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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을가다] 속초 소호거리에서 소둥이들과 소톡 한 번 하실래요?

로컬크리에이터를 찾아서(6) 강원도 속초의 커뮤니티 호스텔 <소호259> 이상혁, 이승아 대표

이연지 기자 승인 2020.04.01 10:05 | 최종 수정 2020.05.21 20:57 의견 0
이상혁, 이승아 공동대표. 소둥이들은 주인1호, 주인2호라 부른다. (비로컬 제공)

속초에 속초스럽지 않은 호스텔이 있다. 친남매인 이상혁, 이승아 공동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소호259>다. 유럽에서 경험한 호스텔 문화에 반해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던 뒷골목에 게스트하우스 <소호259>를 시작했다. <소호259>의 등장으로 속초의 후미진 뒷골목에 불과했던 이곳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속초의 청년들이 ‘동명동 힙촌’이라 부르는, 이상혁, 이승아 공동대표가 자칭 ‘소호거리’라 부르는 새로운 골목이 탄생했다.

“한국에서도 게스트하우스 한 번 안 가본 저희가 유럽에서 호스텔이라는 곳을 처음 경험해본 거예요. 방에 들어가자마자 옆 침대 여행자가 말을 걸고, 처음 본 사람들과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대화를 하며 친해지는 그 과정 자체가 매력적이었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호스텔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죠.”

취업하기 전,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장기간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생각했던 이상혁 대표는 급하게 짐을 싸 유럽으로 떠났다. 당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동생 이승아 대표도 또 언제 기회가 있을까 생각해 2주 후 이 여행에 합류했다. 남매가 함께 한 첫 여행이었고, <소호259>의 시작점이었다.

속초의 뜨는 골목길이 생겼다. 자칭 '소호거리', 속초 청년들에게는 '동명동 힙촌'이라 불리는 곳이다.  (비로컬 제공)

 

<소호259> 1호점의 모습.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있는 'ㄷ'자형 한옥구조를 살렸다.  (비로컬 제공)

유럽에서 경험한 호스텔은 두 사람에게 충격이었다. 토론한 결과 함께 호스텔 창업을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 우선 직장 생활을 충실히 하기로 했다.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자본을 먼저 모아야했기 때문이다. 한편 짬을 내어 사전 작업을 꾸준히 했다. 호스텔 창업에 적합한 지역을 찾기 위해, 기존 관광지들의 평판과 블로그 인지도, 테마파크 유무 등의 리스트를 만들어 나갔고, 자체 평점을 매겨 대상 지역을 추려 나갔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나고 후보 지역들을 대상으로 부동산 조사를 하다가 속초에 오게 되었다.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의 허름한 여인숙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여기가 동네 분들에게는 여인숙만 많은 으슥한 동네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이곳에 처음 자리를 잡으면서 저희 업체만 생각한 게 아니라 거리 전체를 생각했습니다. 이 골목을 번화하게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뉴욕, 런던, 홍콩에 있는 ‘소호거리’들이 그 나라와 도시의 번화한 거리를 상징하잖아요? 그런 의미로 ‘소호’를 따왔고, 마침 주소가 ‘259번길’이어서 뉴욕 스트리트 느낌이 나도록 호스텔 이름을 <소호259>라고 지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nA9uh0bV_pI

2015년에 창업해 4년이 흐르는 동안 2관까지 확장했고, 고구마살롱이라는 커뮤니티 라운지 공간도 생겼다. 하지만 <소호259>의 창업 과정은 생각만큼 순탄하지는 않았다. 

자본이 턱없이 부족해 모든 준비를 직접해야했다. 급한 대로 영업을 시작하긴 했지만 의도하던 모습의 호스텔로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먼저 직장을 그만둔 이상혁 대표가 속초로 내려와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회사를 다니고 있던 이승아 대표도 금요일 퇴근과 함께 속초로 넘어와 주말 내내 일손을 보탰다.

게다가 2년차가 될 때까지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있었던 이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해보려고 할 때마다 동네 분들이나 주변 장사하시는 분들의 반대가 따라왔다. 어차피 돈만 벌고 갈 뜨내기들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2017년에 2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눈물을 쏙 빼야할 정도로 어려웠다. 30년 전 지어진 낡은 건물을 구입했는데 숙박업을 위한 용도변경을 하는 과정에서 몰랐던 사실이 드러났다. 무허가로 지어진 계단이 있던 데다 토지 경계에도 문제가 있었다. 30년 전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건축법이 아닌 2017년의 법이 적용되어 건물허가가 나지 않았다. 1년 간 공사를 멈추어야 했고 철거 위기를 겪기도 했다. 

<소호259> 2호점.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사자성어가 어울릴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비로컬 제공)

억울하기도 했지만 ‘소호거리’를 만들고 싶은 꿈이 더욱 중요했다. 큰 수업료를 치르고 기초부터 다시 준비했다.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두 대표에게는 큰 경험과 무형적 자산이 된 사건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완성한 <소호259> 2관이었지만, 큰 재난이 닥쳐왔다. 산불이 속초를 덮친 것이다. 산불로 건물을 잃거나 사람이 다치는 직접적인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속초와 강릉을 찾으려던 사람들의 발길이 하나둘 끊어졌다. <소호259>도 마찬가지였다. 한 주 내내 하루 종일 예약 취소전화를 받은 다음 환불처리만 해주게 되었다. 예약이 모두 취소되자 주위를 돌아 볼 여유가 생겼다. 과감히 영업을 접고 산불피해를 돕기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현장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가 사비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원봉사 오시는 분들에게 숙박을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공간이 비어있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한 달 정도 100여분이 오셔서 머물다 가셨습니다. 그 때부터 속초 사회로 조금 녹아들었다고 할까? 그 이후로 저희를 조금씩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았어요.”

자원봉사자 100명의 숙박을 책임지고 섬긴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속초시장님께서 <소호259>를 찾아주셨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속초 사회의 일원이 된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비로컬 제공)

사실 <소호259>는 고객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숙소를 구하던 여행객들이 방이 없어 속초 시내 숙박업체들을 찾아 돌다 들어오는 식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방문하게 된 <소호259>의 매력을 느끼고 주변에 추천하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한번은 어떤 여행 작가가 신분을 숨기고 숙박을 하곤 좋은 리뷰를 남겨주기도 했다. 덕택에 단시간만에 조회수가 폭발해 네이버 메인에 걸렸고, 이를 통해 이름이 알려졌다. ‘포켓몬고’ 열풍도 <소호259>를 알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마케팅을 위해 기사를 확인하면서 새벽까지 포켓몬 게임을 하며 레벨을 많이 올렸어요. 그렇게 하면 좋은 캐릭터들을 잡을 수 있거든요. 그걸 이용해 방송사 인터뷰도 많이 했고, <소호259>에서 숙박하면 숙소에서 포켓몬을 잡을 수 있다는 홍보를 자연스럽게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이후 마케팅 회사랑 조인해서 버스를 대절해 40명이 단체로 숙박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었어요. 재미있는 경험이었는데요, 사실 운이 좋았던 거죠.”

과연 운이 좋아서였을까? <소호259>를 방문한 손님들이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여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포켓몬 프로그램도 그 중 하나에 해당한다. 창업 초기에는 호스텔을 차리기만 하면 될 것처럼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문화가 달랐다. 유럽처럼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고, 펍에서 맥주 한 잔 하며 친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같은 방을 쓰는데도 손님들은 데면데면하기만 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게된 것도 문화적 접근법을 달리하면서부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IFZZJJG6vkk

<소호259>는 매일 ‘소톡’이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소호259 토크’의 줄임말이다. 당일 숙박하는 게스트들을 상대로 공지사항이 나가고 신청자를 받아 진행한다. 중앙시장에서 조달한 닭강정과 맥주를 제공하고 자체 개발한 짝궁 설문지를 이용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모르는 사람과 짝궁이 되더라도 여행 온 이유나 최대 고민을 서로 물어보게 만든다. 짝궁과 대화를 통해서 이 질문지를 작성한 다음 참석자 모두에게 자기 짝궁을 소개해주는 형태다.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속초 여행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1박2일’이나 ‘런닝맨’ 같은 예능프로를 본 따 운영한다. 조를 나눈 다음 여행지에 미션을 숨겨놓고 그걸 수행할 때마다 아이템을 준다. 결전의 장소에 모여 이름표 뜯기를 하는 이벤트도 들어가고, 승리한 팀에게는 저녁 안주거리를 살 수 있는 돈 봉투도 주어 그 돈으로 중앙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사 요리를 만들어 먹는 시간도 갖게 하고 즉석 요리대회를 통해 점수도 매긴다. 

속초의 어떤 지점의 사진만 보여주고 장소를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이곳을 찾는 미션을 주고 찾아오면 점수를 획득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여행지에 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놀 거리, 즐길 거리, 어울릴 거리를 주는 셈이다.  이렇게 <소호259>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소둥이’라 부른다.

‘소호259’ 앞마당에서 게스트들끼리 서로 소통하는 ‘소톡(Soho Talk)’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소둥이들. 이날 참석한 소둥이 한 사람의 즉석 제안으로 Light Graffiti 기법의 특별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비로컬 제공)

“최근에는 작품으로 소통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하는 분들이 작품을 전시하거나 공연할 공간이 없다는 고민이 있더라고요. 저희는 공간이 있으니까 그분들이 신청해 오시면 당일 무료 숙박을 제공하고, 소톡 시간에 작품을 소개하거나 공연을 열 수 있는 일정을 마련했습니다. ‘소호위크’라는 프로그램도 있는데요. 셀러 분들을 모집 받아 <고구마살롱>의 공간을 이용해 낮에는 제품을 판매하고 저녁에는 버스킹을 하는 구성입니다. 이곳에 올 때는 어딜 갈지, 뭘 할지 아무 준비를 하지 않고 와도 돼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다보니 <소호259>에서 만난 ‘소둥이’들의 커뮤니티도 여러 개 생겨났다. 이상혁, 이승아 대표를 포함한 단톡방이 수십 개 운영되며 계속해서 소통하고 있다. 1년 넘게 운영되는 단톡방도 있을 정도다. 이를 통해 커뮤니티 멤버들끼리 수시로 모이고 다시 <소호259>로 여행오는 일들도 늘어났다. 

또한 매년 특정 날에 왔던 분들을 초대하는 파티도 열고 있는데, 이때 다시 와서 만난 ‘소둥이’끼리 친해지기도 한다. <소호259>를 거쳐간 많은 인연들 중에는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이상혁, 이승아 대표와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고, 이곳을 찾은 다른 손님들과 만나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즐거움을 이어가고 싶어 다시 찾는 이들이 많다.

전시공간을 둘러보고 있는 크리에이터들. <소호259> 2호점의 1층 공간은 복합문화공간의 컨셉을 갖고 있다. (비로컬 제공)

처음에는 낡은 여인숙을 리모델링해 시작했던 <소호259>였지만, 카페와 펍 공간이 있는 2호점 확장에 이어 커뮤니티 라운지 <고구마살롱> 등 ‘소호거리’라는 일종의 오프라인과 다양한 ‘소둥이’ 커뮤니티들이 집적된 온라인까지 플랫폼으로서의 구성요소를 하나씩 갖춰가는 중이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을 더 체계화해 속초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동안 <소호259>에 방문해주신 손님들의 숫자를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이 데이터를 체계화해서 분류해보려고 합니다. 요즘 <트레바리>같은 커뮤니티 활동을 많이 하잖아요. 우리는 같은 생활권에서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아예 다른 지역 사람들이 모인다는 차별점이 있어요.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네트워킹을 <트레바리>처럼 풀어보고 싶습니다. 나중에는 400명 정도가 숙박가능한 글로벌 호스텔로도 성장시켜 보고 싶습니다.”

로컬크리에이터가 연출하는 공간은 ‘힙(hip)’한 공간일까? 역으로 골목이 ‘힙’해지면 ‘로컬’로 재해석된 걸까? 로컬크리에이터가 골목길을 변화시켜 나가는 원동력은 자신의 라이스스타일에서 출발한다. 색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거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며 자기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생태계를 창조해낸다. 이 문화적 생태계가 생계를 위한 비즈니스와 연관되며 경제적 생태계를 창조하기도 한다. ‘로컬’이 새로운 여행지로 변모하게 되는 이면에는 로컬크리에이터의 노력이 숨어있는 경우도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를 찾아서> 4, 5, 6편은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로컬 스테이 3군데를 동시에 탐방했다. 강릉의 <위크엔더스>, 속초의 <소호259>, 고성의 <삼박한 집>. 동해안의 산과 바다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각각의 스테이가 보여주는 다양성은 또다른 로컬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위 기사는 로컬트렌드 미디어 <비로컬>과 인터넷신문 <시사N라이프>가 공동기획·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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