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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고현학] 미쉐린 가이드의 고현학

방랑식객 진지한 승인 2024.11.01 15:53 의견 0

고현학(考現學)이란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유행의 변천을 조직적,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현대의 참된 모습을 규명하려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일상의 고현학]은 일상생활 속에 벌어지는 사안 하나를 주제로, 언제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펼쳐보는 이색코너입니다. 인터넷 검색 정보를 중심으로 정리한 넓고 얇은 내용이지만, 일상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의 층위를 높여가 보자구요!

식욕의 계절 가을입니다. ‘먹는 게 남는 거’라는 말을 할 정도로 한국 사람들은 먹는 데 진심인데요. 미식을 딱히 즐기지 않는 사람도 미쉐린 가이드 혹은 미슐랭 가이드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미쉐린과 미슐랭은 발음의 차이인데요, 영어식 발음으로는 미쉐린, 프랑스식 발음으로는 미슐랭이라 합니다. (오늘은 세계적으로는 영어를 기준으로 사용하므로 오늘은 ‘미쉐린 가이드’라고 하겠습니다.) 미쉐린 가이드는 언제부터 생겨났으며, 이 별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오늘은 미쉐린 가이드의 고현학니다.

(출처: 미쉐린 가이드 홈페이지)

1. 미쉐린 가이드의 시작은 타이어 회사?

미식의 기준이 되는 미쉐린 가이드가 타이어 회사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미쉐린은 1889년에 설립해 올해로 135주년을 맞이한 프랑스의 유서 깊은 타이어 회사입니다. 설립자는 앙드레 미쉐린과 에두아르 미쉐린 형제인데요, 타이어 판매를 고민하던 미쉐린 형제는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다 보면 타이어의 소비 또한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여행안내 책자를 만들어 고객에게 무료로 배부했는데, 이 여행안내 책자가 미쉐린 가이드의 시작입니다.

미쉐린 형제가 타이어 회사를 설립한 19세기 말은 자동차가 막 보급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자동차 수는 다 합쳐서 3,000대가 안 되는 수준이었고, 도로 사정도 열악해서 자동차 여행이 어려웠던 시대였습니다.

최초의 미쉐린 가이드에는 지도, 타이어 교체법, 주유소 위치, 숙박업소와 식당 등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었는데, 이게 점차 레스토랑 위주로 바뀌었습니다. 1920년부터는 유료로 판매기 시작하며 평가 위원을 모집했고, 1926년부터는 별점을 부여하는 미쉐린 스타 평가 방식을 본격 도입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별 1개~3개로 세분화하게 된 건 1936년부터라고 합니다.

2. 미쉐린 별점은 어떤 의미?

미쉐린 가이드는 레드 시리즈와 그린 시리즈로 나뉘는데,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레스토랑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 레드 시리즈입니다. 그린 시리즈는 여행, 관광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는 해마다 가장 뛰어난 식당을 선정하여 별점을 부여하는데요, 별 세 개가 달린 것이 최고 등급입니다.

미쉐린 1스타는 요리가 섬세하고 훌륭한 식당이라는 뜻입니다. 2스타는 다른 지역이더라도 일부러 찾아갈 만한 식당을 의미하구요, 3스타는 미식 경험을 위해 해외 여행을 결정해도 좋을 식당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쉐린 가이드가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3. 빕구루망? 셀렉티드? 그린스타? 미쉐린 가이드에 나오는 용어들

미쉐린 가이드에 나오는 식당들은 대부분 요즘 파인다이닝이라 부르는 고급 식당인 경우가 많습니다. 음식 맛을 끌어올리려면 좋은 식재료를 써야 하고 실력있는 쉐프를 둬야 하니 그렇게 된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1957년부터 미쉐린 가이드에 추가된 항목이 ‘빕 구루망’입니다.

‘빕 구루망’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의 상징입니다. 참고로 ‘빕’은 미쉐린 마스코트인 ‘비벤덤’의 이름 앞의 세 글자에서 따 온 것이고, ‘구르망’은 프랑스어로 ‘식도락가’, ‘미식가’라는 뜻입니다. 미쉐린 가이드의 빕 구르망 기준은 ‘식대’입니다. 요게 나라마다 다른데요, 미국은 40달러, 유럽은 35유로, 일본은 5천엔, 한국은 4만 5천원 이하의 가성비 맛집을 뜻합니다.

‘셀렉티드’는 2018년에 추가된 타이틀로 “좋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라는 뜻입니다. 빕 구루망처럼 저렴하지는 않지만, 미쉐린 스타에 준하는 괜찮은 레스토랑이라는 뜻입니다.

‘그린 스타’는 2020년부터 시작된 건데, 지속가능한 미식을 실천하는 곳을 선정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근거리 제철 식재료 사용, 직영 농장 운영, 생태계 다양성 보호, 동물 복지 실현, 음식물 쓰레기 감소를 위한 노력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고 해요.

4. 미쉐린 가이드, 어떤 사람이 평가하나?

앞서 1920년부터 평가위원을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평가원들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미식 가이드를 제공하는 핵심입니다. 평가원은 절대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며,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이 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미쉐린 가이드 평가위원인데...”라고 하면서 공짜로 음식을 내오라고 한다면 100% 무전취식을 노리는 사기꾼입니다. 보통 요식업이나 호텔, 케이터링 업계의 경력이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고 하고요, 내돈내산으로 엄격하게 평가한다고 합니다. 특히 별 개수를 부여하는 데는 만장일치 원칙이 있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른 평가원들이 반복해서 레스토랑을 방문해 심사한다고 합니다.

미쉐린 공식 사이트를 보면 다섯 가지의 평가 기준이 있습니다. ①요리 재료의 수준, ②요리법과 풍미의 완벽함, ③쉐프의 개성과 창의성, ④가격에 합당한 가치, ⑤전제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입니다. 다섯 가지 기준만 봐도 오로지 음식의 맛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입니다. 음식점의 서비스나 분위기 안락함 등은 가이드북에 포크와 나이프 픽토그램으로 별도표시할 뿐, 별점과는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5. 노점도 미쉐린 별점을 받을 수 있을까?

실제로 싱가포르의 한 노점이 미쉐린 가이드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간장 소스를 얹은 닭고기와 얇은 면발을 조합한 길거리 면 요리라고 합니다. 우리 돈으로 3천 원 정도 되는 가벼운 음식이었는데, 2016년 미쉐린 가이드가 이 가게에 별점 1개를 주어 엄청난 화제가 되었습니다. 최초의 노점상 미쉐린 식당이자,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미쉐린 식당’으로 알려졌지만, 아쉽게도 2021년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을 받지 못하면서 5년 만에 미쉐린 자격을 잃었다고 합니다.

근데 최근 미쉐린 가이드 사상 두 번째 노점이 등장했는데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의 작은 타코 가게인 ‘엘 칼리파 데 레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가 5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노포라고 해요. 메뉴는 네 종류의 타코인데, 우리 돈 4~7천 원 정도라고 하는데요. 가로세로 3m에 불과할 정도로 좁은 노점이라, 손님들은 음식이 담긴 플라스틱 접시를 들고 선 채로 먹고 가야 한다고 합니다.

6. 미쉐린 가이드와 관련한 특이한 에피소드

미쉐린 가이드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진격을 도와 독일 점령지였던 프랑스를 해방시키는데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2차대전 당시 유럽의 운명을 바꾼 것으로 알려진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의 일입니다. 연합군은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이 도로 표지판을 모두 파괴해 길을 알기 어려워, 상륙 작전 후 독일 방향으로 진격하는 게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미쉐린 가이드였습니다. 미쉐린 가이드 내용 속에 맛집정보만 들어있는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여행자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 만들어지다보니 수백 군데가 넘는 여행지의 상세 지도가 가이드에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연합군은 1929년 판 미쉐린 가이드를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비밀리에 미국 워싱턴에서 재인쇄하여 유럽의 연합군 사령부에 제공되었습니다. 이 덕분에 연합군이 프랑스를 다시 탈환하는 데 미쉐린 가이드가 큰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미쉐린 가이드는 레스토랑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데요. 미쉐린 가이드에서 높은 등급을 받으면 전세계적인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간혹 이로 인한 부작용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쉐프들 입장에선 별점 제도가 심리적인 부담을 크게 주는 면이 있습니다.

스위스 로잔의 미쉐린 3스타 식당의 브누아 비올리에가 미쉐린 평가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 별점이 떨어진 이유 때문에 소송을 건 레스토랑도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프랑스에서는 ‘조갯살이 들어간 치즈 수플레’가 법정에 증거물로 제출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별점보다는 요리에 집중하고 싶어서 자신의 레스토랑을 미쉐린 평가 리스트에서 빼 달라고 요청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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