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공주>의 주인공은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 여고생입니다.제목은 그 주인공의 이름이고요. 요란함이 없는 각본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조용한 제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통스런 이야기입니다.피해자인 공주가 이사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마지막 장면까지 그녀를 성폭행 피해자가 한국 사회에서 겪음직한 온갖 풍파 안에 가둬버립니다. 피해자의 책임이 진지하게 논의되고,가해자 학부모가 전학간 피해 학생의 교실에 난입하고,어떻게든 사건을 '좋게 좋게' 끝내려는 공권력이 등장하고,뭐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러나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단 데서부터 짐작이 가능하듯,영화가 사회적 부조리보다 좀 더 주목하는 것은 개인의 내면입니다. 지옥같은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고통 가운데서도 자신의 아픈 곳을 스스로 핥는 한공주의 마음결 말이에요. 그는 헤어나올 수 없는 비극에 두려워하고 아파하지만,이에 나름의 방식으로 맞서고 종종 다른 이들로부터 위안을 얻으며 그렇게 주어진 삶을 버텨냅니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읽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고통스런 외부 환경의 치밀한 묘사와 그에 대한 주인공 개인의 미세한 감정을 잘 잡아낸 각본에 주목한다면,그것은 이 영화를 보는 '영화학적인 방법'이 될 것입니다.주인공이 겪는 온갖 부조리에 주목,영화 <도가니>의 감상법으로 장면마다 공분해가며 작품을 보는 방법도 있겠죠.그건 '사회학적인 감상법' 정도가 되겠네요.섹스와 성폭행,성 권력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데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여성주의적 접근'이나 '정신분석학적 접근'도 가능할겁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불필요한 주석이나 날선 분석 대신 공주가 일련의 사건들 속에 만나게 되는 영화 속의 '사람'들을 짚어보려 합니다.이는 한공주라는 인물에 주목해 줄 것을 주문하는 작품의 태도에 가장 적확한 감상법이자, 영화가 의도한 감동을 가장 깊이 느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먼저,공주의심리적 어머니인,'선생님어머니'부터 한 번 만나볼까요.
"사고친 거 아니지"... 학교 선생님 어머니의 말 한마디
<한공주>엔 수많은 '엄마'와 '아빠'가 등장합니다.물론 공주의 생물학적 부모야 한 쌍이겠지만,그녀가 만나게 되는 긍정적·부정적 의미의 심리적 부모는 셀 수 없이 많아요.그 중 대표적인 '좋은 어머니'가 바로 '선생님 어머니'입니다.그는 사건 이후 무작정 이사를 나온 공주를 거두어 ,공주가 다니던 학교 선생님의 어머니로,공주에게 먹고 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그녀의 마음을 보듬는 역할을 합니다.
공주와 '선생님 어머니'의 관계가 처음부터 살가웠던 것은 아닙니다.자기 반 학생을 굳이 자기 집에 데려다 재우겠다는 선생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무슨 사고를 낸 학생이냐며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해버리죠.간신히 설득해 집까지 들여놨더니,공주의 배를 만지며 '사고친 거 아니지'라 묻습니다.(이 장면에서 공주의 모성은 모욕됩니다.) '선생님 어머니'는 대답을 망설이는 공주를 가만히 보다가, '딱 일주일만 재워주겠다'며 돌아서버립니다. 이는 '내게서 모성을 기대하지 말라'는 하나의 선언이죠. 그러나 아주 우연한 기회에 공주는 '선생님 어머니'의 딸로 불릴 기회를 얻게 되고,그때부터 이 둘은 심리적 모녀 관계가 됩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공주이지만,'선생님 어머니'에게 만큼은 깍듯합니다.이는 '나를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본능적인 인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흥미로운 것은,이 심리적 모녀는 모와 녀의 관계이나 동시에 모-모(母-母)의 관계, 즉 서로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관계이기도하다는것입니다.극의중반,'선생님어머니'는사기꾼으로 몰려 동네에서 옷이 늘어나 젖가슴이 다 드러나도록 주민들에게 두들겨 맞습니다.이 때 공주는 문을 잠그고 들어가 우는 선생님 어머니의 방문을 두드립니다.그리곤 말하죠."저 (어머니 방으로) 들어갈게요." 이 때 공주는 울고 있는 딸의 방에 들어가 딸을 위로하는 어진 어머니이자,동시에 심리적 어머니의 자궁 (어머니의 방) 안에 들어서는 딸이 됩니다.
그러나 동네 주민들에게 수난을 당한 선생님 어머니가 공주를 통해 위안을 얻는 반면, 공주는 극의 후반부, 가해자의 학부모들이 교실에 난입하는 장면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합니다.결국 그가 향하는 곳은,한강의 난간입니다.하지만 영화는 기어이 투신을 하고 만 공주가 강 물살을 이겨내고 살아 나왔을 가능성을 열어둡니다.이 때 강물은 사람을 죽이는 물이 아닌,죽음을 각오한 사람에게 삶의 본능을 다시일깨워줄 양수가 됩니다.
"나도 여섯살때까진 공주였어"
공주에겐 또 다른 만남이 있죠.바로 사건 이후 전학간 학교에서의 친구들입니다.다행히도,새로운 학교의 학생들은 도를 넘도록 방어적인 공주를 있는 그대로 포용해줍니다.그 중에서도 그녀를 가장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끌어안는 인물이 있죠.바로 '은희'입니다.
은희는 '나도 여섯살때까진 이름이 공주였다가 개명했다'는 이야길 합니다.즉, 은희는 공주의 모든 것을 바꾸어버린 '그 사건' 이전의 '공주'인셈이죠,주인공 공주는 트라우마로 인해 은희에게 종종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지만, 은희는 꿋꿋이 그녀의 곁을 지켜줍니다.
물론 자초지종을 모르는 친구들의 도움엔 한계가 있습니다.공주는 친구들 덕에 잠시 웃기도 하고 신나서 떠들기도 하지만,잠시일 뿐 공주의 일상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성폭행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과 2차 성폭행으로 다시 얼룩지죠.그러나 이 반복적인 비극의 굴레 안에서,생존하고자 하는 공주의 투쟁과 의지는 더욱 강렬해집니다.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준비를 늘 갖추고 살아가는 그녀의 일상은 누구라도 공감 어린 응원을 보낼 만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은희의 존재 자체가 이 작품의 작가가 공주에게 보내는 응원일 수도 있습니다.은희는 무슨 무례를 범하든 공주를 따르고,공주에게 '물을 두려워하지 말고 달래라'는 조언을 해주고,공주의 아픔에 공주보다 아파하고,아무 이유 없이 공주에게 잘 해주는,공주에게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죠.은희는 공주가 비록 암호의 형태이긴 하나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은근히 알리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합니다.공주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져야 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네, 공주는 공주 자신의 은희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영화 <한공주>의 작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선생님... 저 이제 어떻게 해요 무서워요"
영화에 직접 등장하진 않으나,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바로,작품의 관객인 ‘당신'입니다.영화의 마지막,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후 한강에 투신하는 공주.그러나 이내 물 위로 다시 떠오르고,그녀는 본능적으로 그동안 배운 수영 동작을 상기해 호흡을 하기 시작합니다.차고 강한 물살,그 위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절대 혼돈의 상황에서 '호흡법'과 '수영법'이라는 배운 지식을 상기하는 이성을 발휘해야 하는 애달픔.<한공주>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네 인생 그 자체입니다.
공주는 언론에 자신의 상황이 마구잡이로 보도되고 성폭행 동영상마저 나돌기 시작하자,심리적 엄마였던 '선생님 어머니'의 집에서마저 나와 찜질방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오갈 데가 없어진 공주는 선생님께 전화를 합니다.그리곤 말하죠.
"무서워요.이제 어떻게 해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 뿐,이내 전화는 끊어집니다.
이렇게 공주를 도왔던 이들과 심리적,또는 물리적으로 완전히 단절되고 한공주 자신만이 남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적극적이고 직설적으로 관객의 개입을 유도합니다.공주가 뛰어내린 그 자리에는 선생님도 선생님 어머니도 은희도 없습니다. 관객만이 남아있죠. 이는 차가운 한강 물에 몸을 던진 공주에게 손을 내밀어줄 것을 요구하는 감독의 외침입니다.
어떻습니까.여러분은,공주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 가까운 곳의 소수자에게, 나아가 자기 자신의 인생에,은희와 같은 존재가 되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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