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딸(안아와 주아)은 다릅니다
기본적인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너무나 잘 알다시피,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닙니다. 다름은 다양성이고, 차별(Discrimination)이 아니라 차이(difference)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지식은 살아 있는 지식이 아니라 국어 교과서를 읽는 듯한 지식으로 변합니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중국계 미국인)는 <타이거 마더>라는 책에서 두 자녀의 다름을 보여주었습니다. 비교적 순종적이고 성실한 첫째와 비교할 때 독립적이고 반항적인 둘째를 같은 방식으로 다뤘다가 낭패 본 경험담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같은 부모의 자녀지만, 자녀들은 각자 다릅니다. 일란성쌍둥이조차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과학이 밝혀낸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첫째를 키웠던 감성과 스타일을 고수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무지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자녀 양육과 관련해서 대단한 경험이 없음에도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저처럼 무지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부모가 없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첫째에 맞는 자료를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둘째, 셋째가 태어난다면 그에 맞는 학습을 꾸준히 해야만 합니다. 모르면, 경험이 앞섭니다. 그런데 그 경험이라는 게 너무 일천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 수년 동안 만들어진 관성입니다.
물리학 법칙이기도 한 관성의 법칙은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라는 법칙입니다.
즉, 첫째를 키우던 방식으로 둘째를 키우려 하는 것이죠. 다자녀를 둔 부모들은 알겠지만, 태아 때부터 아이들은 다르다고 합니다. 남아와 여아가 다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태어나는 시기도 다르고, 키, 몸무게, 생김새 등 같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제 경험을 떠올려 보면, 안아는 굉장히 예민한 편이었고, 주아는 상대적으로 무난했습니다. 예를 들어 안아는 낮잠을 자더라도 주위 소리에 쉽게 반응했지만, 주아는 잠이 들면 웬만한 소리에는 깨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집 적응도 안아는 여러 주가 걸렸지만, 주아는 신기하게도 하루 만에 적응했습니다.
아이들은 먹는 거, 우는 거, 배설 등 의식주가 필요하다는 게 같을 뿐,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조금씩 다 다릅니다. 그런데, 이런 다름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당연히 아이들도 힘들고 부모도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훈육과 교육이 필요한 시점부터는 더 달라집니다.
셋째, 공동 육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육아는 이후 양육, 훈육, 교육 등에 있어서도 ‘공동’은 기본입니다.
남녀는 다릅니다. 그래서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으로도 남녀의 차이를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치적, 사회적, 이념적으로 성 역할이 관습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걸 부인하기 힘듭니다.
남자는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을 필두로 육아도 공동으로 하되 여성이 ‘주’고 남성은 ‘보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잠재의식 속에 내재돼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일반적인 현재도 그렇고, 미국에서조차도 엄마가 더 많은 가사를 담당한다고 합니다.
엄마가 아빠보다 월등히 잘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 집만 하더라도 아이들과 관련한 부분은 아빠인 제가 더 잘 알고 잘 처리합니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아내가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요. 가정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으니 가사나 육아와 관련한 부분도 획일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공동 육아를 하지 않으면, 한 사람한테 육아가 몰리게 돼 있습니다. 한 명도 어려운 육아가 둘이 되면, 거의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첫째는 정말 세심하게 키우더라도 둘째는 그렇게 키우지 않고 자유롭게 키우지.”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죠.
둘째를 첫째만큼 키울 수 있는 심신이 갖춰지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동’으로 육아한다면 어떨까요? 분명히, 조금 더 행복한 육아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부모의 행복과 아이의 행복 사이의 갈등입니다.
아이가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희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아이들이 성장해서 혼자서 의식주를 해결할 때까지는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줘야 합니다. 그러니 모진 비바람을 아이를 대신해서 맞아주는 것도 당연한 일일입니다.
과거에는 자녀를 잘 돌보고 노후에 자녀들의 효도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족보다 개인이 중요해지면서 결혼도 선호하지 않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딩크족)도 많이 생겼습니다. 혹, 당연히 자녀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했더라도 실제로 육아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본격적으로 육아를 시작하면 자신의 인생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선배 부부는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허니문 베이비’를 가졌는데, 선배의 처가 당황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임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빨리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또 다른 예는 세 자녀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큰아이가 안아와 같은 유치원에 다녔기에 가깝지는 않아도 한두 번 인사를 나눴던 엄마입니다.
유치원 졸업 시즌을 앞두고 수기 공모가 있었는데, 제 수기를 그 엄마가 읽었나 봅니다. 당시 그 아이는 1년 전에 조금 더 타이트한 유치원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제 수기를 어떻게 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타이트한 유치원에 대한 저의 비판적인 의견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마음에 찔렸는지, 거의 일면식도 없는 저에게 전화해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 내용의 핵심을 요약하면,
“당신은 아들 있냐?”
“없어요.”
“아들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 줄 아냐?”
“없으니까, 잘 몰라요.”
“그리고 우리 같은 엄마들이 카페에서 정보 교류를 하는 데 제대로 된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음. 그건 그럴 수 있겠네요.”
아들 키우기가 힘들어서 타이트한 학원으로 보낸 건데, 제가 아들을 안 키워봐서 모르는 내용을 적었다고 불만을 제기한 것입니다. 딸만 둘 있는 제가 아들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면, 큰 싸움이 됐겠지만,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이 키우는 힘든 상황을 호소할 사람이 없어서 애꿎은 저에게 호소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서 안타까웠습니다.
가정에서 공동 육아가 거의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카페에 앉아서 비슷한 상황에 놓인 엄마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아이 돌보기가 힘들어서 더 타이트한 학원으로 보내는 게 정말 좋은 방법일까요? 그 답은 ‘아니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답을 택하는 이유는 엄마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자녀를 위해서 부모가 희생하자 게 아닙니다. 단, 부모의 행복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 추구의 권리가 있습니다. 부모라도 아이의 행복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특히, 자신의 편리와 행복을 위해서 아이의 행복을 저해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변명할 수 있습니다. “다 우리 아이 잘되라고 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걸 어떻게 아냐고? 타이트한 학원에 다니면 아이들한테 좋다는 법칙이 어디 있냐고?”
부모의 행복과 아이의 행복 사이의 갈등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동 육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 좋은 아빠 TIP
1. 아이는 모두 다릅니다. 다르기에 다른 육아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2. 여성이 육아를 주로 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습니다. 상황에 맞게 부부가 잘 나눠서 하면 됩니다. 굳이 경제적인 역할로 나눌 필요 없습니다.
3. 주부가 육아를 전담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주부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때로는 아이들 돌보기보다 부모의 리프레쉬가 더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사설 학원 등에 맡기는 것은 해결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결국, 효율성 부분에서 스스로 자괴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한 방법은 바로 '공동 육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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