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층을 활용하자(2)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136)
조연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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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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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에는(현재도 마찬가지다) 노인의 정의도 새로워야 한다. 과거 예순이라는 나이는 이순(耳順)이라 했고, 오래 살았음을 축하하기 위해서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열었다. 그러나 요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육십이라는 나이는 노인 축에 들지 못한다. 노약자를 배려해서 마련된 좌석에 앉아있는 노인들의 연세는 대충 추측해 봐도 일흔을 훨씬 넘어 보인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 타는 라이더를 봐도 육십은 훨씬 넘긴 어르신들이다. 나이를 무색하게 가볍게 ‘라이딩’을 즐기신다. 나이로 따지면, 노령층이지만 신체적 나이는 노인이 아니다. 젊은 시절, 자산관리를 잘해서 은퇴 이후 노후 대책이 잘 마련된 노령층이라면 문제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노인들은 생활고가 심각한 수준이다(서울 종로 일대를 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허드렛일조차 구하기 힘들다. 일용직 노동자도 만 65세가 넘으면 고용될 수 없고, 편의점 등 간단한 아르바이트들도 청년들을 우대하기 마련이다. 심신이 모두 건강해도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생산 근로로 참여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노인의 지혜와 가르침을 귀하게 여겼었지만, 현대는 새로운 기술 발달을 따라가지 못하는 노인은 대우 받기 힘들다. 오히려 후세대들과 세대 차이만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기기를 잘 다루지만,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청년들과 새로운 기기의 기본적인 프로그램도 다루지 못하는 세대 차이는 디지털 격차뿐만 아니라, 사고방식도 더 다르게 만들었다. 사회는 세대를 구분하고 그 차이를 인정한다. 단순히 세대 간 갈등을 막고자 한 미봉책이었기에 현재는 새로운 차별로 전개되는 상황이다.
이제 노인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젊은 시절 성실히 일한 결과물을 무덤에 안치될 때까지 여유 있게 사용하면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노인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노인들도 꾸준히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에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가 많이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다. 민간 부분에서 일자리 창출이 없으면 실질적인 해결방법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교회가 나서야 한다.
교회의 연령분포는 앞에서 지적했다. 사회의 고령화와 비교했을 때 더 심각한 고령화 수준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연령층 역시 고령층이다. 교회 출석률도 높고, 은퇴한 성도들이라 하더라도 헌금 생활을 꾸준히 한다. 하지만,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성도는 제한적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교회는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하는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들에게도 헌금을 받는다. 강제적인 것도 아니고 헌금액이 크지 않더라도 불신자들이 볼 때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노인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현재 교회의 모습은 구태의연(舊態依然) 하다.
위에서 공유경제로 발생한 수익을 기본소득으로 돌려주자는 주장을 했다. 노인들이 1순위 대상이어야 한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수준 이상으로 교회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 경제활동에 노인 성도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 뒤에서도 다루겠지만, 기본적인 디지털 교육으로 디지털 격차도 줄이고, 활동이 어렵지 않은 성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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