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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일기(01)] 3월 3일(목) 그때는 알 수 없었습니다

조연호 작가 승인 2022.04.21 14:00 의견 0


코로나 기간 초기에는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눈치가 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눈치 따위 보는 건 나랑 어울리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마스크마저 귀에 살짝 걸치고 유유히 돌아다니는 사람을 자주 마주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마스크 착용을 2년 넘게 한 저는 이제 익숙해져서 귀에 안경과 더불어 마스크를 걸치는 게 더 익숙한데, 2년 이라는 기간은 사람마다 달라서 하나의 습관을 추가하는 데 충분하지 않은 듯합니다. 일반적으로는 2-3주가 지나면 습관을 바꿀 수 있다고도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마스크 착용은 그런 습관에 포함되는 게 아니었나 봅니다. 그러다 보니, 습관이 된 사람들은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게 하는 습관이 하나 더 해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느 시점부터 ‘내 마음이야!’라고 선언하는 듯 같이 쳐다보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재택근무로 ‘워라밸’을 찾은 사람도 있는 반면, 사무실에 나가지 않아서 좀이 쑤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이란 동물이 그 성격이 다채로워서 억지로 만들어 낸 평균은 있지만, 그 평균에 일치하는 사람은 없다는 게 또 사실이다 보니,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통계도 마냥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아닙니다.

코로나 기간에 새롭게 발견한 동네 카페를 사무실처럼 애용하면서 길고 긴 코로나 기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습니다. 오늘도 3,000원 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3시간에 나눠 마시면서, 노트북 앞에 앉아 스스로 일을 찾아 했습니다. 일이 많다면, 몇 시간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코로나는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이 챙겨가면서 3시간 넘게 일 할 마음도 같이 붙여서 간 듯합니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하지만 걷고 나면 종아리가 뻐근한 정도의 오르막을 걸어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파트 공동 현관 비밀 번호를 입력하고 오래된 아파트의 계단참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로 난 계단을 걸어 오릅니다. 그러고 나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한 겨울 냉동고를 연상시키는 승강기에 들어섭니다. 마치, 정육 냉장고에 고기가 된 느낌을 한 10초 정도 느끼는 동안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늘어나더니, 제가 살고 있는 층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엘리베이터는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고 얼른 나가라는 듯이 문을 열어 줍니다. 조금은 쌀쌀맞은 엘리베이터를 살짝 흘겨보고 아파트 복도를 따라 걷습니다. 곧 현관 앞에 멈춘 저는 물끄러미 도어락을 쳐다보고 손을 가져다 댑니다.

“띠리릭~” 소리가 나면서 비밀 번호를 누르라고 숫자가 게임장 두더지처럼 나타납니다. ‘난 이 번호를 수백 번도 더 눌렀다고.’라고 생각하며 정확하게 그렇지만 서두르지 않고 비밀번호를 완성했습니다. 이제 문을 열고 입구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신발이 여기저기 정신없이 흘러 다니는 데,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신발을 벗고 책가방을 방에 던져두고 냉장고 앞에 섭니다.

오후 4시, 뭔가 무겁게 먹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시간, 그래도 뭔가는 먹어야했기에 냉장고 안 쪽을 살펴봅니다. 우유가 있네요. 우유를 따라 마시고 있는데, 그동안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주아가 보입니다. 평소 때는 현관 문소리에 얼른 마중 나와서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던 주아인데, 오늘은 그러지 않아서 여태 주아가 집에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죠. 아무튼 슬쩍 주아를 쳐다보니,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그런 건지 힘없이 앉아있었습니다.

“주아야!” 라고 부르니
“네.”라고 힘없이 대답하네요.
“어, 주아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는데?”

주아를 부를 때, 대답하던 맑은 “네!”라는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넘어갔겠지만, 벌써 2년 째 이어져온 코로나 시대, 그리고 최근 오미크론의 증상은 인후통을 동반한다고 들었으니 가볍게 넘길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주아 목소리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게, 요즘 워낙 일교차가 심하니 저녁 무렵에는 목이 가라앉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솔직히 환절기에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는 건 거의 통과의례와 같은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코로나에 대한 의구심을 쉽게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곧 바로 어린이집에 전화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주아 아빠인데요. 집에 들어와서 주아를 보니 목소리가 가라앉아서요. 혹시 어린이집에 코로나 확진 자가 있었나요?”
“아니요. 어린이집에 확진 자는 없습니다. 아마도 일교차가 커서 그런 거 아닐까요?”
“네.”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의견을 듣고 나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음, 많은 아이가 확진 되는 데 그래도 주아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환자가 없다니, 다행이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마음이었지만, 코로나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주아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열을 쟀는데, 정상이어서 ‘코로나는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아의 가라앉은 목소리는 곧 우리 가족이 ‘코로나 가족’이 될 복선이었음을 정말로 그때는 알 수 없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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