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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고현학] 복달임의 고현학

방랑식객 진지한 승인 2024.08.14 00:00 의견 0

고현학(考現學)이란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유행의 변천을 조직적,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현대의 참된 모습을 규명하려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일상의 고현학]은 일상생활 속에 벌어지는 사안 하나를 주제로, 언제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펼쳐보는 이색코너입니다. 인터넷 검색 정보를 중심으로 정리한 넓고 얇은 내용이지만, 일상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의 층위를 높여가 보자구요!

올해는 인류가 복달임을 한 지 2700년째를 맞는 해입니다. 24절기를 기준으로 말복은 입추를 지나 처서 전에 오는데요. 입추는 가을의 시작, 처서는 더위가 그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말복 더위만 이기면 모든 더위가 끝나는 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복날과 복날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복달임의 고현학입니다.

(출처: 픽사베이)


1. 복날의 유래

복날 더위를 이기기 위한 풍습은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 연중행사와 풍속을 정리해 놓은 ‘동국세시기’에서도 삼복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은 삼복이 되면 나라에서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인 빙고에서 얼음을 타왔다고 해요. 얼음을 구할 수 없는 백성들은 산과 계곡으로 가서 발을 담그고 술과 음식을 나누는 탁족을 즐겼다고 합니다.

‘동국세시기’는 조선 후기 간행된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인데요. 이 책에는 복날의 기원을 중국 진나라 때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 전한 시대 사마천이 저술한 역사서 ‘사기(史記)’에 “진나라 덕공 2년에 처음으로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성 사대문 안에서는 개를 잡아 충재(蟲災·해충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방지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적혀있는데, 진나라 덕공 2년을 환산하면 기원전 676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부터 복날이 있었고,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풍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2. 복날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복날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의 속절로 초복, 중복, 말복을 말합니다. 하지로부터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넷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 후 첫째 경일(庚日)을 말복(末伏)이라 했습니다. 뭔가 복잡하게 느껴지시죠? 제가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통 옛날에는 음력을 사용했다고 알고 계시지만, 농사를 잘 짓기 위해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24절기를 정하고 있습니다. 입춘, 경칩, 춘분, 하지, 입추 등이 24절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이 24절기는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 기준으로 거의 매년 같은 날짜에 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복날은 양력과 음력을 섞어 정한 날입니다. 음력에서 날을 셀 때는 육십갑자로 세는데요. 양력에 해당하는 하지와, 입추 사이에 오는 날짜 중 3번의 경일을 순서대로 초복-중복-말복이라 한 건데요. 경일(庚日)이란 건 음력에서 날짜를 셀 때 육십갑자의 천간(天干) 중 ‘경(庚)’자가 들어가는 날을 말합니다.

올해의 초복-중복-말복도 순서대로 살펴보면 초복은 음력 6월 10일 ‘갑진(甲辰)년 신미(辛未)월 경진(庚辰)일’, 중복은 음력 6월 20일 ‘경인(庚寅)일’, 말복인 내일은 음력 7월 11일로 ‘임신(壬申)월 경술(庚戌)일’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경일(庚日)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경(庚)’이 오행 중 ‘금(金)’을 나타내고, 계절로는 가을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즉, 금의 기운이 있는 경일에 하늘에 제사를 드리며 더위를 극복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삼복(三伏)이 아닌 삼경일(三庚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민간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을 의미하는 ‘속절’로 지키며 지금까지 내려오게 된 겁니다.

이 삼복 기간은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입니다. 따라서 ‘삼복더위’라는 말은 몹시 더운 날씨를 지칭하는 말로, 가장 더운 시기인 삼복 기간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복날을 의미하는 ‘엎드릴 복(伏)’자는 사람 ‘인(人)’ 변에, 개 ‘견(犬)’ 방으로 구성되어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있는 형상으로, 가을의 기운이 여름의 더운 기운에 세 번 굴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3. 복달임과 복날 음식

예전에는 복날 인사로 “복달임하셨습니까?”라고 했다고 하는데요. 더운 복날 더위를 피해 물가나 숲을 찾고, 몸을 보양해 주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을 통틀어 ‘복달임한다’라고 표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를 잡아 끓이는 보신탕만 떠올리시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를 먹는 건 남쪽 지방의 일부 풍습이었고, 한양의 양반가에선 육개장이나 민어탕을 주로 끓여 먹었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 이수광이 편찬한 지봉유설에 복날 음식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복날은 ‘양기에 눌려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개장국, 육개장, 임자수탕, 적소두죽을 즐겨 먹었다고 전합니다.

임자수탕은 주로 궁중과 양반가에서 즐겨 먹었던 여름철 보양식인데, 차게 식힌 닭육수와 볶은 깨를 갈아 섞은 것을 면이나 체에 걸러 국물을 만들고, 여기에 닭고기, 계란지단, 오이채, 미나리, 표고버섯 등 고명을 취향에 따라 얹어 먹는 요리로, 요리에 주로 사용하는 들깨를 임자(荏子)라고 불렀기 때문에 임자수탕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합니다.

‘적소두죽(赤小豆粥)’은 팥죽입니다. 질 좋은 단백질을 섭취해 삼복더위로 허해진 몸을 보호하고 피로를 해소했습니다. 팥죽은 팥죽의 붉은 색에는 악귀를 쫓고 병치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어 동지날에도 즐겨 먹는 음식이었죠.

4. 복날엔 뭐니뭐니해도 이열치열!

외국 사람들이 한국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이열치열(以熱治熱)’입니다. 뜨거운 여름에 뜨거운 음식을 먹는 한국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한국인을 거짓말쟁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이열치열이 과학적으로 올바른 선택입니다. 몸이 뜨거울 때 찬 음식을 먹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는데요. 여름철 기온이 올라가면 사람의 인체는 36.5℃를 유지하기 위해 내장을 차갑게 하는데, 여기에 차가운 성질의 음식이 들어가면 오히려 몸에 독이 됩니다.

차갑게 먹으면 일시적으로 몸이 서늘해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내장에 좋지 않아 소화가 잘 안되거나 배탈로 이어지지고 신체 밸런스를 무너뜨립니다. 더위를 따뜻한 음식으로 이겨내려는 지혜의 산물이 바로 조상 대대로 내려온 복달임 음식이 아닌가 합니다.

5. 이열치열하면 역시 삼계탕

뜻밖에도 삼계탕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음식이 아닙니다. 최초의 등장은 ‘계삼탕’이었다고 해요. 1950년대 후반 6.25전쟁 이후 대중식당에서 팔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계삼탕은 닭국에 값싼 백삼 가루를 넣는 정도였으나, 양계산업이 발달하고 인삼 재배지가 늘어나면서 영계백숙을 팔던 식당들이 1960년대부터 오늘날의 삼계탕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닭고기로 만든 삼계탕은 성질이 따뜻하고 양기(陽氣)를 보충해주는 음식입니다. 삼계탕에 함께 들어간 인삼, 대추, 마늘도 건강효과가 뛰어납니다. 인삼의 사포닌 성분은 면역력 증진시키고 스트레스를 완화 시키며 노화 방지에 도움을 주며, 대추는 비타민 C가 많아 항산화 효과를 내고 따뜻한 성질을 띠고 있어 몸을 따뜻하게 덥혀줍니다. 마늘의 알리신은 강한 살균 효과와 항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6. 이색 복달임 음식

복달임 음식은 제철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주재료가 중요했습니다. 여름이 제철인 장어도 복달임 음식 재료로 빼놓을 수 없는데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장어를 ‘해만리’라고 칭하며, 맛이 달고 진하며 사람에게 이롭다고 기록했습니다. 장어는 실제로 단백질과 비타민A 함량이 많고, 불포화지방산과 콜라겐이 풍부하며 칼슘, 인, 철분 같은 무기질도 고루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음식에는 죽도 있는데요, 한여름 더위로 소화 기능이 약해질까봐 죽을 쑤어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날에 죽을 쑤어 먹으면 논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쌀죽은 배앓이에 좋다고 하여 “여름 흰죽 한 그릇이 인삼탕 한 그릇”이라고도 했습니다.

닭을 주재료로 하지만 차갑게 조리해 먹는 초계탕은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홍씨가 즐겨 먹은 데에서 유래되었는데 이후 궁중에 행사 음식으로 차려지던 것이 일제강점기 이후 대중적인 복달임 메뉴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삭음(河朔飮)’도 재미있는 복달임 중의 하나인데, 하삭에서 삼복더위를 피하여 술을 마셨다는 후한 말 유송과 원소의 아들들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조선 시대 한량들이 계곡에서 술을 취하도록 마시며 더위를 잊는 ‘하삭음’ 놀이를 즐겼다고 하는데, 연꽃으로 술잔을 만들어 마셨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술 한잔을 떠올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공감을 일으키는 복달임인 것 같습니다.

7. 복달임도 채식이 대세

최근에는 채식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복날에 육류 보양식 대신 채식 복달임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채개장은 대표적인 채식 복달임인데, 육개장에서 육류를 뺀 음식입니다. 채개장의 핵심은 된장과 고추장, 들깻가루 양념에 버무린 채소를 뭉근한 불에 오래 끓여 채소의 다양한 맛이 우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채소를 넣어도 상관없지만 고사리와 대파, 숙주를 넣습니다.

식물성 보양식으로 빠지지 않는 것은 콩국수입니다. 콩은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아미노산과 단백질 함량이 높습니다. 최근에는 시판용 콩국물도 쉽게 구할 수 있어 집에서 간단하고 맛있게 콩국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콩국수는 비타민C가 거의 없다는 단점이 있어서, 비타민C를 함유한 오이나 방울토마토 등의 채소를 고명으로 곁들여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들깨를 갈아 버섯과 함께 뜨끈하게 끓인 버섯들깨탕은 스님들도 자주 드시는 보양탕중의 하나입니다. 들깨 또한 단백질이 풍부한 데다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없애고 혈행 개선에 탁월한 오메가3 지방산을 비롯한 영양소가 풍부한 식재료입니다.

8. 각양각색 나라별 보양식

일본에도 한국의 복날과 비슷한 날이 있는데, 7월 하순 ‘도요노우시노히(土用の丑の日)’라는 날에 무더위에 약해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장어덮밥을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 이는 일본의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한여름에 장어가 팔리지 않자, 상인들이 “12간지 중 소에 해당하는 날에 ‘우’ 발음이 나는 음식(민물장어; 우나기/うなぎ)을 먹으면 여름을 타지 않는다”는 미신을 활용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장어는 고단백 음식이면서 여름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A가 풍부해 피로회복에 좋은 보양식입니다.

중국에서는 1년중 가장 더운 날을 ‘쿠시아(苦夏)’ 고통스러운 여름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복날 풍습은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것인데요, 그 중에서도 중국 북방 지역에는 삼복과 관련해 “초복에는 교자를 먹고 중복에는 면을, 말복에는 계란전을 먹는다”는 속담이 전해집니다. 곡식이 부족한 시기에 귀한 밀로 만든 음식을 보양식으로 먹었던 것인데요, 요즘은 따로 복날을 챙기진 않지만 여름철 보양식으로 ‘훠궈’를 많이 먹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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