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일본을알자] 포스트 아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1)

정회주 일본지역연구자 승인 2020.09.09 13:42 | 최종 수정 2020.10.01 02:38 의견 0
스가 요시히데 (스가 요시히데 인스타그램)

오는 9월 1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후임이 결정될 예정이다. 형식적으로는 후보가 3명 있지만 사실상 밀실정치에 의한 담합과 파벌에 의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98대 총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3방(三バン)’없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에는 세습의원이라고 불리는 2세 정치인이 많다. 예를 들면 2017년 10월 치른 중의원 선거, 이중 소선거구에서 당선된 자민당 의원 218명중 72명은 세습의원으로 33%에 달한다. ‘じばん(地盤:후원회 조직)’, ‘かんばん(看板:지명도),’ ‘かばん(가방:선거자금)’이라는 3방(三バン)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으면 지역구 선거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스가 요시히데’는 한때 부친이 지방의회(우리 구의회 수준) 의원이었다고는 하지만 ‘3방(三バン)’이 하나도 없다고 할 정도로 맨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지금도 자민당 내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는 무파벌이다. 게다가 ‘스가 요시히데’는 ‘쵸슈(현재의 야마구치현)’의 군대와 맞서 끝까지 대항했던 동북지방 ‘아키타’ 출신이다. ‘초슈’는 아베총리 등 명치유신을 주도했던 핵심세력들의 지역구다. 또한 동북지방은 과거부터 핵심 세력이 될 수 없는 ‘국내 식민지’처럼 취급받아왔다.

그는 딸기재배 농가의 장남으로 살기 싫어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속하는 1967년 도쿄로 집단취직까지 하며 올라왔다. 집단취직이란 중졸 혹은 고졸의 구직자를 도시로 실어 나르는 임시열차를 타고 우에노역에서 내려 염가의 노동력으로 쇼와 30년대를 통해 매년 50만~80만 명이 취직했던 것을 말한다.

그렇게 상경한 후 처음에는 도쿄 골판지 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을 하다가 “이대로 평생 끝내기는 싫다.”라며 노량진 수산시장과 같은 도쿄 ‘쯔키지’ 시장에서 물건을 운반하거나 도쿄의 환락가인 ‘신쥬쿠’ 음식점에서 설거지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험공부를 했다. 그리고 2년이 늦었지만 ‘호세이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세상을 움직이고 싶다며 대학 취업과에 선배 정치인을 소개시켜 달라고 정치에 손을 내민 이후, 11년간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다 요코하마시의 의원 말단 비서생활을 거쳐, 1987년 요코하마 시의에 당선됐고, 1996년 중의원 선거에서 47세의 늦깎이 국회의원으로 데뷔를 했다.

“정치계에 입문하기 까지는 상당히 방황했지만, 입문 후부터는 계속 ‘악셀’을 밟고 있습니다(政治の世界に入るまでは結構ふらふらしていましたけど、入ってからは、ずうっとアクセルを踏んでいます)”

그는 이제 총리가 되면서 농사꾼으로 머무를 뻔 했던 그의 인생에서, 어려웠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