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가 이겨야 한다. 정확히는, 새로운 해밀턴주의가 이겨야 한다.
다소 모호한 점이 있지만, 해리스는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상당부분 계승했다. 그리고 바이드노믹스는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 제안한 개발 계획과 많이 닮았다.
해밀턴의 개발 계획은 대략 이렇다. 하나, 관세를 높혀서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 둘, 중앙은행을 세워서 신용을 안정적으로 창출한다. 셋, 연방정부가 재정을 대대적으로 지출해서 인프라를 건설하고 제조업을 일으킨다. 요약하자면, 연방정부는 경제에 많은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밀턴은 철저한 계획경제를 바란 것이 아니다. 훗날 프랑스의 드 골 정부나 한국의 박정희 정부처럼 중앙에서 직접 각 기업을 통제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연방정부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에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해밀턴주의는 오랫동안 미국의 경제 질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남부와 북부의 갈등 같은 여러 위기 탓에 해밀턴의 제안이 고스란히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미국의 후대 대통령들은 보호무역주의와 정부 주도 산업화를 꾸준히 시도했다. 심지어 제퍼슨 같은 해밀턴의 정적들도 집권 후에는 관세와 정부 주도 국토 개발을 외면하지 않았다.
해밀턴이 적극적인 연방정부를 만들려고 한 이유는 부국강병이다. 당시 미국 국부들은 그저 자유로운 나라를 원한 것이 아니라 질서 있고 강력한 나라를 원했다. 몇몇 주가 반란을 일으키거나 영국이 다시 침공하더라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그런 튼튼한 나라를 바랐다. 특히 해밀턴은 제조업 생산력이 군사력을 지탱한다는 점을 내다보고 있었다.
보호무역과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지금 바이든 정부가 하고 있는 일 그 자체다. 실제로 미국 경제사학자 제이콥 솔은 바이드노믹스를 '신해밀턴주의 안보경제'라고 불렀다. 일반적으로 바이드노믹스를 보며 해밀턴을 떠올리지는 않고, 바이든 대통령 본인도 해밀턴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분명 바이드노믹스는 해밀턴주의를 닮았다는 것이다.
감세와 관세에만 의존하는 트럼프노믹스보다는, 바이드노믹스가 훨씬 미국적이고 근본 있는 셈이다.
카멀라 해리스의 경제 공약은 바이드노믹스보다 살짝 물러섰거나 다소 모호하다고 평가받는다. 아무래도 중도층을 의식한 듯하다. 하지만 해리스가 큰 틀을 바꾼 것은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이드킥으로서,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드노믹스를 적극 뒷받침했다. 후보로 뛰고 있는 지금도 바이드노믹스와 완전히 결별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해리스가 당선되어서 신해밀턴주의 기조를 이어간다면,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도 외면하고 경제학의 발전도 뒤쫓지 못하는 한국 자유방임주의자들에게 다시 한 번 현실을 들이밀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미국은 그 자체로 브랜드이자 권위다. 수 많은 연구자료보다 미국이라는 사례 하나를 보여주는 편이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 더 효과적이다. 해리스와 함께 해밀턴이 돌아온다면, 소멸 위기에 처한 한국에 다시 한 번 개혁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해밀턴은 경영을 고무시킬 권리, 또 필요하다면 그것을 저지할 권리가 연방정부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는 ‘개인적인 재산 취득의 역학에 대한 해밀턴의 열정은 언제나 정부 규제와 제어에 대한 믿음으로 단단해져 있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일례로 그는 공산품에 대한 정부 점검이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고 판매에 충격 요법을줄 수 있다고 논하면서,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혁신주의 시대에 가서야 시행될 규제 정책들을 예견했다."
- 론 처노, 알렉산더 해밀턴, 서종민 등 옮김, art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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