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학(考現學)이란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유행의 변천을 조직적,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현대의 참된 모습을 규명하려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일상의 고현학]은 일상생활 속에 벌어지는 사안 하나를 주제로, 언제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펼쳐보는 이색코너입니다. 인터넷 검색 정보를 중심으로 정리한 넓고 얇은 내용이지만, 일상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의 층위를 높여가 보자구요!
드디어 무더위가 끝났습니다. 역시 9월은 9월입니다. 그런데 저는요, 여전히 카페에 들르면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데요. 요즘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속어가 일상어가 될 정도로 한겨울에도 얼음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인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그래서 오늘은 얼음의 고현학입니다.
1. 얼음의 정체
얼음은 물이 고체 상태로 변한 것입니다. 고체는 결정형태를 띄게 되는데요, 얼음의 결정은 하나만이 아닙니다. 지구상에는 17가지 다른 결정 형태의 얼음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가 보는 얼음은 투명하거나 옅은 푸른빛을 띠는데, 이는 얼음이 얼 때 공기 중 불순물이 섞여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2. 얼음이 물에 뜨는 이유
얼음이 물에 뜨는 이유는 밀도 차이 때문입니다. 얼음은 물보다 밀도가 작아 물 위에 뜰 수 있습니다. 1기압을 기준으로 할 때 얼음은 물보다 8% 정도 밀도가 낮습니다. 얼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데요... 물이 얼면서 부피가 늘어난다는 것인데, 이는 금속이 아닌 고체 중 물에서만 유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런 이유는 순수한 물을 인공적으로 얼려도 기포가 생기기 때문에 물보다 밀도가 낮게 되는 겁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천연 얼음은 얼음 속에 여러 불순물도 혼합되어 있어서 밀도는 더 낮아집니다. 이런 특성 덕분에 한겨울 강이 꽁꽁 얼어도 위쪽부터 얼기 시작해도 강 아래에는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됩니다.
3. 얼음을 넣으면 차가워지는 원리는?
음료수에 얼음을 넣으면 시원해지는 현상은 과학적으로 “얼음이 융해되면서 흡열반응이 일어나 음료수의 온도가 낮아진다”는 말로 설명합니다. 얼음이 물로 변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열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에 음료수의 온도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흡열반응’이라고 하는데요. 고체가 액체와 기체처럼 상대적으로 운동이 활발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활발해지기 위한 에너지가 더 필요한데요, 필요한 만큼 외부의 에너지를 흡수해 자신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고체 상태의 얼음이 물과 수증기가 되기 위해서 주변의 열에너지를 흡수하는 흡열반응 덕분에 시원한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4. 편의점에서 파는 얼음은 집에서 얼린 얼음보다 투명하고 단단할까?
놀랍게도 편의점에서 1년 내내 생수보다 많이 팔리는 게 바로 ‘컵 얼음’이라고 합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봉지 얼음은 가정에서 얼린 얼음보다 훨씬 투명하고 단단해서 잘 녹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어떤 차이가 이런 얼음을 만드는 것일까요? 쉽게 말하자면 천천히, 오랜 시간을 얼리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빙 공장에서는 0℃에 가까운 온도에서 물을 48시간 이상 천천히 얼립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얼어가며 얼지 않은 중심부로 미네랄 성분이 모이기 시작하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완전히 얼기 직전 중심부로 몰린 미네랄 성분을 건져내면 투명하고 단단한 얼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5. 동그란 얼음? 사각 얼음? 간 얼음? (얼음의 형태와 용도)
최근 ‘빅 볼’이라고 불리는 컵 속에 꽉 찬 공같이 커다랗고 둥근 얼음이 유행하고 있는데요. 원래는 위스키 전문점이나 칵테일바에서 시작되었는데, 요즘은 편의점에서도 ‘빅 볼 얼음’을 살 수 있습니다.
공 모양을 ‘구(球)’라고 하죠? ‘구’의 가장 큰 특징은 같은 부피일 때 표면적이 가장 작다는 것인데요, 같은 강도의 얼음이라도 구 모양의 얼음이 음료와 접촉하는 면적이 작아 얼음의 녹는 속도가 느려지게 되고, 더 오랜 시간 동안 차가움을 즐길 수 있어 이런 얼음이 나오게 된 겁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음료 맛의 변형 없이 오랫동안 즐기고 싶다면 음료와 접촉하는 표면적이 작아 천천히 녹는 구 모양의 동그란 얼음이 좋고, 얼음이 녹는 속도를 높여 음료를 빨리 차갑게 식혀서 먹고 싶다면 표면적을 넓게 해줘야 합니다. 이럴 때는 잘게 부순 얼음을 선택하는 것이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공중에 뿌린 뜨거운 물이 바로 어는 영상을 봤는데? (음펨바 효과)
SNS에서 뜨겁게 끓인 물을 공중에 뿌렸는데 바로 물이 얼어붙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보신 분 있을 겁니다. 이런 영상을 보면 “대체 얼마나 춥길래 뜨거운 물이 얼지?”하실텐데요...
그런데 찬물보다 오히려 뜨거운 물을 뿌렸을 때 더 빨리 얼어붙습니다. 이런 현상을 ‘음펨바 효과’라고 부릅니다. 1963년 탄자니아의 어린 학생 에라스토 음펨바가 발견한 신기한 현상인데요.
음펨바는 조리 수업 중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 우유와 설탕을 섞어 끓인 용액을 식히지 않고 냉동실에 바로 넣었는데, 식혀서 넣은 친구들의 것보다 더 빨리 얼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음펨바는 고교 진학 후 물리학자 데니스 오스본 교수의 강연을 듣다가 이 이야기를 했고, 오스본 교수는 이 현상을 재현해 1969년 연구 결과를 발표했으나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발견 이후 50년이 지난 2014년 싱가포르의 연구팀이 이 현상의 원인을 밝혀냈는데, 물 분자에 작용하는 공유결합과 수소결합의 상관관계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이 얼음으로 바뀐다는 것은 열역학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과정인데, 뜨거운 물은 찬물보다 에너지를 더 많이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냉각 시 공유결합이 길어지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속도도 더 빠르기 때문에 찬물보다 더 빨리 냉각된다고 합니다.
7. 얼음 보관의 역사
지금은 어느 집에나 냉장고가 있고 냉동실에서 쉽게 얼음을 만들어내지만,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겨울에 캐서 보관한 얼음을 여름철에 쓰다 보니 얼음은 왕실이나 고위직 관료만 쓸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얼음을 보관했던 기록은 삼국시대 초기부터 찾아볼 수 있는데, 이때부터 국가가 주도해서 겨울철에 얼음을 보관해 쓰도록 장빙고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얼음을 관리하는 ‘빙고전(氷庫典)’이라는 기구가 있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겨울에 얼음을 저장해 뒀다가 절기 상 ‘입하(立夏)’가 되면 왕실 관청 귀족에게 나눠줬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수도 한양에 동빙고, 서빙고를 건설하여 동빙고에는 국가 제사용 얼음을, 서빙고에는 왕실과 고위 관료들이 쓸 얼음을 저장했습니다.
세종대에는 여름철 어육(魚肉)이 썩지 않도록 대비하기 위해 궁궐에 내빙고를 만들기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서빙고 터는 지금도 남아있는데 표석에 “조선 시대 8채의 움막집 형태로 지어졌던 얼음창고 터, 이 얼음은 궁중과 백관들이 사용하였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그 규모를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얼음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연결되었으며 얼음을 쓰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신성화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얼음을 저장하고 얼음을 떠내는 것은 음양(陰陽)이 고르지 못한 것을 섭리(攝理)를 조화(調和)하는 일’이라며 얼음 저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이 여러 번 나오며, 겨울에 한강의 얼음이 얼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얼음을 캐기 전에 얼음이 잘 얼도록 기원하는 ‘기한제(祈寒祭)’를 지내고 입춘(立春)에 빙고의 문을 열면서 북방의 신에게 ‘사한제(司寒祭)’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동빙고 터 옆에는 빙고에서 얼음을 저장할 때와 꺼낼 때 물과 비의 신인 ‘현명씨(玄冥氏)’에게 제사를 지냈던 터인 ‘사한단 터’가 있습니다. 빙고에서 얼음이 잘 보관되기를 기원하는 사한제와 겨울에 얼음이 얼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추워지기를 기원하는 기한제 등이 사한단 터에서 진행되었고, 1908년에 폐지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해요.
8. 얼음 채취와 백성들의 고통
얼음을 캐서 저장하는 것은 백성들의 노동력을 징발해 이뤄졌습니다. 얼음창고를 짓고, 치수에 맞게 얼음을 캐서 창고에 저장했습니다.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 20년 사간원의 상소문을 보면, 충청도, 강원도 등 백성에게도 장빙역(藏氷役)을 줘 백성들이 얼음이 굳게 어는 때를 기다리느라 먹을 양식을 가지고 올라와 여러 날을 유숙했다고 합니다. 성종 1년 신숙주의 상소문에 따르면 동빙고에 질 좋은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20리나 떨어진 곳에서 얼음을 캐오느라 백성들이 매우 괴로워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겨울이 따뜻하면 얼음이 어는 한강 상류까지 올라가야 해서 얼음을 캐고 옮기는 일이 매우 힘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에는 얼음 저장은 점차 민간 주도의 사업으로 변모했는데요 성종조부터 한강 연안에 사빙고가 건설되었으며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이 양화진에 사빙고를 지었고, 세조 때의 공신 강희맹이 합정에 지은 사빙고가 대표적인 곳입니다.
18세기 들면서 사빙고는 30여곳으로 크게 증가했으며 조선 후기 돼지고기, 소고기, 생선 등을 판매하는 현방, 저육전, 생선전의 얼음 수요가 크게 늘어났고, 이 즈음 빙어선도 출연했습니다. 한강에 얼음을 싣고 서해로 나가 포획된 어물을 옮겨 싣고 다시 한강에 들어와 판매하면서 선어 형태의 어물이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9. 우주의 씨앗, 얼음
얼음은 얼어있는 탓에 모든 화학반응이 멈춘 상태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실제로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얼음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는데요, 최근 다른 이유로 얼음에 대한 관심도가 커지고 있습니다.
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만 발견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행성에는 물 대신 얼음의 형태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얼음을 ‘우주의 씨앗’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최신 연구 결과 얼음 내부에도 완전히 얼지 않은 준액체층이 존재하여 어는 점 아래에서도 화학반응이 진행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얼음 화학에 대한 연구가 세상의 탄생을 밝혀줄 단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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