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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