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다’란 ‘샅샅이 더듬어 뒤진다’는 의미입니다. 현업에서 오랫동안 종사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정리해 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제공하고 업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돕고자 실험적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그 첫 번째 제약세일즈 톺아보기는 제약세일즈 분야 20년 경력의 김부장님과 지난 3월부터 15회 이상 진행된 인터뷰를 팟캐스트 형식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특정 제약회사와의 관련성을 배제하기 위해 연재를 마칠 때까지 소속과 실명을 밝히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시사N라이프 윤준식 기자(이하 ‘윤’): 지난 회 긴 시간에 걸쳐 제약 세일즈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첫 방송이라 그런지 이야기가 두서없이 길어진 감도 있습니다. 간추려서 정리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제약 세일즈 김상현 부장(이하 ‘김’): 네. 세일즈 마케팅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팟캐스트를 시작했는데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단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야지만 본인의 마인드셋을 가지고 좀 더 유리한 영업·마케팅을 할 수 있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지난 1편에서 말씀드린 것이 2000년도 의약분업 이후 그리고 ‘활명수’ 시대 이후에 우리나라 제약 산업이라는 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했고요. 국가, 의사단체, 제약회사 삼각구도의 큰 틀안에서 제약 산업이 이뤄져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OTC, ETC에 대해 설명도 했습니다. 이 부분을 다시 말씀드리자면 OTC는 일반의약품을 말합니다. Over the counter Drug라는 말의 약자이고요. ETC는 Ethical the counter Drug라고 하는 말의 약자로 전문의약품을 말합니다. 쉽게 구분하자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약이 OTC 약물이고 처방전이 필요하고 처방전을 가지고 약을 받을 수 있는 것이 ETC 약물입니다.
제약시장을 우리가 ‘파마슈티컬컴퍼니’(Pharmaceutical Company)라고 해서 보통 ‘파마’(Pharma.)라고 많이 부르는데요. 이제 파마 시장이 컨슈머 헬스(Consumer Health) 쪽으로 의미를 폭넓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결국 ‘소비자’가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소비자가 자기 자신을 위한 셀프 메디케이션(Self-Medication)과 셀프 프리벤션(Self-Prevention)도 하고 여러 정보를 얻으면서 더 똑똑해졌다는 얘기를 드렸습니다. 종합건강관리인 셈인데 국가의 정책이기도 합니다. 국가에서 중요한 것은 치료를 서포트 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들이 스스로 질환을 예방할 수 있게 돕는 겁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 개발 같은 것을 국가가 장려하는거죠. 또 금연 캠페인도 그렇습니다. 국가는 흡연으로 발생하는 폐암 치료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 각자 국민 스스로의 셀프 프리벤션(Self-Prevention)이 중요하게 대두됐어요.
다음으로 왜 제약업계에서 신약개발이 중요한가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인도의 결핵 사례를 예로 들었어요.
‘제약 주권’이라는 말을 잠깐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코로나 치료를 위한 백신을 어느 나라가 먼저 개발하고 어느 회사가 판권의 우위권을 가지느냐에 따라 정치·경제적 헤게모니(Hegemony)를 가지게 되는 거거든요. 신약 확보를 통한 국가 경쟁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오픈 이노베이션’(Open-Innovation), 즉 ‘열린 혁신’을 통해 기술적 아이디어나 업계 내 유기적 활동을 통해 지식 재산권을 공유하는 일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 과거에는 기업 R&D만 잘하고 그 R&D로 새로운 신약을 생산해서 자기만의 지적재산권을 갖게 되면 굉장한 우위권을 가지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윤: 그걸 ‘오픈이노베이션’ 한다는 거예요? 열어놓고 개발을 하겠다?
◆김: 네. 사실 과거에는 이런 걸 경영학에서는 ‘폐쇄형 혁신’(Closed-Innovation)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약간 다른 방향으로 역량을 이동하는 걸 ‘아웃소싱’ 개념이라고 하잖아요. 생산 기반이 없을 때 생산 아웃소싱을 주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아웃소싱 하는 혁신을 ‘오픈 이노베이션’의 가장 심플한 사례로 생각할 수 있죠. 지식 독점이 아니라 공유하고 유연하게 서로가 유기적으로 엮이는 거예요.
그런 차원에서 ‘NRDO’라는 말이 있었죠. ‘노 리서치, 디벨로프 온리’(No Research, Develop Only). 그래서 연구개발, 생산, 마케팅, 유통, 영업 등 모든 것을 한 회사에서 하는 게 아니고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면서 경쟁력을 키워주는 NRDO가 최근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윤: 바꿔 말하면 제약 비즈니스가 경쟁형이 아니라 협업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네요.
◆김: 그렇죠. 그런 측면에서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라는 표현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기도 하고요. 국가 대 국가의 콜라보도 있지만 마케팅과 세일즈, 메디컬 부서 간의 유기적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약 회사가 향후에 생존을 위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전편에도 이야기 했었지만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것이 굉장히 추상적이고 실천하기 힘든 부분이예요.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 윈-윈(Win-Win) 하려면 상생 관계구도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 마인드셋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한 건 불과 20년도 안 됐습니다. 과거에는 자신만의 성장이 중요했다면, 이제 ‘에코 시스템’(Ecosystem)처럼 유기적으로 진화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개방할 수밖에 없는거죠.
최근 영업 세일즈 스킬이라든가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보면 가능한 ‘경청’을 많이 하고 상대의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말 많이 하잖아요. 이런 말을 우리가 셀 수 없이 들었는데 이제 회사들도 실천에 옮기는 거예요. 윤 기자님은 제약 회사가 필수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윤: 역시 신약 개발이죠. 획기적인 약이 나오면 그걸 쓸 수밖에 없잖아요.
◆김: 맞습니다. 결국 신약 개발이 회사의 경쟁격이고 국가적으로 ‘제약 주권’이라는 권리를 가진다는 얘기죠. 하지만 신약 개발이 말처럼 쉬울까요? 처음에 신약 물질 찾아 연구하고 임상하고 공정에 맞게 생산해서 국가의 법규에 맞춰 유통할 때까지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려요.
항암제 같은 특수 약물은 보통 20년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연구비용도 ‘조’ 단위가 넘는다고 합니다. 평균 3조라는 관련업계 전문가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그런데 신약 개발에 실패한다면, 회사 입장에서 돈의 문제도 있겠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환자의 생명과 건강과도 연결이 되죠. 그러니까 신약 개발은 제약회사의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지만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일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이들이 살아남으려면 기업의 조직 생태 시스템도 약간 변화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 개발의 위험을 감수하려면 다른 부분에서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신약 개발에만 ‘올인’ 하면 정말 위험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자산 단위나 부서 단위별로 M&A가 많이 이뤄지고 있죠.
또 제품 사이클(제품주기)처럼 약물도 사이클(주기)이 있는데, 쇠퇴기에 있는 약물이지만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약물들은 어느 정도 생산과 재고를 확보해야 돼요. 예를 들어 말라리아 같은 약물이에요. 또 결핵 약물도 그렇죠. 요즘 결핵 많이 안 걸리지만 제약회사가 결핵 약물 생산을 안한다면 그 회사를 윤리적인 기업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윤: 그러면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생산 시설이나 기술을 이전하면서 M&A를 하면 후진국은 더 저렴하게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고 선진국은 계속 R&D가 이뤄지니까 언젠가 다시 이 병이 창궐하게 되면 혜택을 또 받을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M&A가 단순 영리 추구만은 아니다 이렇게 봐야 하는군요.
◆김: 그렇죠. 예를 들어 인도에 조그만 회사가 선진국에 있는 큰 회사에 M&A가 됐다면 최소한 필수 의약품을 편하게 공급받을 수 있잖아요. 우리나라에도 500여개의 제약 회사와 관계기업이 있는데 제조부터 유통까지 모든 단계의 밸류 체인(Value Chain)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최근 제약 기업들은 그런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죠.
일본에 ‘다케다’라는 제약 회사가 있어요. 보통 미국이나 유럽 회사들이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데, 사실 일본도 제약이 굉장히 발달했거든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쇠퇴기에 있는 애매한 포지션의 약물이 있잖아요. ‘다케다’가 그런 비핵심 약물군을 브라질 최대 제약회사인 ‘하이페라’에 매각하는 사례도 있었고요.
‘화이자’의 ‘센트룸’이나 ‘챕스틱’을 만드는 헬스케어 사업부가 있는데 ‘챕스틱’도 최근 ‘글락소’(GSK)와 사업부 합병을 마쳤습니다. ‘글락소’에는 OTC 포트폴리오가 점점 많아지는 건데 그러면 글로벌 마켓 셰어(Market Share)가 커지겠죠. 덩치를 키워 나가는 거예요.
제가 어느 날 동생 화장품을 써봤는데 ‘피지오겔’이라는 상품이 있더라고요. 그게 글락소의 제품인데 LG생활건강에서 글로벌 판권을 인수한 적도 있어요. 또 우리나라에 ‘차앤박’이라고 유명한 피부과 프랜차이즈가 있잖아요. 그걸 인수해서 사업을 넓히는 경우도 있고요. 다양하게 이뤄지는 거죠.
결국 제약 산업뿐만 아니라 지금은 모든 산업 군 자체가 유연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제약 산업이 이렇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제약 영업이나 마케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미시적인 관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는 거죠.
종합해보면 자산, 부서, 제품 단위 별로 M&A를 한다는 것은 시장을 진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파이프라인 별로 객관적 가치 판단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업 영역 자체를 과감히 재편성할 수 있는 모멘텀(momentum)이 되었고, 그런 시대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로 거듭나는 것을 향후 제약 업계 또는 헬스케어 업계에서는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인트벤처, 자회사, NRDO 등 여러 협업 사례가 있습니다.
◇윤: 꼭 M&A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김: 네. 보톡스로 유명한 ‘메디톡스’라는 회사가 있어요. 여기도 메디톡스 벤처 투자 회사를 설립하게 됐죠. 마찬가지로 동아제약도 NS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종근당도 CKD 창업투자 회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제 혼자 뭘 다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윤: 지금 말씀 하신 건 제약 산업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것을 좀 더 제약 세일즈 분야 쪽으로 디테일하게 해 나가야 할 것 같아요.
◆김: 네. 자, 이렇게 큰 회사들의 조직이 발전하면서 영업부나 마케팅도 약간의 변화가 필요하겠죠. 최근에 ‘CSO’(Contracts Sales Organization)라는 단어 들어보셨나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총판’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요. 화장품 총판 회사처럼 판매에 특화됐다는 뜻이고요.
C자가 들어가는 것들은 보통 컨트랙트, 계약이란 단어 들어가죠. ‘3자 영업’이라는 뜻이고, 큰 제약회사로부터 고정비용을 받아서 인력을 꾸려가는 건데요. CSO 자체가 어떻게 보면 어떤 회사의 마케팅과 세일즈를 대행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우리나라는 의약분업 이후에 2001년도부터 많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흔히 “제약업계 그만 두면 CSO 하시면 되겠네요.”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CSO 하면 회사를 생각하는데 한 명이 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
◇윤: 일종의 채널 개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김: 그렇죠. 자기 회사의 영업부를 통해서만 유통하는 게 아니라 일정 비용을 CSO에 지불하고 약물 공급과 관리를 맡기는 거예요. 회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하면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는데요. 그 걸로 일정 부분 회사 매출을 기대할 수도 있고 회사는 신약 연구 개발에 투자를 더 늘릴 수 있게 되죠.
우리가 그걸 ‘3자 영업’ 이라고 많이 하는데요. 하지만 신제품을 CSO에 주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회사 매출에 크게 기여는 하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약물들을 CSO를 통해 시장에 공급하게 됩니다.
CSO의 경우 자체 영업부를 별도 법인 자회사로 만들어 운영하기도 해요. 사실 ‘C’로 시작하는 패밀리들이 좀 많습니다. 생산 대행을 뜻하는 CMO, 개발 대행을 뜻하는 CDO가 있겠죠. 생산과 개발을 대행해주면 CDMO라고도 하고요. 제약 업계 메디컬 부서의 중요한 업무를 대행해 주는 CRO라는 용어도 있어요. 임상을 대행해주는 업체들이죠.
임상 진행을 위해서는 인원이 많이 필요한데, 그때그때 채용했다가 퇴사시킬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연구임상시험 대행업체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CSO가 왜 요즘 이렇게 유독 찬밥 신세냐면 그 이유 중 하나가 리베이트 문제 때문이에요.
굉장히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약물을 회사에서 공급받고 일정의 수수료를 지급받는 경우가 있어요. 그 수수료 자체가 리베이트냐 아니냐의 문제가 관건이예요.
최근 국내 ‘D제약’ 회사도 이것 때문에 소송까지 간 경우가 있는데요. CSO에 이런 애매모호한 그레이(gray) 영역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CSO는 개별사업자인데 이들의 모든 행동을 회사가 다 컨트롤 할 수 없는 입장이거든요.
그런데 일부의 일탈 행위로 인한 문제들이 최근 뉴스에 많이 나오고 하다 보니 CSO가 왠지 좀 나쁜 의미로 퇴색해 보이는 경향이 있어요. CSO는 영업 마케팅의 약간 변형된 패턴이라고 볼 수 있죠. 또 중소회사들의 경우 지역적으로 약간 파워풀하지 않은 경우에 CSO의 도움을 많이 받거든요. 이게 필수 변화 전략은 아니지만 많이 듣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 번 짚어봤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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