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일상의 고현학] 화장실·화장지의 고현학

방랑식객 진지한 승인 2024.02.02 03:36 의견 0

고현학(考現學)이란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유행의 변천을 조직적,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현대의 참된 모습을 규명하려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일상의 고현학은 일상생활 속에 벌어지는 사안 하나를 주제로, 언제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펼쳐보는 이색코너입니다. 인터넷 검색 정보를 중심으로 정리해 넓고 얇은 지식의 층위를 높여가 보자구요!

이제 곧 설 연휴입니다. 요즘은 고향가시는 분들만 있는 게 아니라 여행 다녀오시는 분들도 많죠? 그런데 연휴에 차 몰고 나가시게 되면 교통정체를 각오하셔야 하는데요... 이때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건 화장실 문제입니다. 오늘은 화장실의 고현학입니다.

(출처: 픽사베이)


1. 영어로 toilet? 뭔가 영어같은 이유

영어를 처음 배울 때는 화장실을 restroom 같은 쉬운 말로 배우는데요. 오히려 toilet은 나중에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건 프랑스어 ‘toile(뚜알)’에서 유래되었는데 어깨에 두르고 다니는 ‘망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18세기까지 유럽에는 공중화장실이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길을 가다가 급하게 볼일을 봐야 하는 경우 큰 소리로 “toile(뚜알)!”하고 외치면 커다란 망토를 두른 사람이 나타나 양동이를 꺼내 놓습니다. 이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망토로 가려주고 양동이에 볼일을 보게 하는 ‘이동식 화장실업(?)’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말이 ‘toilette(뚜알레뜨)’로 바뀌면서 변기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고, 영어권에 전파되며 ‘toilet’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화장실이란 의미로 자리잡은 겁니다.

2. 파우더룸(powder room)은 또 뭔가?

파우더룸의 등장은 공교롭게도 가발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16세기부터 유럽 왕실을 중심으로 왕의 권위와 품격을 높이기 위해 가발이 등장했는데요. 왕을 따라 귀족들도 가발을 착용하면서 가발이 문화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18~19세기에는 중산층이라면 가발을 쓰는 게 사회적인 통념이자 매너가 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기 가발은 흰색이나 회색 분을 뿌려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하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상류층 가정의 경우, 가발에 가루를 뿌리기 위한 공간으로 침실에 ‘파우더 클라짓(powder closet)’이라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가루를 뿌린 뒤 손을 씻어야 해서 물을 가져다 두게 되었고, 이후 용변까지 볼 볼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변화했습니다. 바로 이 단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화장실’이라는 단어가 탄생한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장실’이라는 단어를 쓰기 전에는 주로 ‘변소’, ‘뒷간’, ‘측간’ 등의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용변 보는 방’을 돌려 말해 좋게 표현하면서 ‘화장실’이란 단어가 널리 퍼져나간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3. 화장실의 역사는 언제부터?

화장실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이나 유물을 이미 기원전 3,000년대부터 1,400년대 사이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수세식 화장실의 역사도 굉장히 오래되었다는 겁니다.

가장 오래된 화장실은 인도의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지금의 화장실과는 차이가 있지만, 물이 흘러가도록 시설하여 그 위에 배설하게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수세식 화장실과 원리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좌변기의 역사도 의외로 오래되었습니다. 고대 수메르 문화의 중심지였던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유프라테스강 하류에 있던 바빌로니아의 유적지인 우르 지방에서도 기원전 2,200년의 수세의자식 변기가 발굴되었습니다. 하수관을 통해 용변을 물과 함께 건조한 모래땅으로 스며들게 하는 방법을 써서 강이나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에는 기원전 1,700년 것으로 추정되는 도기로 된 접시형 틀과 나무로 만든 변좌가 결합된 수세식 변기가 발굴되었습니다. 로마제국도 기원후 2세기 초부터 화려한 공중화장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4. 그럼 현대식 화장실은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최초의 현대적인 양변기는 1596년에 영국의 존 해링튼 경이 고안했다고 합니다.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위해 고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윗부분에 물통이 있고 물이 흘러가게 하는 손잡이와 배설물을 분뇨통으로 흘러가게 하는 밸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냄새가 올라온다는 단점이 있어서 여왕님도 쓰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나 다른 기록에는 “여왕님은 소음이 심해 쓰지 않았다”고 전해지고도 있습니다. 아마도 여왕님 입장에서 냄새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품위 있게 거절을 표현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최초의 현대적 양변기는 여왕과 해링튼 경을 위한 것 딱 2대만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소음문제(라고 쓰지만 정작 냄새 문제)가 해결되는 데는 약 180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1775년 수학자인 알렉산더 커밍이 새로운 변기구조를 만들어 냈는데요... 배수파이프를 U자 모양으로 구부러지게 해 물이 저장되게 함으로써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냄새를 차단한 겁니다. 이것이 지금도 모든 수세식 변기에 사용되는 부분입니다.

5. 우리 나라는 언제부터 수세식 변기를 사용했을까?

우리나라 최초로 현대식 수세식 변기가 설치된 건물은 대한제국 말기에 건축된 덕수궁 석조전이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들여온 수세식 변기가 설치되어 고종 황제가 사용했습니다. 참고로 고종 때 진행된 경복궁 중건 당시에도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했던 흔적이 있습니다만, 현대식 변기가 아닌 조선시대의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화장실 문화가 혁신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1958년을 기점으로 보아야 하는데요. 우리나라 주거 역사 최초로 수세식 화장실을 집안에 설치한 주택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한 건물에 여러 가정이 모여 사는 주택이 대부분이었고, 집 밖에 있는 공용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해방 이후 최초로 지어진 아파트인 종암아파트인데, 문명화된 고급 아파트라고 대통령까지 찾아와 축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 재밌는 이승만 대통령의 축사 내용입니다. “이렇게 편리한 수세식 화장실이 종암아파트에 있습니다. 정말 현대적인 아파트입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해요. 이후 1960년대 말부터 좌변기가 국내 기술로 생산되기 시작했고 각 가정마다 대중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1980년 초반부터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화장실 선진국이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 유적인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수세식 화장실 터가 발견되었는데, 변기와 배수시설이 발굴되었습니다. 이보다 앞선 시기의 사적인 불국사에서도 변기시설이, 익산 왕궁리의 백제 유적에서도 대형 수세식 화장실이 3군데나 발굴되었습니다.

6. 화장지의 역사는?

중국 한나라 시절이던 2세기 무렵 채윤이란 사람이 제지술을 개발하며 지금과 같은 종이 화장지가 등장했습니다. 당시 낡은 책을 찢어 엉덩이를 닦기 시작했다고 해요. 이전에는 나뭇잎이나 풀을 사용하기도 하고, 유럽의 귀족들은 양털로 닦거나 하인들에게 물을 가져오게 해서 물로 씻었다고 해요.

한참의 시간이 흘러 인쇄기가 발명되고 신문이 나오는 시기가 되면서 화장실에서는 신문지를 사용하는 것이 일상으로 자리잡혔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변비나 치질로 고생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고 합니다.

19세기 중반에는 미국 뉴저지주의 사업가 조셉 가에티가 ‘변비용 약용지’라는 이름으로 종이에 알코올을 듬뿍 묻혀서 500장을 묶음으로 50센트에 팔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짜로 쓸 수 있는 낡은 신문지를 두고 누가 이걸 사냐며 대중들에게는 외면 당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스코트 형제가 지금과 같은 두루마리 형태의 화장지를 만들며 이때부터 지금과 같은 화장지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집안에 들어오는 수세식 화장실이 대중화되기 시작하고, 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화장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7. 화장지 소비량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매일 음식을 섭취합니다. 비싼 음식을 먹던지, 싼 음식을 먹던지 누구나 공평하게 하루 약 220g의 똥을 눕니다. 전 세계 인구가 대략 80억 명이니까 1인당 계산해 보면 하루에 약 17억 6천 kg이나 됩니다. 화장지도 1년에 300억 롤, 초당 약 1,000개의 화장지가 소모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한 지금 시대에도 세계 인구의 단지 4분의 1만 화장지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24억 명은 위생적인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중 10억 명은 강이나 풀숲 등 밖에서 볼일을 본다고 합니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