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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의 간극, 480년의 기록 - 육십갑자와 을사년의 의미

※연재: 여덟 번의 을사년이 말하는 것 제1회

방랑식객 진지한 승인 2025.01.04 21:51 의견 0

인류는 시간을 이해하고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체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60진법, 마야 문명의 장주기 달력, 이집트의 태양력 등 여러 문명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을 해석하고 기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동아시아의 육십갑자는 가장 정교하고 체계적인 시간 측정 방식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시간관은 순환적 특성을 가집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 계절이 바뀌는 것, 별들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자연의 순환을 기반으로 시간을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역사적 사건들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반복된다고 보는 순환사관으로 이어졌습니다.

■ 육십갑자의 구조와 원리

육십갑자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천간은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의 열 개 글자로, 하늘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지지는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의 열두 글자로, 땅의 기운을 나타냅니다.

역사적으로 육십갑자의 기원은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중국 은나라 시기의 갑골문에서 이미 천간과 지지의 사용이 확인되며, 한나라 때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형태의 육십갑자 체계가 완성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육십갑자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시간 측정을 넘어 음양오행(陰陽五行)과 같은 우주의 운행 원리를 담아낸 철학적 체계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 음양오행으로 보는 을사년

을사년(乙巳年)에서 ‘을’은 천간의 둘째 자리로, 오행으로는 ‘목(木)’, 음양으로는 ‘음(陰)’에 해당합니다. 또, ‘을’이라는 글자는 땅에서 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생명력과 성장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사’는 지지의 여섯 번째로, 화(火)의 음(陰)에 해당하며 뱀을 상징합니다.

이 두 글자 ‘목’과 ‘화’의 관계를 살펴보면 ‘목’은 ‘화’를 살리는 상생(相生) 관계입니다. 나무가 불을 지필 수 있듯이, 을사년은 변화와 전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해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보여지는 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앞으로 살펴볼 여덟 번의 을사년도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 동서양 문화에서의 뱀의 상징성

동아시아 문화에서 뱀은 복합적인 상징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중국의 4대 민간전설 중 하나인 『백사전』에 등장하는 뱀은 지혜와 불멸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졌고, 한국의 민간신앙에서도 집을 지키고 좋은 기운을 불러오는 보호자로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생명의 순환을 이루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존재로, 집의 수호신인 성주신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의 문헌 『동국세시기』에는 뱀을 함부로 해치면 안 된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뱀은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서양 문화에서 뱀의 상징성은 더욱 양면적입니다. 구약성경의 창세기에서 뱀은 인류를 타락시킨 존재로 등장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이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의 형상은 영원과 순환의 상징으로, 동양의 순환적 시간관과 맥을 같이합니다.

■ 여덟 번의 을사년이 가진 역사적 의미

1545년부터 1965년까지 앞으로 살펴볼 여덟 번의 을사년에서 우리나라 또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1545년 벌어진 을사사화와 이순신 장군의 탄생, 1605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출간, 1725년 조선 후기를 중흥시킨 군주 영조의 즉위, 1785년 미국의 달러화 채택, 1845년 산업혁명기의 새로운 발명들, 1905년의 을사늑약,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을사년은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각각의 역사적 사건들이 큰 변화나 위기의 순간이었다는 점에서 을사년이 가진 음양오행적 특성, 즉 ‘목화(木火)’의 상생 관계가 만들어 내는 변화의 기운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이는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동아시아의 전통적 세계관에서는 의미 있는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 회에서는 1545년의 을사년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조선 전기 최대의 정치적 사건인 을사사화와, 같은 해에 태어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통해, 그해에 일어난 비극과 희망의 의미를 되새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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