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의 직원으로 투자자문 콘텐츠를 제작하는 PD이자 아나운서, 그리고 세계 각국의 여행기를 소개하는 1인 크리에이터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이승종 아나운서. 스포츠캐스터 출신으로 알고 있지만 호프집, 고깃집, 학원강사, 바텐더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은 물론, KB 금융그룹행사를 비롯해 대학축제, 결혼식, 동문회 등 각종 행사 진행만 5백 회 이상 경험한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이승종 아나운서와의 진솔한 인터뷰! 지금부터 시작된다.
KB증권 투자자문부 책임 PD 및 아나운서 이승종
알려진 경력에 따르면 대학교 재학 당시 전공으로는 사회학을, 부전공으로 신문방송학을 하며 교내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언제부터 방송/언론 분야의 꿈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사실 방송, 특히 ‘아나운서’의 진로를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교내방송국 아나운서가 되기 전까지는 아나운서는 그저 ‘뉴스앵커’라고 공식화하는 대다수 사람의 인식과 별다를 것 없었다. 경찰 아저씨가 세상에서 가장 쎈 줄 알았던 어린 시절,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경찰 아저씨에게 지시를 내리는 검사 역의 박상원 배우의 모습이 아주 멋있어 보였기에 검사가 로망이었다. 학창시절엔 <가을동화>나 <겨울연가> 같이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작품의 PD가 되면 좋을 것 같았다. 대학입학을 하고 나서는 막연하게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되거나, 드라마나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방송계 입문은 정말 뜬금없었다. ‘오디션 본다는 친구 따라 연예기획사에 같이 갔다가 데뷔한 연예인’과 비슷하다. 연세대에는 교내에 <YBS 방송국>이 있었다.(손범수 아나운서, 전현무 아나운서 등이 거쳐 간 전통 있는 방송국이라는 사실은 훗날에나 알게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야 처음으로 여자친구가 생겼는데 그 친구가 방송국에 아나운서 시험을 보겠다며, 본인은 그것을 목표로 연세대학교에 지원한 것이라 했다. 그런데 교내방송국 활동이 너무 바빠 서로 만나기 힘들 것 같았다. 애초에 나도 PD라는 꿈이 있었기에 ‘그럼 나도 PD로 지원이나 할까?’ 생각하고 <YBS 방송국>에 지원했다. 여자친구와 함께하려면 합격하는게 우선이라 PD는 어떤 시험을 치르는지 문의했는데, ’노래를 듣고 어떤 가수의 어떤 곡인지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정말 암담했다. 나는 노래에 장단 맞추며 흥얼거리기는 좋아하지만, 노래의 제목은 커녕 누가 부르는 곡인지는 전혀 몰랐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1, 2지망을 바꿔 썼다. 1지망 아나운서, 2지망 PD로 변경한 것이다. 1지망을 아나운서로 바꾼 이유는 아버지를 닮은 덕분에 목소리 좋다는 소리를 들었던 자신감 때문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00대 1이 넘었다는 경쟁을 뚫고 합격했고, 아나운서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때 여자친구는 떨어졌다가 뒤늦게 연말 추가모집에 합격해서 잠시 함께하긴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헤어졌기 때문에 그 추억은 길지 않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하고 싶어 선택한 진로는 아니었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일이었고, 지금까지 같은 분야의 길을 걷고 있으니 정말 인생이 게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것 같다.
학과를 선택한 기준을 얘기하자면, 당시 봉준호 감독이 사회학과 선배이기도 했고 지금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PD 선배님들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출신들이 많다. 성적에 맞춰서 지원하라고 했던 담임선생님 추천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웃음)
연세대학교 교내방송국 YBS 아나운서 시절
KB증권의 PD이자 아나운서로 자리를 잡기까지 다양한 직종에서 경력을 쌓았다고 알고 있다. 어떤 과정들이었는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꿈을 가진 친구들에게는 환상을 깨는 것 같아 미안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방송생활을 계속하게 된 건 ‘돈을 좀 더 받는 짭짤한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이었다.
대학생들이 흔히 도전하는 과외 아르바이트가 한 달에 8번 교습을 하고 평균 30만 원을 받는데, 방송출연은 한 번 출연으로도 이와 비슷한 금액을 주었으니 마다할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 그렇게 여기서, 저기서, 연락이 올 때마다 ‘아르바이트 ‘로 방송(특히 오디오 방송) 위주로 참여하게 됐고, 나도 모르게 방송과 가까워지는 삶을 살게 됐던 것 같다.
방송은 스포트라이트가 화려한 만큼, 조명이 꺼지면 어느 곳보다 어둠이 강한 곳이다. 방송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회의감도 많이 들었다. 그런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어차피 내겐 흔한 아르바이트 중 하나였을 뿐이니까. 또한 내 미래의 직업을 결정하기엔 인생은 너무 길다는 생각에 군대 입대 전·후로 경험삼아 다양한 일에 도전했다. 호프집, 고깃집, 서비스업은 물론이고 학원 강사부터 학원장 업무까지... (웃음) 가장 인상깊었던 아르바이트는 바텐더 일이다. 압구정의 주점에서 일했는데, 당시 같이 일했던 형들과는 아직도 연락하고 지낸다.
그렇다고 아무 의미없이 마구잡이로 아르바이트를 하지는 않았다. 바텐더 같은 경우, 가끔씩 집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싶다고 학원에 가서 배우기엔 수업료가 부담스럽지만, 바에서 아르바이트한다면 돈을 받으면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은 유튜브가 활성화되어 금방 찾아 배울 수 있지만, 그 당시엔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이렇게 항상 나만의 효율성을 계산해보면서 직업과 직장을 결정했던 것 같다.
군 제대 후 우연한 기회에 방송을 직접 제작하고 진행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라이브 방송을 통해 청취자들께 들려드릴 수 있다는 건 내게 굉장히 행복한 경험이었다. 군 입대를 하면서 다시는 방송을 하게 될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일이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결심하게 만든 계기가 된 순간이다.
내가 직접 2시간 분량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하기에 압박감이 컸지만, 원래 PD가 꿈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주는 대본을 읽기보다 내가 작성한 대본으로 방송을 한다는 것이 더없이 즐거웠다. 라디오의 특성상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즉각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고, 그러면서 `소통`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진행자들 사이에서는 소위 `뽕 맞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런 즐거움을 알게 되면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진다. 나 역시 생방송 진행과 소통의 매력에 푹 빠졌고, 평소 도전하고 싶었던 스포츠 캐스터 분야에 지원하게 되었다.
2012년 이룬 스포츠캐스터의 꿈
네이버TV에서 핸드볼리그 중계를 시작으로 K리그 중계, 나아가 애초 목표로 삼았던 프로야구 중계도 XTM에서 시작하게 됐다. 목표를 이뤄 행복한 만큼 힘든 경우도 많았고, 말실수로 인해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후회나 미련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기에 지금도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나운서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말이 있는데 "남들이 멋있어 보인다고 평가해서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 일이 너무 재밌다는 감정이 올라올 때 도전하라"는 이야기다. 또한 대중 앞에서 말을 해야하는 직업인 만큼, 어느 정도의 외모나 목소리는 반드시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는 부분과 아닌 부분이 극명하게 나뉜다는 점이다.
아나운서가 되고자 한다면 자신을 객관화해서 ‘나라면 나를 선택할까?’ 냉정한 평가 후에 도전에 임하는 게 당연한 거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선가 잠깐 방송을 경험할 기회는 얻겠지만, 삶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그 한두 번의 경험으로 잃을 내 인생의 기회비용이 크다고 본다면 과감하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 TV에 출연할 기회를 얻는다든지 해서 대중 앞에 서는 길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랜 고민 끝에 아나운서에 도전할 마음먹었다면 노력을 ‘일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아나운서가 되겠다’라고 생각한 뒤 가장 많이 했던 건 아나운서라는 직업 내 일상에 스며들게 하는 훈련이었다. 길거리의 간판들도 다른 시선에서 여러 번 되뇌어보고, 집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있는 주의사항부터 반상회 공지문까지 뉴스 앵커처럼, 스포츠 캐스터처럼 다양한 역할이 되어 낭독하기도 하며 매 순간마다 노력했다.
사설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가서 사람들과 스터디에 참가한 정도로 ‘오늘 무언가 했다’는 성취감에 사로잡히는 건, 고등학교 때 독서실 가서 멍 때리고 나서 공부를 많이 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도 많이들 도전하는 분야가 이 분야다. 누구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애초에 꿈꿨던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노래가사가 본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각종 TV 방송, 영화에 앵커로 출연
현재 KB증권에서 아나운서 외에도 여러 가지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증권회사의 경제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이 어떤 재테크를 하는지도 궁금하다.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즐거운 게 있다면 무엇인지, 거기서 얻는 각각의 의미를 말해준다면?
우선 나는 KB증권에 아나운서로 입사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홍보실 직원으로 입사해서 지금은 엄연한 대리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방송을 하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기에 방송을 접고 새로운 직업을 가져야겠다 생각하고 이직한 곳이 이곳이다. 홍보실 업무를 1년 정도 했을 즈음, 갑자기 사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너 방송하다 왔다며? 방송국 만들어 봐!" 사장님의 그 한마디가 지금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너무 황당했다. 카메라 뒤가 아닌 앞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서 누가 방송이랑 가장 친하겠어?"라 하시는 사장님의 말씀에 "네, 저요."라고 답한 후 고개를 떨구고 사장실을 나왔다. 지금 돌아봐도 정말 황당한 시작이었다. 시작은 미비했지만 언젠가 마주할 끝이 창대하길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기획하고 제작 중이다. (웃음)
KB증권의 홍보실 인턴부터 시작해 그가 걸어온 걸음. 지금 그는 어엿한 대리이다.
시작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제작환경이 열악한 게 제일 힘들다. 장비도 사람도, 방송국에서 일하는 때와는 기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SBS <런닝맨>같은 예능 프로는 스탶만 70명이 된다는데 그런 지상파와는 비교하는 건 그렇다치고, 내가 일했던 스포츠 제작과도 비교해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지원이 부족하다. 현재는 제작을 책임지는 나와 여자 아나운서 한 명, 남자 PD 한 명 이렇게 셋이 모든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입사 전엔 편집을 하기는커녕 편집 프로그램이 뭐가 있는지도 몰랐던 내가 지금은 유튜브 영상 정도는 뚝딱뚝딱 만드는 실력이 되었다. (웃음)
또 다른 힘든 점은 증권가 사람들의 인식이다. 증권사를 떠나 회사라는 조직은 소위 숫자에 익숙한 곳이다. 그런데 금전적 수입의 양산은 고사하고 제작비 지원을 요청하는 분위기 형성이 쉽지 않다. 2015년 처음 이 업무를 시작할 때는 제작, 기획, 출연 모두를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런데도 "굳이 증권사에서 콘텐츠 제작을 왜 하느냐"라는 반문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업무도 아니어서 더 억울하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욱해서 더 열심히 임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20년을 바라보는 현시점에서는 증권사는 물론 모든 금융권이 유튜브 방송을 강조하고 있다. 누구보다 선진업무를 잘못 선택하지도, 잘못 시작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 뿌듯하다.
트렌드와 회사의 정책 역시 나의 발목을 잡는 것 중 하나다. 회사에서 제작한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무조건 광고라고 인식한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도 "너희 또 뭐 팔려고 그러는데?"라는 시선이 깔려있어 긍정적인 호응을 얻기가 힘들다. 가끔 회사 이름을 떼고 같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노출한다면 조회 수가 어떻게 나올까 생각하곤 한다. 회사에서는 상품을 홍보하는 영상 제작을 의뢰 한다. 현재 대중의 트렌드와 상관없이 TV CF 형태의 콘텐츠를 지향하는 게 현실이다. 그 사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다.
이승종은 KB증권의 투자자문부 콘텐츠제작 책임 PD이자 아나운서로서 경제 콘텐츠를 제작은 물론 KB증권이 주관하는 많은 행사를 진행한다.
장점이라면 제작과 진행에 관해서라면 내 돈 안 들이고 얼마든지 시도해볼 수 있다는 거랄까? 내년에는 해외주식을 소재로 한 웹 시트콤을 기획 중이다. 대본 한 편을 만들 때마다 머리가 터지지만, 언젠가 조회 수 대박을 기원하며 열심히 임하고 있다.
어려운 점은 정말 엄청난 경제공부를 해야 한다. 금융상품은 물론 주식에 부동산, 세무까지... 경제 전반의 내용으로 콘텐츠를 구성하고 진행해야 하므로 정말 많이 공부해야 한다. 특히 내 입으로 정답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출연한 전문가의 입을 통해 나오도록 끌어내야 하기에 난이도가 낮아지지 않는다. 출연해주신 전문가가 방송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서당개 생활이 5년이 됐고, 풍월은 아니더라도 낫 놓고 'ㄱ자'는 알게 됐으니 동시에 좋은 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웃음)
금융 콘텐츠를 만드는 나의 재테크는… 보통 사람들이 다 하는 예금, 적금 수준이다. 증권회사 직원이기에 오히려 이런저런 투자를 하는 데도 제약이 있다. 지금은 그냥 맘 편히 '남들 돈 버는 콘텐츠'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은 내가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웃음)
2016년 홍콩 여행
2017년 라오스 여행
2017년 일본 교토 여행
얼마 전에는 멘사 테스트를 보더니 지금은 싱글 음원을 준비하는 엉뚱함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데,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큰 가치관이 있다면 무엇인가? 향후 또 다른 계획이 있다면?
싱글 음원은 버킷리스트 차원에서 시작하게 됐다. 대학 시절 꿈을 나누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방송에 대해, 그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아나운서를, 친구는 작곡가 겸 가수를 하고 있다. 오랜만에 함께한 술자리에서 자연스레 그때 그 시절 이야기가 나왔고 친구는 재능을, 나는 약간의 돈을 들여 음원을 기획하게 됐다. 남들이 들어주기를 바랬다기보단, 내 이름으로 된 음원 하나 정도는 갖고 싶은 마음이랄까? 빛나던 그 시절 '흥얼거리기 좋아하던 청춘'의 버킷리스트라고 해두자.
이런저런 바쁨을 핑계로 계획이 1년 정도 미뤄지긴 했지만, <사실 난말야>라는 제목으로 겨울 감성을 적시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혹시나 궁금하면 멜론에서 들어보시고 '좋아요' 하나 눌러주시면 감사하겠다. (웃음)
인터뷰를 통해 돌아보니 참 많은 과정을 겪었고 열심히 달려온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살아갈 날과 해보지 않은 일이 너무도 많다. 얼마 전 멘사 테스트를 봤던 것 역시 마찬가지다. 머리 좋다는 얘기는 자주 들었지만 ‘진짜 그런가?’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도전했다. 아, 멘사 테스트는 결과 당당히 156 이상으로 합격했다. (웃음) 정말 뜬금 없었지만, 나의 호기심이 그렇다. 아직 결혼도 안 했으니 자유로울 때 궁금하고 재밌을 것 같으면 무조건 할 생각이다. 앞으로의 인생도 궁금한 것이 있다면 알아보고, 재밌는 것이 있다면 직접 해보는 삶을 살고 싶다.(웃음)
개인적으로 여행채널인 <우당탕탕세계여행>이란 유튜브를 운영 중이다. 여행을 좋아해서 만든 채널인데, 올해는 바쁘다는 이유로 여행을 떠나지 못해 한동안 콘텐츠를 제작하지 못했다. 평생의 꿈은 마음이 맞는 동반자와 여유를 갖고 전 세계를 다니며 그동안 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보고 싶다. 그래서 시작한 여행채널인 만큼 앞으로 채워갈 공간들을 상상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문제는 동반자가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유튜브에 함께할 분과 같이 있지 않을까? 여러분도 시간이 난다면 훌쩍 떠나봤으면 좋겠다. 여행은 여행 자체의 즐거움보다 인천공항의 설렘이 그리워지는 법이기에….
우리 삶도 여행의 축소판인 만큼 모두가 두려워하지 말고 여기저기, 그리고 이것저것 도전과 체험을 열심히 하는 오늘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이승종은….]
1984년 10월 24일 출생
대진고등학교-연세대학교 사회학과/신문방송학과(부전공) 졸업
2003년 연세대학교 방송국(YBS) 아나운서
2008년 라디오21/고로의 The Present-현재 그리고 선물 PD 겸 DJ
2009~2010년 비정기 리포터 및 출연
2011년 네이버 스포츠/SK핸드볼코리아리그 중계
2012년 K리그/강원 FC 홈경기 중계
2012년 12월-13년 XTM/야구 중계 캐스터 (베이스볼 워너비)
2014년 스카이스포츠/야구 중계 캐스터 (먼데이나잇 베이스볼)
행사: KB금융그룹 행사, 대학축제, 결혼식, 동문회 등 500회 이상
기타 출연:
• TV: “응답하라 1994”, “도둑놈도둑님”, “레버리지” 등 앵커 및 스포츠캐스터
• 영화: “신과함께_인과연”, “마녀”, “7호실”, “롱리브더킹 목포영웅”,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등 앵커
2014년~現 KB증권 투자자문부 콘텐츠제작 책임 PD 및 아나운서
2016년~現 보틀리 (유튜브 '우당탕탕세계여행' 등 운영) 대표
[유튜브 채널] 우당탕탕세계여행:
www.youtube.com/channel/UC9CHCapZ6tB8qp5y4ooRvIg
사진 제공: 이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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