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소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름을 제외한 모든 기억을 잃은 채 '박스'라는 이름의 기구로 이송돼 거대한 미로 안에 버려집니다. 자신들을 누가 여기로 보냈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 미로의 정체가 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소년들. 이들은 미로를 통과해 바깥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꿈을 꾸지만, 문제의 미로는 대단히 복잡하고 스스로 구조를 바꾸는 재주까지 지녔습니다. 게다가 밤이면 거미의 생김새를 한 살인 로봇 '그리버'가 등장해 소년들의 목숨을 노립니다.
결국 소년들은 함께 미로에 뛰어드는 대신 그들 중 신체 조건이 뛰어나고 용감한 이들을 선발해 '러너'라 이름 짓고 그들로 하여금 미로 안쪽을 탐색하게 합니다. 그리고 '러너'로 선발되지 못한 평범한 소년들은 '글레이드'라 이름 붙여진 미로 앞 공터를 생활 터전으로 삼아 그곳에 농사를 짓고, 나름의 법을 만들어 원시 부족의 형태로 일상을 이어갑니다.
그러던 그들 앞에 박스를 타고 토마스란 이름의 신참이 등장합니다. 어딘지 남 달라보이는 그의 등장과 함께, 혼돈 속에서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던 그들의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미로 안쪽, 그것도 밤에만 출몰하던 그리버가 대낮에 글레이드로 튀어나와 소년들을 공격하는가 하면, 소년들만 가득했던 글레이드에 박스를 타고 여자 신참이 들어오는 일도 생깁니다. 소년들에게 생필 물자를 전달하던 미지의 손길도 갑자기 끊기고요. 결정적으로, 토마스가 러너 자격 없이 미로에 뛰어들어 그리버를 사냥하는 데 성공하는 일이 생깁니다. 이 일로 인해 처음으로 그리버를 잡은 토마스를 '러너'로 추켜세울 것인가, 법을 깨고 자격 없이 미로로 뛰어든 그를 벌할 것인가를 두고 소년들간에 정치적 갈등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그리버'의 공격을 받은 몇몇 소년들이 잃었던 기억을 되찾는 일이 생깁니다.
사실 새로울 건 하나 없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버려져 사람 죽이는 미로를 탈출한다'는 설정은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1997년작 <큐브>를 비롯해 이미 수많은 작품에서 활용된 것이고, 제약 회사의 음모론 역시 <바이오하자드>시리즈로 이미 익숙해져버린 소재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의 출연과, 미로가 스스로 그 형태를 바꾼다는 설정 같은 것도 김윤진 씨가 출연했던 <로스트>류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여러번 보았음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르 영화에서 소재의 익숙함은 때로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큐브>와 <바이오하자드>, <로스트> 등의 작품에 이끌렸던 이들을 극장으로 초대하는 상업적 효과도 있겠고, 이미 검증받은 소재인 만큼 잘만 재조립하면 그럴싸한 기성품 영화로 완성될 수 있지요. 이런 면에서 영화 <메이즈 러너>는 자기 할 도리는 하는 영화입니다. 실제로 장르 팬들의 영화에 대한 반응은 상당히 좋은 편이더군요. '재밌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는 상황이죠. 저 역시 두 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영화 <메이즈러너>가 지금의 완성본보다 훨씬 더 풍성한 영화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좀 더 주목합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밤이면 괴수가 튀어나오는 미로에 갇힌' 소년들의 상황은 우리의 인생과 많이 닮았습니다. 이 점을 보다 심도있게 다뤘다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가 됐을 겁니다. 미로 안을 뚫고 나갈것인가, 글레이드에서의 일상에 안주할것인가에 대한 소년들의 토론은 정치적 진보와 보수의 대결을 닮아있죠. 이 점을 좀 더 살렸더라면 인간의 본성과 정치에 대한 깊은 토론도 가능했을 거고요.
제약회사 음모로 미로에 버려진 소년들에게, 그들을 미로에 버린 제약회사에서 직접 보내진 '토마스'와 '트리사'는 상징적인 부모로 그려질 수 있었습니다. 이 설정을 좀 더 파고들었다면 영화를 임상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가능했겠죠. 모든 기억을 다 잃고도 자신의 '이름'만큼은 기억해내는 소년들의 모습 역시 좀 더 깊게 팠다면 아주 그럴듯한 철학적 서사가 나올 수 있었을거고요.
안타깝게도, 현재의 완성본은 '콘크리트 미로를 달리는 소년들'이 벌이는 액션 이상의 것엔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가능성들이 그저 가능성에 머무르고 말았죠. 딱 두 시간만 즐거운 지금의 모양새가 못내 아쉬운 이유입니다.
제약회사의 음모와 미로 안에서의 액션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점도 아쉽습니다. 소년들을 실험용으로 사지에 내다 버린 제약회사 사람들은 영화의 악역이지만, 입체성이 전혀 없는 악역이다보니 왠지 종잇장처럼 보입니다. 미로라는 소재가 가진 다양한 액션의 가능성도 충분히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소년들이 미로의 구조와 움직임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버리니 긴장감이 느껴질 수가 없죠. 명색이 미로인데, 주인공들이 그 안을 헤매는 장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미로찾기 게임을 기대한 관객들은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겠더군요.
결국 기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영화 <메이즈 러너>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풍성한 비평적 읽을거리와 장르 팬에 대한 팬 서비스를 기대한 저는 다소 아쉬운 마음으로 상영관을 나섰습니다만, 두 시간짜리 롤러코스터를 기대하고 상영관을 찾은 관객들은 본전은 찾아갈 수 있는, 그런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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