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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알자] 일본 정치와 ‘기억의 계승(記憶の継承)’(1)

정회주 일본지역연구자 승인 2020.08.31 09:00 | 최종 수정 2020.10.01 02:41 의견 0

해마다 8월 15일, 즉 종전기념일이 되면 아베총리와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주목을 받는다. 올해는 차기 총리 후보인 ‘고미즈미 신지로’ 환경대신 등 총 5명의 현직 각료가 언론의 주목 속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참배 후 이들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에게 감사”, “부전(不戰)을 다짐”, “평화를 기원”, “중국과 한국 등은 외교 문제화해서는 안된다.”는 등 국내 유권자들을 향한 선전용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 아베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는 공물만 보내고, 직선거리 560m 이격된 무명용사 묘역인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千鳥ヶ淵戦没者墓苑)’을 참배했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깊은 실망과 우려를 표한다.”면서,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역사를 올바로 직시하며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보면 한일 양국은 매년 같은 행동을 반복해 이제는 일상화되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세진구’ 참배중인 아베총리(세코 의원 트위터)

왜 이런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일본 측의 입장을 살펴보자. 첫째, 민속학적 시점에서 일본 정부가 전국에 초혼사(招魂社)를 두고 동경에는 야스쿠니 신사(도쿄 초혼사)를 둔 속내는 전장에서 한꺼번에 죽은 젊은이들의 영혼이 ‘무연고 영혼(無縁ぼとけ)’화 되어 원혼(冤魂)으로 남아 사회 불만 요인이 되도록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들이 각자의 집 근처 산에서 머물다가 33년 혹은 50년이 되면 ‘도무라이아게(弔い上げ)’를 거쳐 ‘개성을 상실한 조상의 영혼집합체(조령:祖霊)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봄에는 ’논의 신(田の神)‘이 되고, 가을에 수확이 끝나면 ’산의 신(山の神)이 된다(야나기타 구니오, ‘선조의 이야기’). 그래서 명치유신 이후에는 국가가 전사자의 원혼을 관리했다. 국가신도에 의해 일왕과 국민은 가족관계이기 때문에 일왕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가 국민들에게도 조상신이 되며, 성전(聖戦)에 종사하다 전사하면 신이 된다는 개념이다. 그러면 전사자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대가 끊기거나 이름 없는 평민 집안으로부터 갑자기 ‘신’이 된 전사자 집안이 되는 것이다. 즉, 일본에서는 정치목적으로 전사자들의 원혼을 ‘신(神)’으로 만들고, 이들을 기리게 된 것이다.  

둘째, 일본의 책임 있는 정치인들은 ‘패전의 깊은 반성(敗戦の深い反省)’이란 말을 녹음기처럼 반복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전후 청산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전범사면을 위한 서명활동이 국민 운동화 됐다.  결과적으로 당시 국민의 약 절반인 4,000만 명이 서명했으며, 국회에서도 중·참 양원에서 전범 사면결의가 5차례나 이루어져 거의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국내법 해석으로 전범을 범죄자로 보지 않고 '전사', ‘공무사(호적기재는 법무사)'로 정하고 유족들에게 일반 전사자의 유족과 마찬가지로 유족연금이나 조의금을 지급하였다. 결국 일본인 스스로가 전범들에 대한 사면을 원했고 이것이 일본사회의 전쟁책임관이었다.

아베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주일미국대사관 성명

셋째,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는 것은 개인적인 정치적 신념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중국에게 빼앗긴 세계 2위라는 자존심 회복과 러일전쟁 승리 이후 ’1등국‘의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꿈을 정치인들이 군불 때듯 부추기는 것이기도 하다. 아베총리는 2013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때 미국이 표명했던 ‘실망했다’는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치도리가후치’ 참배에 그쳤지만, 그역시 일본인들만이 아는 방식으로 전범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2013년 8월 13일에는 부국강병과 한반도 정벌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의 묘지를 참배해 과거 일본 제국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다는 표현을 간접적으로 나타냈고, 2013년 8월 14일에는 스스로 야스쿠니 신사의 원류라고 주장하는 ‘고토자키 하치만구’를 참배했다. 또 매년 연초 일왕의 조상신을 기리는 ‘보수 성지’인 이세진구(伊勢神宮)를 각료들과 참배하고 있다.

방위성 ‘메모리얼 존’에 위치한 2차대전 핵심 관련자들의 추모비 등 제국군대 유산

한편, 방위성 내에도 추모시설인 ‘메모리얼 존’이 있다. 이는 대외적으로는 경찰예비대로 창설하여 보안대 경비대를 거쳐 현재의 자위대에 이르기까지 순직한 자위대원의 영혼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은 제국 군인의 할복 추모비도 옆에 존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방위성은 ‘메모리얼 존’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 구역에는 2차 대전의 무조건 항복을 극렬하게 반대하면서 본토 결전을 주장하다가 ”나는 천황폐하께 죽음으로써 사죄한다.“는 유언장을 쓰고 자살한 ‘아나미 고레치카(阿南惟幾)’ 육군대신의 다비비(荼毘の碑)와 ‘스기야마 겐(杉山 元)’ 원수, ‘요시모토 데이이치(吉本貞一)’ 육군대장, ‘하루케 마코토(晴気誠)’ 육군소령 등 2차 대전 핵심 관련자들의 자살 추모비가 옆에 있다.
즉, 일본은 전후 청산을 제대로 못하였고, 지금도 그들 다수는 청산을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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