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시절과 달리, 이때부터는 일기쓰기가 의무가 되지 않습니다. 사생대회도 있고, 독후감을 쓸 때도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잘 쓴 글에 표창장을 주면서 격려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글쓰기 활동이 형식적인 행위가 됩니다.
중학교 때부터 입시 전쟁을 치러야 하는 학생들에게 글쓰기는 사치입니다. 미래 직업란에 ‘작가’라고 적은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작가가 계속 배출되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런 중·고등학생들의 분위기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글쓰기가 있습니다. 바로 ‘논술’입니다. 논술은 평가를 위한 글입니다. 논술 평가는 입시 당락을 결정하기도 해서 그 긴장감은 교내 사생대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어도 글쓰기에는 평가가 뒤따랐습니다. 점점 글쓰기는 엘리트 일부 학생들의 전유물이 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의무적으로 써야 했던 일기도 사라지고 나니, 글 쓸 기회는 더 줄어들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주로 의사소통을 하는 청소년들은 꾸준히 글쓰기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글쓰기는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기껏해야 몇 줄입니다.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혹은 상상력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수준의 글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축약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응’ 대신에 ‘ㅇㅇ’이라고 하는 걸 비롯해서 줄임말 ‘신조어’가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생활어로써 줄임말을 나쁘다고 말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시각을 바꿔 ‘종합사고능력’이라는 관점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한 글쓰기를 이해한다면, 적절하지 못합니다. 물론, 글쓰기 대신 청소년들의 다른 능력이 발달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복잡한 게임을 통한 ‘전략적 사고’, ‘쌍방소통’, ‘온라인 공동체 조성’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분명히 온라인 영역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그 대신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이 줄어들었습니다.
◇‘왜 글을 써야 할까?’ 고민은 계속 이어진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중·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칭찬’, ‘포상’, ‘우열’을 위해 글을 썼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글쓰기를 시작할 때부터 ‘경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글쓰기의 기간 또한 각자 달랐습니다. 받아쓰기 경쟁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에게는 글쓰기 훈련의 기간이 조금 더 연장됐습니다. 일기 상을 받고, 독후감 상을 받은 학생들 역시 글쓰기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가에서 ‘열’을 처방받은 학생들은 그 순간부터 “나는 글쓰기와 상관없어!”라고 선언하며, 포기하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과거 저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숙제로 하는 일기조차 친구 것을 그대로 베끼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일단, 정해진 분량만 채우면 벌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글을 써야 할까?’라는 고민은 글을 더 잘 쓰기 위한 발전적 고민이 아니라, ‘글쓰기 포기’를 위한 생각이었습니다. 글에 대한 고민이 ‘좋은 글’에 있지 않고, ‘글쓰기 포기’를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 학원, 가정에서는 글쓰기를 강조합니다. 이는 쌀을 주지 않고서 밥을 해먹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후의 글쓰기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사정은 변하지 않습니다. 좋은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그 목적은 지적탐구 욕구 때문이 아니라 A+학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보고서를 완성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무시하자는 건 아닙니다. 팀이 함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 보고서 작성보다 더 중요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보고서를 읽고, 작성하게 될 텐데, 모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함입니다. 그나마 학창 시절은 잘 쓰면 상을 주고, 못써도 쓰기만 하면 봐주기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다른 사람이 나의 상황을 이해해주거나 그 반대 상황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사회의 경쟁은 그야말로 약육강식(弱肉强食) 동물의 왕국 같습니다. 정말로 먹고 살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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