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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트렌드] 대세어가 되어 버린 ‘로컬’ - 변화하는 시대상 속에서 의미를 추적해 본다

윤준식 기자 승인 2022.06.25 18:04 의견 0

‘로컬’이라는 단어는 어느 틈엔가 일상적인 언어가 되어버렸다. 최근 로컬이 화두가 된 데는 이미 수년 전부터 ‘O로수길’, ‘O리단길’ 등의 신조어로 표현되는 새로운 골목상권이 등장한 데서 기인한다.

창의적인 소상공인의 등장과 거리의 변화, 상권의 변화 등은 다양한 이해관계자, 산업계와 정부의 관계자들에게까지 새로운 테마가 되었다. 소비가 몰리며 창업이 활성화되니 일자리가 늘고, 쇠퇴된 원도심이 활성화되고, 귀촌희망자가 생기며 인구의 이동이 이루어졌다. 언제부터가 ‘로컬’이란 단어로 우리가 살고 있는, 또는 살고 싶은 곳을 표현하기도 하니, 관계자 사이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바라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uqnyFsHOZg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현재의 로컬을 설명할 수 없다

대체 로컬이 뭐길래 이런 기대감을 갖고 있을까?

우선 사전을 펼쳐 ‘local’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가장 단순한 해석은 ‘지역’, ‘현지’라는 의미로 번역된다. 사전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내가 사는 곳에서 인접한 곳’, ‘전체의 일부’를 뜻한다. 여기서 우리가 사용하는 ‘지방’이라는 의미가 두드러진다. 이 의미는 중앙집권화의 대척점의 개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한편 가장 최근 연구자료로, 지난 2021년 12월 정부연구기관인 <건축공간연구원>이 발행한 『로컬리즘 기반의 중소도시 재생정책 방안』의 서론 부분에 ‘로컬’에 대한 용어정의가 있어 우선 그 내용을 옮겨본다. 연구보고서 속에서도 명쾌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다른 참고문헌을 인용하면서까지 언어의 뉘앙스를 정리하고 있다.

[참고자료] 『로컬리즘 기반의 중소도시 재생정책 방안』 12~13쪽)

로컬은 우리말로 ‘지역’으로 “일정하게 구획된 어느 범위의 토지, 전체 사회를 어떤 특징으로 나눈 일정한 공간영역”으로 정의할 수 있다. 또한 ‘로컬(local)’은 영영 사전에 의하면 살고 있는 지역에 존재하거나 속한 것을 의미한다.

어원으로 보면 로컬은 ‘위치와 관련된 것(pertaining to position)’으로서, 고대 프랑스어와 후기 라틴어 ‘localis’에서 현지로부터 직접 장소와 관련되는 것, 라틴어 ‘Locus’와 같이 ‘a place, spot’을 가리키는 ‘장소’를 뜻하며, 16세기 ‘특정 장소에 국한되는 것(lomited to a particular place)’을 의미한다.

로컬이라는 장소적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제시한 용어인 '로컬리티(locality)'는 지역이라는 장소개념을 반영한 용어이며, 로컬리즘은 이에 따른 지역주의로 정의되고 있다. 특히 로컬리즘은 한영사전의 표현에 따르면 지방적 편협성, 지방주의, 향토주의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에 로컬리즘을 ‘지역주의’로 번역할 경우 ‘지역이기주의’나 지역의 폐쇄성으로 읽혀지는 다소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류석진·조희정·김용복 저 『로컬의 진화』에 따르면 ‘지역’이라는 용어는 “①지역을 기회의 땅이자 피난처로 보는 낭만론, ②지역을 경제발전의 상징인 서울이나 수도권에 대비되는 시골·지방이라는 의미에서의 폄훼론, ③정부의 퍼주기식 사고의 정책지원의 대상인 지역 시혜론, ④서울이 아닌 지역생활권, ⑤성급한 지역 모방론으로 인해 편견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등의 이유로 일반적이고 보편적 의미의 ‘지역’이 중요성이 인지될 때까지 로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로컬의 진화』 15~16쪽에서 인용)

최근 뉴노멀리즘의 경향과 코로나19로 인한 생태환경, 인구밀도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지방중소도시에 대한 관심 증가로 ‘지역’이라는 우리말 대신에 ‘로컬’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최근 뜨는 골목상권 이야기와 ‘로컬’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논의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하이퍼로컬’의 개념을 참고하면 될 듯하다. ‘하이퍼로컬’은 물리적으로 좁고 가까운 영역의 골목상권 이외에도 당근마켓을 필두로 생활편의를 돕는 앱 서비스 등 플랫폼을 통해 재정의되는 상권까지 언급하고 있다.

하이퍼로컬 개념의 등장까지 놓고 본다면, 물리적 공간으로서 로컬의 의미는 넓은 영역에서 출발해 점점 더 협소한 영역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고자료] 해시태그 경제용어 『하이퍼로컬』

하이퍼로컬(hyper-local)은 ‘아주 좁은 범위의 특정 지역에 맞춘’이라는 의미로, 슬리퍼와 같은 편한 복장으로 각종 여가·편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 권역을 뜻하는 신조어 ‘슬세권’과 비슷한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좁아지면서 지역 기반의 하이퍼 로컬 서비스 시장이 급성장했다.

여기에 리커머스(recommerce) 산업의 급성장으로 지역·동네를 기반으로 형성된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이 중고 거래, 지역 정보 교류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과 결합하며 하이퍼 로컬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한경비즈니스 22.03.19.)

◆로컬: 언중이 선택한 언어지만, 자의적인 의미로 쓰인다

지금과 같은 정의와 정리만으로 로컬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기는 어렵다. 언제부터 자연스럽게 일상적 용어가 되어버렸고, 입에 붙는 대로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또한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하고자 하는 취지나 목표점이 다르다.

필자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로컬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언중(言衆; 언어를 사용하는 대중)을 만나 그들이 말하는 맥락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지역자치단체’나 ‘관내’라는 의미를 품은 채 로컬을 말한다. 활동가의 경우 ‘마을’과 ‘공동체’를 의미한다. 창작자는 ‘취향의 공간’, 소상공인은 ‘상권’, 소비자들은 ‘라이프스타일’로 인식하고 있다. 지역가치 창업가로 재정의되고 있는 로컬크리에이터와 그 주변 관계자들은 로컬을 ‘로컬크리에이터가 창조하는 공간과 협업생태계’로 본다.

필자가 추론하기에는, 정의가 명확하지 않음에도 ‘로컬’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은 ①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돌려서 표현하는 우리의 언어관습과 ②되도록 지식수준이 높은 것처럼 보이고 싶은 문화민족의 정서 2가지가 겹쳐진 것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필자의 설명은 조금 전 재인용한 『로컬의 진화』에서 말하는 로컬과 유사하게 보이겠지만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로컬의 진화』는 굳이 무어라 정의내리지 않는 대신 당분간 로컬이라는 말로 설명하겠다“는 취지라서다.

필자의 추측은 사전적인 해석인 ‘지역’, ‘지방’이라는 의미가 지니는 상대성 때문에 상황에 따라 자기규제에서 출발한 금기어로 처리되고 있다는 거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와 대비되는 단어의 의미 때문에 지역과 지방에 살거나 지역과 지방이라 불리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을 피하려다 보니 유사한 단어로 치환해 사용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이런 언어 습관은 고객을 응대하는 영업사원들의 언어행위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된다. 과거 <개그콘서트>의 코너 『생활사투리』처럼 보일 수 있는데 예문을 통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를 테면 외근을 다녀와 상사에게 꾸지람을 맞고 온 영업사원이 다른 부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동료 영업사원에게 “클라이언트(client)와 이슈(issue)가 있었는데 아규(argue)가 길어지는 바람에 본사에서 VOC(voice of custumer_고객의 소리; 고객불만에 대한 응대) 조치가 있었다”라고 말했다면, 이 말은 “오늘 진상고객을 만난 바람에 한바탕 했는데, 결국 진상고객이 상사에게 꼰지르는 바람에 본사에 돌아와서 혼났다”라는 이야기다. 다른 언어로 치환하는 것을 통해 고객이나 자신, 자신과 상사와의 갈등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관계자들에게 세련되게 공유하려는 노력이다.

화살이 과녁 중앙에 꽂힌 것처럼 적확(的確)한 우리말을 찾아내 활용하기 보다는 모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중간계 언어로 어려운 한자어 조합이나, 외래어 또는 외국어 조합을 사용하는 언어습관이 있다는 이야기다. 저개발, 산업 미발전, 소외, 낮은 부가가치 등의 이미지를 지우고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라는 공감대를 갖자는 취지에서 언중 사이에서 ‘로컬’이라는 단어를 등장시켰다고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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