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달보다는 손가락만 쳐다보게 하는 '전국동시조합장 선거'
윤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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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4 23:39 | 최종 수정 2019.07.04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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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가 25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선거와 관련한 이슈의 초점이 묘하게 빗나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필자가 초점이 빗나간다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론 스스로 쏟아내는 기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실시간 보도 중심의 스트레이트 기사들이 포털 뉴스사이트의 기사들을 서로 밀어내기 하면서 이번 동시조합장 선거가 갖고 있는 본질적 모순을 밝히는 것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1월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국동시조합장 선거 종합상황실을 설치했다. 이어 ‘조합장선거의 고질적 병폐인 돈선거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사전선거운동 적발에 초점을 맞추면서부터 이런 기현상이 시작되었다.
이는 조중동과 같은 수도권에서 시작하는 중앙지보다는 농협조합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신문들을 선거감시원으로 대거 가세시키는 효과를 불러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공정한 선거, 공명선거에 대한 보도가 주를 이루었지, 이번 동사조합장 선거를 가능케 한 법안과 입법과정, 나아가 농협개혁과 농정에 대한 본질적인 탐사보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또한 취재와 보도의 사각지대도 생겨났다.지난 1월 26일 있었던 ‘좋은농협만들기 정책선거실천 전국운동본부’의 기자회견의 경우, 한겨레나 전업농신문, 오마이뉴스 등 일부 매체에서만 보도가 되었다. 물론 모든 매체는 자체적인 방향에 따라 보도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취재가 선거감시기능에만 집중한 결과, 뭔가 ‘핫(Hot)’한 소재 -이를테면 억대의 금품이 오가는 사전선거운동 같은- 가 될 것 같지 않으면 쳐다보지 않게되는 것이다.이날 ‘좋은농협만들기 정책선거실천 전국운동본부’가 배포한 기자회견문에는 ‘농협조합장 선거 출마자 공약 권고안’이라고 하여 19가지 항목을 조합장 출마자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이번 동시조합장 선거가 지역의 농협개혁의 시작이 되어야 하고 나아가 농협중앙회 개혁에 나설 수 있는 조합장 선거가 되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그런데 이런 시민단체의 활동은 언론을 통해 조명되지 않고 있다.심지어 필자 또한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아차!' 했으니,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이 정도로 전국동시조합장 선거를 취재하는 매체들은 자기도 모르게 ‘달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을 보고 있으면서도 달에 대한 취재는 않고 손가락의 모습만 보도하게 된다는 소리다.
물론, 농협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금품을 살포하는 사전선거운동을 적발하고 보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누가 조합장 선거에 나오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만 치우쳐 성공적인 보도는 가능할지 몰라도 농협과 농업정책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언론이 기여하지 못하게 된다.이번 전국동시조합장선거의 문제점은 지난 2014년 5월에 제정된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이 갖고 있는 한계와 관련있다. 그런데이 법률에 따르면 전국동시조합장 선거는 뭔가 앞뒤가 안맞는 구석이 많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고한 선거 일정을 보면, 선거일 19일 전에야 선거인명부가 작성되고, 선거 15일 전에야 후보자등록이 가능하다. 선거인과 후보자는 13일간의 선거운동을 통해서 선거를 치러야 한다. 후보자 외에는 선거운동이 제한되어 있고 선거운동방법도 벽보, 명함전달, 문자메시지 전송 등의 소극적 방법에 그친다. 도대체 이런 상황 속에서 제대로 된 선거운동과 조합원들의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하단 말인가선관위와 농협에서는 금품과 향응을 통한 사전선거운동에 대한 우려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제도는 불법을 조장하게 만들 뿐이다. 합리적인 제도 하에서 적법하게 돈 안드는 선거를 치러야 하지만, 제도가 이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선거일이 다가올 수록 언론도 선거감시를 위해 동분서주하게 되는 것이다.그러다보니 필자의 경우엔 자꾸 의혹을 품게 된다. “뭔가 이렇게 돌아가도록 짜여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동시조합장 선거는 설 연휴를 지나며 본격화될 것이다. 설 연휴기간 내내 명절인사를 빙자해 금품과 향응이 제공되는 사전선거운동이 격화될지도 모른다. 많은 언론사와 기자들은 열심히 그것을 쫓아다니느라 연휴를 반납할 지도 모르겠다.이제라도 달을 좀 쳐다봐주었으면 좋겠는데... 풀뿌리 매체들 모두가 달을 쳐다봐주면 전면적인 개혁이 일어날 것 같은데... 누군가는 그것이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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