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현이 보수의 성지가 된 이유
야마구치현은 고대부터 한반도와 중국을 잇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일본에서는 선진 문화의 창구이기도 했으며,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한 메이지 왕정복고의 핵심세력들이 쵸슈(현재의 야마구치현) 출신자들이었다.
그래서 메이지 유신의 핵심 세력들이 유신 후 정계로 진출하였고, 이를 입증하듯이 일본의 야마구치현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총리를 배출(8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왕국’이라고 까지 불려졌다. 오죽하면 2019년 참의원 선거를 취재한 마이니치 신문기자가 2000년 이후 자민당 출신 후보만 선출되던 야마구치현을 두고 “보수가 아니면 사람도 아니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작성할 정도다.
◆아베 전 총리 사망 후 야마구치현에서 실시한 선거 및 결과
이런 야마구치현이지만 아베 전 총리 사망후 변화가 일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베 지지세력의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베 전 총리 사망 후 지역구 사무실도 폐쇄된 상태이지만 아베 전 총리의 동정표를 원하는 자민당 아베파는 아베 전 총리의 영향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런 아베파의 분위기와는 달리 야마구치현에서는 현재 외무대신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와의 아베파 사이의 파벌싸움이 진행중이다.
사실 아베 전 총리가 살아 있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보수의 성지에서 아베파 등 강경 보수세력과 기시다 총리와 맥을 같이 하는 ‘고치카이(宏池会)’, 즉 자민당 내 진보세력과의 권력다툼이 진행중이다. 지난 2월 시모노세키시에서 시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이때는 하야시파가 이겼다. 하지만 4월 9일 실시한 통일지방선거(전반)에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베파와 하야시파가 경합을 이룬 신 3구 지역에서 아베파와 가까운 현직의원 5명이 당선되었고, 하야시파는 4명이 당선되는 등 치열한 경쟁이 진행중이다.
◆일본 정치의 특징이 모여진 야마구치현 중의원 보궐선거
다가오는 4월 23일에는 야마구치현 중의원 보궐선거(아베 전 총리 총격(2022.7.8.)로 인한 사망 후 그의 동생인 기시 노부오 전 방위대신이 정계 은퇴를 선언함에 따른 보궐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은 기시 노부오 전 방위대신의 장남 기시 노부치요(야마구치 2선거구)와 전 시모노세키 시의원 요시다 신지(야마구치 4선거구)를 후보로 세웠다.
기시 노부치요는 부친이 방위대신이었을 뿐 아니라 아베 신조의 조카이기 때문에 보수왕국인 야마구치현에서 당선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최근 이를 반대하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자민당과 구 통일교의 유착, 그리고 대표적인 세습정치 등 반대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인데, 이런 목소리가 보수의 성지인 야마구치현에서 얼마나 크게 작용할 지는 의문이다.
다음으로 아베 전 총리의 지역구인 야마구치 4선거구의 문제다. 아베 전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대신의 지역구 경쟁은 이들의 아버지 세대부터 시작되었다. 하야시 외무대신은 참의원 의원에 5회나 당선되었지만 참의원 의원의 한계를 느끼고 중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부터 아베 전 총리와의 지역구 갈등이 시작되었고, 다음 중의원 선거부터는 아베 전 총리의 지역구와 하야시 외무대신의 지역구가 통합되기 때문에 갈등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하야시 외무대신의 독주를 점쳤지만, 자민당은 시모노세키 시의원이었던 요시다 신지를 후보로 세웠다. 사실상 하야시 요시마사에 대한 저격수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아베 전 총리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는 후보자인 “요시다가 아베 전 총리의 뜻을 이어받고 있다”며, 요시다를 지원하는 응원연설에 나서는 등 아베의 동정표를 모으는데 일조하고 있다.
◆평가 및 전망
야마구치현 선거를 보면 ①정치인들의 세습, ②파벌간 갈등과 싸움, ③정치인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저격수 파견 등 다양하고 복잡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진보 성향의 정치인으로 알려진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대신은 기시다 총리를 이을 거물 정치인이다. 하야시 외무대신은 진보성격을 띈 고치카이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그도 역시 보수왕국 야마구치현에서 치열한 투표수 확보를 위해 지역 특성을 감안한 정책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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