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파크] 내 피부색은 꿀색,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어요?
강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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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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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부색깔=꿀색>은 벨기에로 입양된 한국전쟁 고아 소년이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자신의 지난 날을 회고하는 이야기입니다. 정(Jung)씨 성의 소년은 입양 부모의 실수로 '융'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양부모와 같은 피의 다른 형제들과 때론 웃고 때론 싸우며 한 뼘 한 뼘 성장합니다.
주인공이 '전쟁 고아'이다보니 전쟁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이나 입양아들의 불안 같은 것들이 세세히 묘사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따스합니다. 입양 서류에 입양 아동의 피부색을 흑, 백, 황으로 적지 않고 '꿀색'이라고 적어준 그 누군가를 상상할 때의, 바로 그 정서에요. 보고 있으면 '엄마 품'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릅니다.
흥미로운 건, 따사로운 묘사 가운데서도 날선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영화의 태도입니다. 소년을 입양한 부모는 소년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종종 그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사용합니다. 소년이 나고 태어난 나라 한국은 길바닥에 버려진 아이에게 손을 뻗어주는 나라지만, 그렇게 구조 된 아이를 가혹하게 대하는 나라이기도 하죠. 심지어 주인공 역시 사랑스러운 구석도 있지만 '가슴 따뜻한 영화의 주인공'역할을 하기엔 은근히 야비한 구석이 있어요. 마치 매운탕의 뜨끈한 생선살을 알싸한 고추냉이에 찍어먹는 느낌이랄까요. 따스하지만 종종 날카로운 영화의 태도는 인간극장 식의 뻔한 입양아 스토리를 생각하고 상영관을 찾은 관객에게 의외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렇게 현실을 '억지로 포장하는 과정 없이 따스함이라는 정서를 유지해낸 것은 기술적인 성과라기보다 이 영화를 연출하고 주연한 감독의 인생 내공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우리 인생은,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것들은 이율배반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의 온갖 모순을 고스란히 직시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숙한 인간의 위대함이겠죠. 감독은 자신과 양부모의 흠결을 묘사하지만, 그것이 결말에 묘사된 이들의 '사랑의 완전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용하지만 파동이 큰 영화의 결말이 이를 증명합니다.
'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로 시작되는 잔잔한 영화 한 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따스하지만 알싸한 '인생 이야기', 함께 나누어보시는 것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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