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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은살아있다(4)] (정읍편) 시기동성당

이정환 기자 승인 2019.03.14 14:31 의견 0

▲ 시기동성당의 외관, 시기동성당은 1903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성당이다. ⓒ 이정환 기자


정읍에는 일제강점기인 1903년에 설립된 시기동성당, 1985년에 세워진 연지동성당 두 개의 성당이 있다.

구도심의 가장 번화가인 정읍 명동의 건너편 골목길 안쪽에 들어선 멋들어진 고딕 풍의 성당이 시기동성당이다.

▲ 시기동성당의 외관, 시기동성당은 1903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성당이다. ⓒ 이정환 기자


시기동성당의 규모로 볼 때 설립 당시의 천주교 교세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민족종교인 보천교의 몰락과 반비례하니 애석하기도 하다.

정읍은 종교가 발달한 지역이다. 천년 고찰 내장사와 백련암이 있고 민족종교인 보천교의 성전이 있던 곳이다.

▲ 시기동성당의 외관, 시기동성당은 1903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성당이다. ⓒ 이정환 기자


보천교는 당시 모악산을 중심으로 발달한 민족종교 중 하나다. 당시 한반도 인구가 1,800만 명으로 추산될 때인데 전국의 보천교 신도수가 600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융성한 종교였다.

보천교 몰락 후 보천교 성전을 해체해 기둥 및 골조는 서울 종로에 위치한 조계사의 뼈대로, 기와는 청와대의 지붕으로 사용됐다.

▲ 시기동성당의 외관, 시기동성당은 1903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성당이다. ⓒ 이정환 기자


교세가 크게 확장된 보천교는 독립운동자금을 많이 댔다. 김구 선생은 생전에 "우리는 보천교에 진 빚이 많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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