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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60주년(6)]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혁명 (上)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0.05.16 18:05 의견 0

◇민주주의와 혁명의 동행(同行)

한국의 근현대 정치사의 핵심어 두 가지를 꼽는다면, ‘민주주의’와 ‘혁명’이 아닐까? 민주주의는 핵(탄두)이며, 혁명은 미사일(운반체)이었다. 즉, 민주주의를 위해 혁명이 도구적으로 사용됐다. 가히, 대한민국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의 시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20년은 “4·19 혁명(이하 ‘4·19’)” 60주년이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하 ‘5·18’)” 4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아울러 “6·25전쟁(이하 ‘6·25’)” 70주년인 해이기도 하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모두 민주주의와 관계있다. 앞선 두 사건은 당시에는 ‘혁명’이라 불렸던 사건이며, ‘6·25’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세계적 대결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의 시각에서 ‘6·25’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렇다면 왜 민주주의를 그토록 수호하고 실현하고자 했을까? 그리고 과거 혁명으로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와 현재 말하는 민주주의는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는 발전, 진화, 진보한다. 한국 정치도 역사적으로 훑어보면 발전했고, 진화했다. 물론, 관점에 따라 지금 이 시대가 더 힘겹고 오히려 과거가 유토피아처럼 느껴지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팩트만 놓고 본다면 민주주의는 발전했고 국민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거리에 설치된 현수막 중에는(특히 선거 기간에) “문재인 좌파 독재”라는 표현이 버젓하게 적혀 휘날리고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고초를 당할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국가 지도자를 비판해도 인생이 좌우될 만큼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

다양성 보장 측면에서 하나의 예를 추가하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이 종결되지 않은 가운데 조국 전 장관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무리도 있다. 그들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조금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하지만, 다양성 존중 차원에서 그들의 집회와 결사와 주장은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여전히 갑론을박하며 시끄럽게 토론하는 상황이다.

좌우를 구분할 줄 모르고 보수와 진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공산주의화를 걱정하며, 팩트와 상관없이 감정적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무리가 존재한다. 최근에 지나다가 들었던 거리 확성기의 구호 중 ‘연방제 적화통일’이라는 표현을 함부로 사용하는 무지함도 있었다. 과거에 이런 상황을 방치한 권력자가 있었던가?

세상이 카오스(chaos) 같다. 이런 세상이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운영되고 있다. 천박해 보이기도 하고, 누구 말처럼 ‘가소로운 자들’의 다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이 땅에 정착했고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모양이다. 현 수준에서 더 발전해야겠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정(正)과 반(反)의 시소게임 끝에 나오는 합(合)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실제로 한국 민주주의 점수는 제법 괜찮은 편이다. ‘더이코노미스트 산하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세계 민주주의 지수 순위를 보면, 대한민국은 전체 23위(참고로 최하위는 북한이다)로 당당하게 상위권을 차지한다. 총점이 8.00점 이상이면 완전한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조금 못 미치는 7.99점을 받았다. 일본과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순위가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좋은 성적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민주주의 자체만큼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상전벽해(桑田碧海) 했다고 할 만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독재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하며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모순을 저지른다. 그러나 이런 모순은 비판 거리가 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외침이 있어야 우리의 민주주의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라는 깔때기

대한민국 정치사의 의미 있는 발자취 끝에는 항상 ‘민주주의’가 존재한다. 우리 근현대 정치사를 물병이라고 할 때, 민주주의라는 깔때기를 꼽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수입된 이후 모든 정치 세력은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었다. 혹, 민주주의가 유린당하고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하더라도 민주주의를 향하고 있어야 했다. 국내 쿠데타 세력도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척해야 했으며, 절차적으로나마 민주주의 선거로 정당성을 얻고자 노력했다.

이 깔때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졌는데,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 기준이 더 엄격해 진 것이다. 민주주의의 진화, 진보,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변동과 발전은 정치학적으로 보면 당연하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Alan Dahl, 1915~2014년)의 저서 <민주주의>에서는 민주주의 자체를 정태적으로 보지 않고 동태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해서 현대 민주주의까지 역사적으로 훑으면서 수천 년에 걸친 발전의 경로로 이해한다. 또한, 국내 정치학자 한흥수 교수도 <한국 정치 동태론>에서 한국 정치의 발전을 동태적으로 이해하면서 전체적으로 볼 때 변증법적인 발전의 경로였다고 설명한다.

발전할수록 그 기준의 문턱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문재인 좌파 독재”란 말을 꺼낼 수 있는 민주주의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민주주의가 필요했을까?

조선은 왕조였다. 후에 대한제국(1897~1910년)으로 개칭했지만 통치자 1인이 지배하는 군주제였다. 그러다 주권을 빼앗겨 식민치하에 들어섰고, 독립을 위해 결성한 국내 지도자들은 군주제 자체를 선호하지 않았다.

이미 서구에서는 자유, 평등, 민주주의, 공산주의 등 다양한 사상이 등장해 전파되고 있었고, 그러한 이념의 파고는 아시아까지 건너온 상황이었다. 이런 사상의 포화 속에서 망국의 지도자들 역시 사상의 바닷 속에 몸을 담그고 그 파도로 전신을 세례 받은 상태였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군주제를 선호할 이유가 없었고 특히 부정부패, 무능력함으로 멸망한 조선 왕조의 후계자를 왕으로 옹립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당시 서구에서 유행하던 민주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건립된 국가를 상상했던 것이다.

관련한 예로 도산 안창호 선생은 새해 인사에서 “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왕”이라고 하면서 민주주의의 주인은 국민임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녕 대군의 후손이라 알려진 이승만을 임시정부의 초대 수장으로 선출한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인가? 그는 몰락한 왕족의 후손이었고, 과거시험에 10번 이상 응시해 낙방한 전력이 있다. 그가 만약 과거에 급제해서 관직의 길로 나갔다면 우리가 아는 이승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 발전 : 동태적 의미에서의 발전

앞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동태적’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후퇴할 수 있음도 내포한다. 다시 말해서, 무조건 발전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데, 민주주의 제도를 먼저 받아들이고 정착한 선진국들도 경우에 따라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민주주의 지수만 놓고 볼 때, 미국과 프랑스가 우리나라 뒤에 위치하며, 아시아에서 가장 선두권에 있었던 일본도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 아래에 있다.

그러나 긴 시공간 변증법적인 발전의 경로를 따르면 정과 반의 합은 앞으로 나아가는 결과로 나타난다. 현재의 민주주의를 제1공화국과 비교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국내에서의 혼탁한 양상과는 달리 세계적인 수준에 있다. 이런 결과는 하루아침에 이뤄낸 것이 아니다. 시련이 있었고, 중단이 있었고 때로는 유린당해야 했다. 제아무리 선구자적 능력을 지닌 민족 지도자들이 모였지만 그들 안에서도 권력 투쟁이 있었고, 독재 아닌 독재도 있었다. 국가를 잃은 임시정부였기에 국외적으로 정통성을 인정받기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생존에만 집착했기에 민주주의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도 민주주의 실험은 계속됐다. 임시정부 시기 여섯 번이나 헌법을 개정했다는 게 그 증거다. 혹자는 헌법을 계속 개정했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시행된 기간을 따져본다면, 그리고 민주주의 자체가 동양적 관념이 아니고 서양의 것을 받아들인 것이라 본다면, 적응을 위한 여러 차례 변화가 오히려 당연한 게 아닐까?

임시정부 기간 여러 차례의 연습을 거쳐 해방 후 여러 정치적 역학 구조 속에서 마침내 헌법이 제정된다. 그리고 이후에도 총 아홉 차례 개정된다. 민주주의의 발전 양상이긴 하지만, 제3공화국 시절부터 유신, 이어서 신군부까지 이어지는 헌법 개정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였다. 이후 ‘민주주의의 봄’이 도래하고 민주주의의 옷을 다시 어색하나마 걸치기 시작한다.

김영삼이 이끌었던 ‘문민정부’도 삼당통합으로 인해 독재라는 공격을 받았고, 최초의 정권 교체에 성공한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도 독재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후 잠시 소강기가 있었으나 다시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부터 독재, 헌정질서 유린 등의 표현이 등장하더니, 급기야 탄핵으로 대통령이 물러나는 헌정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장미 대선으로 당선된 현재 정권은 독재와 적폐를 척결하는 임무를 속행하는 가운데 ‘좌파 독재’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얻고 있다.

위의 과정을 보면 민주주의 정착 과정에 부침도 있고, 역행도 있었으나 현재 결과만 본다면 발전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포착할 수 있는 사실은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발전하는 한 ‘독재’라는 표현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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