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초반 유럽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격동기였습니다. 종교개혁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이 전통적 세계관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특히 1605년은 유럽 문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된 해였습니다. 1605년에 출간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1부』는 최초의 근대 문학을 이룬 소설이면서 시대의 변화를 알리는 작품이었습니다.
■ 종교개혁의 여진, 화약음모 사건
1605년 11월 5일 새벽,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궁전 지하실에서 한 남자가 체포되었습니다. 가이 포크스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36통의 화약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가 체포되며 영국 역사상 가장 대담한 암살 시도였던, 이른바 ‘화약음모 사건’이 무산되었습니다.
사건의 배후에는 로버트 캐츠비를 중심으로 한 영국 가톨릭 신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제임스 1세와 의회 의원들을 일거에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상원 개회식이 열리는 날, 의회 건물을 폭파해 국왕과 정부 요인들을 암살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 극단적인 계획의 배경에는 깊은 종교적 갈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헨리 8세의 수장령 이후, 잉글랜드는 강력한 반카톨릭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가톨릭 신도들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1세가 즉위하면서 종교적 관용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1세는 오히려 성공회 중심의 종교 정책을 강화했고, 가톨릭에 대한 차별은 계속되었습니다.
화약음모 사건의 실패는 가톨릭의 입장을 약화시켰습니다. 가톨릭에 대한 탄압은 한층 강화되었고, 이로 인해 영국 사회의 종교적 분열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15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으로 시작한 종교개혁은 이미 한 세기를 채워 감에도 여전히 유럽 사회에 깊은 균열을 남기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1617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페르디난트 2세가 보헤미아의 왕으로 선출되며 보헤미아에서는 개신교 탄압을 시작합니다. 이에 1618년 5월 23일, 보헤미아의 개신교 귀족들이 프라하성에서 황제의 가톨릭 대리인들을 창문 밖으로 던지는 일(프라하 창문 투척 사건)이 벌어지며 보헤미아 전역에서 개신교도들의 반란이 촉발됩니다. 이에 가톨릭 세력이 보헤미아 진압에 나서고, 다른 개신교 국가들도 참전하며 유럽 전역은 ‘30년 전쟁’의 전화에 휩싸이게 됩니다.
■ 근대소설의 탄생, 돈키호테
1605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세계문학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작품이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1부』입니다. 기사도 소설을 탐독한 끝에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시골 귀족의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중세 기사도 문학에 대한 패러디였지만, 이전의 어떤 소설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탐구하며 새로운 문학을 시도합니다.
'돈키호테'가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 혁신적 요소 때문입니다. 우선 17세기 초 스페인 사회를 배경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일화와 인물, 행위를 일관된 구조와 플롯으로 엮어내는 등 새로운 서사 기법이 등장합니다. 특히 선악 구도로 대비되는 단편적인 캐릭터를 벗어나, 대화를 통해 입체적인 캐릭터를 창조하고, 인물들의 중층적 관점을 대비시켜 현실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기존의 중세문학과 큰 차이를 보여주는 점은 개인의 모습을 근대적 자아로 그려냈다는 것입니다.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산초 판사의 대비는 단순한 성격의 차이를 넘어, 근대인의 분열된 자아를 상징합니다. 돈키호테의 비이성적 행동과 산초의 합리적 이성이 대비되면서, 근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순된 본성을 드러냅니다.
가장 혁신적인 건 소설 속에서 작품 자체를 언급하는 메타픽션 기법이 시도됐다는 점입니다. 이는 현대 문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기법으로, 시대를 초월한 문학적 실험을 한 세르반테스의 문학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 홍길동전, 문학으로 태동한 근대
1605년의 동아시아도 새로운 역사적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었고, 명나라는 만주의 여진족 세력이 점차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새로운 막부 체제를 확립해가는 중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돈키호테 1부』가 출간된 것과 같은 시기 조선에서도 문학적 혁신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료를 통해 이 시기 허균의 『홍길동전』이 저술되었거나 저술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홍길동전』은 최초의 한글 소설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단순한 흥미 위주의 이야기가 아닌 깊이 있는 사회 비판 의식을 담고 있었습니다.
『홍길동전』의 가장 큰 특징은 당시 조선 사회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는 점입니다. 서얼 차별, 관리들의 부패, 신분제의 모순 등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작가 허균 자신의 진보적 사상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특히 공화국에 가까운 ‘율도국’ 건설을 통해 평등하고 자유로운 이상 사회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점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영웅 소설의 틀을 벗어나,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새로운 형태의 서사를 창조했습니다. 현실 사회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도술과 같은 비현실적 요소를 결합해 독특한 서사를 구축한 점 또한 문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 새로운 전통, 크리스마스트리의 등장
1605년 유럽의 스트라스부르그에서는 최초로 실내 크리스마스트리가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당시 여행자의 일기에 장미, 사과, 웨이퍼, 사탕 등 다양한 장식으로 꾸며진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합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등장은 단순한 장식물의 출현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 기원은 중세 시대의 ‘낙원 나무’ 전통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아담과 이브의 축일을 기념하는 종교극에서 사용되던 소품이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종교개혁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가톨릭의 성상 숭배를 비판하던 개신교는 자연물인 전나무를 사용함으로써, 종교적 의미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종교개혁으로 변화하는 유럽의 문화적 지형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 1605년의 역사적 의미
1605년 을사년은 전환기적 성격이 뚜렷한 해였으며,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를 잘 보여줍니다. 화약음모 사건은 종교개혁 이후에도 지속된 유럽의 종교적 갈등을, 『돈키호테』와 『홍길동전』은 동서양에서 동시에 일어난 문학적 혁신을, 크리스마스트리의 등장은 종교적 전통이 세속화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에 나타난 변화 모두 전통과 혁신의 갈등 속에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유럽의 종교개혁은 전통적 신앙과 새로운 교리 사이의 충돌이었고, 문학의 혁신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표현을 시도한 것이었으며, 크리스마스트리는 종교와 세속의 변용이라는 점입니다.
다음 회에서는 1665년의 을사년으로 넘어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발견과 흑사병의 대유행이 가져온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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