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이다. 참고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성경이며, 그 다음이 『해리포터』라고 한다. 이어서 마르크스와 관련한 책들이 많이 팔렸고, 이어서 『어린 왕자』다. 순위는 언제라도 뒤 바뀔 수 있는 것이니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나는 순위를 찾음으로써 『어린 왕자』의 주제에 반(反)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텍쥐페리는 작품을 통해 당시 자신의 삶과 제2차 세계대전 조종사로 참전한 군인으로서 당시 세계 분위기를 짧은 소설을 통해 전하고 있다. 물론,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명언을 남긴 것은 덤이다.
나는 『어린 왕자』를 조금 철 들어서 읽었다. 이십 대 초반에 처음 읽었니, 빠른 편이 아니었다. 이미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서울대학교 입학 논술 지문으로 나올 정도였으니, 국내에서는 『어린 왕자』가 절정에 달했을 때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선물로 줬을 뿐, 정작 읽지는 않았는데,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2학년이 되어서야 한 번 읽게 됐다. 작고하신 법정 스님이 가장 애독했던 책으로 스님은 마흔 번을 넘게 읽었다고 하는데, 나도 한 스무 번 정도는 읽은 듯하다. 가장 많이 읽은 책이긴 한데, 그렇다고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B612라는 별에서 한 소년(어린 왕자라는 표현이 왠지 별로다. 내가 생텍쥐페리였다면, 소년이라고 불렀을 듯하다)이 여러 별들을 여행하다가 최종 종착지 지구에 도착한다. 정확하게는 일곱 번째 별이 지구이다. 작가는 지구를 소년이 경험한 별 중 가장 크고, 복잡한 곳으로 설정했다. 소년의 별에는 화산 3개와 어디서 와서 떨어져 씨앗에서 자라난 장미 꽃 한 송이, 그리고 바오밥 나무가 존재한다.
소년이 자신의 별을 떠난 이유는 호기심, 그리고 도도한 장미꽃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지구에 도착한 소년은 자신이 애지중지 했던 장미꽃이 흔하디, 흔한 장미꽃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처음에는 슬펐지만, 여우를 만나 길들임에 대해서 배운 후, 소년의 장미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길들임에 대한 책임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별로 돌아간다.
◆작가의 삶과 연계한 이해
『어린 왕자』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그 메시지도 어린이들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마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청소년 도서라고 하면서 읽기를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우회적으로 당시 기성인들의 사고와 분위기를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점 외에도 작품은 생텍쥐페리와 연계해서 읽을 수 있는데, 그 점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작가는 만족하지 못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아내를 별에 등장한 도도한 장미꽃으로 설정한다. 아무리 잘 해주고 잘 해줘도 고마움을 모르는 장미꽃. 그러나 소년이 별을 떠나려 할 때 가장 슬퍼한 존재도 장미꽃이었다.
소설 속 소년은 자신의 별로 돌아가지만, 작가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1944년 종전을 앞두고 비행 도중 실종됐으니까. 어린 왕자가 다시 자신의 별로 돌아간 것처럼 작가 또한 그 만의 별로 돌아간 것으로 이해해도 될 듯하다.
작품은 동시에 바오밥나무를 다룬다. 바오밥나무는 작지만, 그 성장을 방관하면 어느 틈에 자라서 작은 별 정도는 파괴해 버릴 정도로 번식해 버린다. 작가의 작품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등장했다. 여기서 말하는 바오밥 나무는 결국 히틀러, 혹은 나치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작은 키의 독재자를 무시했던 유럽은 결국, 6천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나서야 생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길들임 = 시간 + 책임
작가는 ‘길들임’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작품의 핵심 키워드가 ‘길들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가는 길들임에 대해 설명한다. 여우와 어린 왕자의 관계, 나(화자)와 어린 왕자의 관계, 어린 왕자와 장미꽃과의 관계. 길들임과 함께 등장하는 단어는 ‘시간’, ‘책임’이다.
먼저, 시간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길들임에는 서로 간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있어야만 관계가 깊어지고 서로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길들임은 어느 누군가에게 다른 누군가만이 학수고대하는 성격이 아니다.
참된 길들임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한자어로 ‘염화시중(拈花示衆; 말이 아닌 마음으로 전함)의 미소’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물론, 책임은 일방적인 책임이 아니라 쌍방의 책임이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졌을 때, 여우는 어린 왕자가 오는 시간을 기대하고, 그 시간이 다가오면 설렘을 느꼈다. 그래서 어린 왕자가 이별을 고할 때, 여우는 슬플 수밖에 없었다. 그냥 떠나는 어린 왕자가 무책임한 것일까? 어린 왕자는 여우와 관계 속에서 즐거움만을 누렸다.
어린 왕자는 떠날 때 느낄 여우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들 속에서 자신의 꽃이 떠오른 순간, 어린 왕자는 ‘길들임’, ‘책임’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시 시간이다.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길들임이 주는 설렘도 책임도 있을 수 없다.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거의 포기하고 살아간다. ‘시간이 금(金)이다’라는 말은 진리일 수도 있으나, 그렇게 시간을 아끼다가는 관계에 금이 날 수도 있다. 물질적인 뭔가를 얻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 사는 게 정답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작가의 생각에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작가가 살았던 시기도, 그렇게 시간을 쪼개서 발전한 문명의 결말은 전쟁이었으니.
현재는 다른가? 과거에는 여유 시간을 보내는 게 부의 상징이었는데, 현재는 여유 가질 시간조차 없이 바쁜 게 부의 상징이라고 한다. 굉장히 역설적이다. 아울러 우크라이나는 얼떨결에 러시아의 공격을 받았고, 전쟁을 1년 넘게 이어가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앞으로 나아갔지만, 여전히 세계는 갈등의 연속이다(미중 갈등, 남북갈등, 유럽과 러시아 갈등 등).
굳이 세계로 넘어가지 않아도 된다. 국내 상황도 좋지 않다. 부익부 빈익빈이 점점 심해지고, 정치적 협상, 타협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반대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연애를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호감으로 시작했지만, 곧 싸우게 된다. 그러나 이 싸움을 극복하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다. 물론, 이후에도 계속 싸울 것이다. 그러다가 헤어질 수도 있다. 혹은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때, 연인은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는 관계가 된다. 시간이 쌓여서 얻게 된 신뢰는 종종 등장하는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책임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 있는 단계가 된다.
우리 정치는 신뢰가 무너졌다. 여야의 신뢰는 물론이고, 국민이 정당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집단을 지지하는 국민들끼리도 신뢰하지 않는다. 분열, 편린, 폄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시간, “정말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작품의 주제가 우리 사회에 절실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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