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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고현학] 기네스북의 고현학

방랑식객 진지한 승인 2024.08.27 12:16 의견 0

고현학(考現學)이란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유행의 변천을 조직적,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현대의 참된 모습을 규명하려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일상의 고현학]은 일상생활 속에 벌어지는 사안 하나를 주제로, 언제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펼쳐보는 이색코너입니다. 인터넷 검색 정보를 중심으로 정리한 넓고 얇은 내용이지만, 일상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의 층위를 높여가 보자구요!

오늘이 8월 27일인데요. 1955년 8월 27일은 첫 번째 기네스북이 발간된 날입니다. 수많은 진귀한 기록들로 유명한 기네스북인데요, ‘기네스북에 등재된~’이라는 수식어는 세계 최고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은 기네스북의 고현학입니다.

역대 기네스북 표지 이미지 (출처: 기네스 세계 기록 홈페이지)


1. 기네스북의 유래

기네스북의 기네스(Guinness)가 영국의 유명한 맥주 회사인 기네스를 뜻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편의점이나 마트의 주류 냉장고에 있는 흑맥주가 떠오르신다면, 정답입니다! 세계 기록을 다룬 책이다 보니 어떤 단체나 기관에서 만들었을 법하지만, 사실은 맥주 회사에서 흥미를 얻기 위해 상업적으로 만든 책입니다.

기네스북의 시작은 1951년, 영국 아일랜드에 있는 기네스 맥주 양조장의 전무이사였던 휴 비버(Hugh Beaver)가 사냥 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당시 여행에 참여한 지인과 '유럽에서 가장 빠른 새'에 관해 논쟁을 벌이던 게 계기가 되었어요. 이때 객관적인 자료를 찾지 못한 경험이 '다양한 분야의 세계 기록을 정리한 책'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1954년 기록광으로 알려진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맥워터 쌍둥이 형제의 도움을 받아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을 기네스 양조 회사의 이름을 따서 출간한 것이 '기네스 세계 기록(Guinness World Records)'인데 이후 매년 새로운 기록을 담은 새 발행본을 출간하면서 기네스북이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사실 기네스북 자체도 하나의 세계 기록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저작권이 있는 연속 출간물로, 현재 21개의 언어로 100개국 이상에서 팔리고 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작은 논쟁을 해결하고자 시작되었던 기네스북인데 어마어마하지요?

2. 가장 뛰어난? 가장 아름다운? 기네스북은 이런 건 말하지 않는다

SNS를 보면, '가장 뛰어난 스포츠 선수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오른 인물' 또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오른 작품'이라는 식으로 표현한 글들이 있는데, 기네스 세계 기록은 객관적인 수치 통계만을 수록하기 때문에 '뛰어난', ‘아름다운’같은 주관적인 평가는 하지 않습니다.

또한 인체에 위험성을 미치는 기록이나 범죄, 사건·사고와 관련있는 기록도 모방 범죄를 일으킨다든지, 세계 기록을 위해 고의적으로 범죄나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삭제되었습니다. 동물 체중 기록 역시 동물 학대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기록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식량 낭비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도 있어요. 요리, 음식 관련 기록의 결과물 참여자들이 식사용으로 소비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특정 서비스나 제품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기록도 금지 사항입니다.

3. 그럼, 어떻게 해야 기네스 세계 기록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세계 기록으로 인정되어 기네스북에 등록되기 위해서는 먼저 충족시켜야 할 조건들이 있는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1)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단위가 있어야 합니다.
2) 열심히 도전하면 깨질 수 있는 기록이어야 합니다.
3) 표준화되어 다른 사람이 반복하여 도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4) 기록에 대한 검증이 가능해야 합니다.
5) 최상의 기준에 근거하여 하나의 측정 단위로 측정되어야 합니다.
6)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 최고의 기록이어야 합니다.

4. “난 세계 기록을 깰 자신이 있어! 그런데 어떻게 신청하지?”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기록은 수시로 바뀔 수 있으며 매주 평균 1000명의 사람이 새로운 기록에 도전한다고 합니다.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데, 다만 미성년자는 반드시 부모님이나 법정 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신청은 기네스북 웹사이트를 통해 가능한데... 먼저 원하는 기록 종류를 검색해보고 만약 없다면 새로운 기록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웹사이트에서 온라인 지원서 양식에 누가 어떻게 도전하는 것이며, 어디서 어떻게 기록을 측정할 것인지, 왜 도전하는지 등을 필수 사항으로 적어 놓도록 되어 있습니다. 표준 신청서가 승인되기까지 최대 12주이고 신청자가 많으면 더 오래 소요될 수 있다고 합니다. 기네스북 팀에서 신청서와 증빙 자료 등을 검토 후 심사를 진행하며 승인되면 기네스북에 등재됩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한국 기네스 협회가 있었대요. 안타깝게도 인증을 남발하여 세계 기네스 협회로부터 계약을 해지당해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한국기록원에서 KRI한국기록원 공식 최고 기록 도전 및 심의 인증과 미국, 유럽연합, 아시아 등 국제적으로 저명하고 인지도 있는 해외 기록 인증 기관에 인증 심의 요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5. 유료서비스 투성이? 기네스북의 상술?

기네스북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심사 신청 접수, 증거 제출, 인증 등 여러 절차를 넘어야 하는데요, 이를 단축할 수 있는 유료 서비스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보니 돈을 벌기 위한 상술이라는 논란도 있습니다.

기네스북 등록에 관한 신청서 접수는 무료인데, 기록 등록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들어있는 지침서를 받는데만 평균 12~15주가 걸립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을 우선순위 신청서라는 유료 서비스(약 73~95만원)를 이용하면 5일 이내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지침서에 따라 증거를 제출한 후에도 다시 12~15주의 검토 기간이 소요되는데 검토 서비스(약50만원)를 이용하면 5일 이내에 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영국 기네스 본사의 심사위원을 초대하여 증빙을 받을 경우 왕복 항공료와 숙박비는 별도로 초청료로 따로 내야 한다고 합니다. 기네스 세계 기록 로고를 사용하는 데도 최소 170만원 이상 들며 세계 기록 인증에도 3~4개의 등급이 있어서 기네스 월드 레코드 마크를 사용하려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6. 한국의 기네스북 기록

한국에도 사람, 물건, 사건 등등 기네스북에 등재된 다양하고 놀라운 여러 가지 기록들이 있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1)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한 태권도 태극 1장:
지난해인 2023년에는 태권도가 우리나라 국기로 지정된 지 5년이 되는 해였는데요. 참고로 2018년 3월30일 '대한민국의 국기는 태권도로 한다'고 명시한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일명 태권도법이 제정되었는데... 이를 기념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국기 태권도 한마음 대축제'에서 무려 1만 2,533명이 태권도 품새 태극 1장을 동시에 진행하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이 퍼포먼스가 기네스 최다 단체 시연 부문 기록을 경신하며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2)6.25 한국전쟁:
6.25 한국전쟁은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한 나라를 도와주기 위해 참전한 전쟁이라고 합니다. 무려 67개국이 동맹국을 지원한 전쟁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3)사일로 벽화:
인천항 7부두의 노후된 곡물 저장고 외벽에 그려진 사일로 벽화가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벽화로 인증받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월미도 인근에 이 사일로 벽화가 있는데 이는 1979년 건립된 곡물 저장창고입니다. 폐산업 시설을 재활용한 것이 아닌, 사용 중인 노후 산업시설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디자인을 개선한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둘레 525m에, 아파트 22층과 맞먹는 높이 48m의 거대한 규모의 벽화입니다.

4)서귀포잠수함:
제주도 서귀포항에 있는 서귀포잠수함이 한국기록원에 관광잠수함 무사고 안전운항 2만 시간 기록 인증을 받았는데요. 조종사 2분이 "세계 최장 무사고 운항 조종사"로 2명이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몇 년 전 침몰한 타이타닉호를 잠수정을 타고 구경갔다가 참변을 당한 일이 뉴스에 나기도 했는데요... 대한민국 서귀포 해저관광은 안심하고 다녀오셔도 되겠습니다.

5) 정동진역:
정동진역은 영동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원래는 탄광촌 주민들의 여객 및 석탄 수송이 목적이었습니다. 광산이 폐광되고, 드라마 모래시계의 영향으로 이용객이 증가하면서 해돋이의 명소로 거듭났는데요, 경복궁이 있는 한양에서 정동쪽에 있는 바닷가라는 뜻으로 정동진이라고 불립니다. 정동진의 세계에서 바닷가와 가장 가까이 있는 기차역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역에서 해변까지의 거리는 약 200m 정도입니다.

6)영월군 옥수수 퍼포먼스:
2009년 영월군동강 축제 때 '3톤에 달하는 옥수수를 한 번에 쪄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시킨 기록이 있습니다.

7)평화의 댐 트릭아트:
강원도 평화의 댐 하류 콘크리트 경사면 벽에 그려진 트릭아트 벽화가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화천군 동촌리 평화의 댐에 조성한 높이 95m, 폭 60m 크기의 '통일로 나가는 문'이라는 작품입니다. 평화의 댐 보강공사 기간 중 20여 명의 전문 인력이 약 3개월 동안 제작한 벽화로, 댐 본체가 오래된 성벽처럼 보이게 하고 벽면 중앙에 하천 물이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초대형 트릭아트로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았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세계 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네스북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특별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도전해보고 싶은 기록이 있나요?

기네스북 발간일을 맞아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이나 아이디어로 세계 기록에 도전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네스북은 단순한 기록집을 넘어 전 세계인의 관심과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문화 현상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적인 면에서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끝없는 도전 정신과 성취욕을 보여주는 하나의 창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기네스북과 비슷한 게 있는데, 미슐랭 가이드입니다. 맛집 평가 별점으로 유명한 미슐랭 가이드도 사실은 프랑스의 타이어 제조 회사인 미슐랭(우리나라에선 미쉐린이라 함; Michelin)이 만든 자동차 여행 안내 책자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이 이야기는 또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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