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18년에 『4차 산업혁명과 자치 분권 시대』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벌써 몇년이 지났습니다. 당시에는 수도꼭지만 열면 쏟아지는 물처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대중 매체들을 수도관 삼아 흘러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2018년보다는 덜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계절풍처럼 바람처럼 방송과 지면을 훑고 다닙니다. ‘코로나 시대’ 초기에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세상을 한참 떠들썩하게 하다가 2021년부터는 ‘메타버스(Metaverse)’가 바통을 터치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많이 전달되고, 설명하고, 알려진 4차 산업혁명, 블록체인, 메타버스에 대해 대중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혹은 얼마나 더 알게 됐을까요?
분명 처음 등장 때보다는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은 이에 대해 잘 모릅니다. 심지어 4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을 구분하지도 못합니다.
이런 상황은 일반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홍보하는 여러 매체에서도, 혹은 고등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들 사이에서도 위와 같은 언어 실수는 비일비재한 상황입니다.
필자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왜 이런 실수가 바로 잡히지 않을까?’라는 생각했습니다. 몇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었는데, 우선 알지 못하는 걸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주 들으면 안다고 착각합니다. 왜곡된 정보 속에 노출돼 있으면, 그 정보가 진실인 줄 아는 게 우리 뇌의 수준입니다. 인간의 뇌는 ‘아는 척 작동’ 원리가 있다고 합니다.
뇌 과학자 김대수 교수는 저서 『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에서 뇌의 4가지 원리를 설명합니다. 첫째 원리로 ‘정보 최소량의 법칙’이 있습니다. 제한된 에너지로 지식을 습득해야 하기 때문에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중심으로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원리는 ‘본능 연결의 법칙’입니다. 예를 들어 이성을 보고 두근거렸다는 걸로 상대를 좋아한다고 확신하는 것 등과 같은 현상입니다. 셋째로 ‘일반화의 법칙’입니다. 일부 정보만 활용해서 전체를 그려내는 것이죠. ‘패턴완성(pattern completion)’이라고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조화의 법칙’입니다. 누군가가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진실 여부를 떠나 동의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죠.
이런 뇌의 ‘아는 척 원리’로 인해서 계속해서 관련한 정보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있으면, 대충 알 거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알 것 같다고 느끼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은 확실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미국 록 밴드 ‘본 조비(Bon Jovi)’를 좋아합니다. 1994년에 ‘always’라는 곡을 듣자마자, 팬이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를 수백 번 들었습니다. 그쯤 들으면 외울 법도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영어를 듣기만한다고 해서 외울 수 있다면 그야말로 천재적인 언어감각이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결국 가사를 보고 집중해서 외우니 그제야 제대로 외울 수 있었습니다.
대중가요도 그렇습니다. 국어로 돼 있다고 해서 듣기만 한다고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수학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답을 보면 알 것 같지만 유사한 문제를 다시 풀어보면, 잘 풀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공식을 외우고 꾸준히 응용문제를 계속 풀어봐야 진짜로 풀 수 있는 실력이 생기는 것이죠.
4차 산업혁명,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과 관련한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들어 봤어도 실제로 여러 가지 방법–인터넷, 백과사전, 도서 등으로 학습하지 않으면, ‘찐’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는 당장 신상에 큰 변화가 없으니, 특히 학업이나 직장 생활에 관련 없는 일이니 애써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혹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잠시 마음 한 구석으로 치워 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대중매체 등에서 중요하다고 떠들어도 ‘소귀에 경 읽기’가 되는 것이죠. 그러면 정말 조지 오웰에의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말’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패션 트렌드에는 그렇게 열성적으로 반응함에도, 미래 삶과 관련한 일에는 대범하게 무관심합니다. ‘카르페디엠(Carpe diem)’이나 ‘YOLO(You only live once)’를 추구하는 것일까요?
1994년에 뱀파이어 영화의 수작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상영됐습니다. 뱀파이어는 영생을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스스로 생명을 끊는 뱀파이어가 등장합니다. 이유는 ‘부적응’이었습니다. 수백 년을 넘게 살다보니, 뱀파이어의 머리가 현실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것이죠. 결국, 강한 뱀파이어는 시대의 변화에 잘 적응할 능력을 갖춘 뱀파이어였습니다.
현재 60~70대의 어르신들을 예시로 들어 보겠습니다. 그분들이 40~50대였을 때(90년대 중 후반) PC(Personal Computer)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인터넷이 확대 정착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40 - 50대들은 나름대로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대체로 정년이 보장됐고요. 아울러 기대 수명도 80세에 못 미쳤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기기의 발전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아도 정년 이후의 삶이 길지 않았으니, 큰 불편 없이 남은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죠.
그러나 현재는 어떤가요? 일흔을 넘기고 여든을 넘긴 어르신들, 위에서 언급한 40~50대의 기대 수명이 90세에 육박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늘어 날 전망입니다. 그리고 이분들도 스마트폰을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생활하십니다. 그리고 중년 시절에 간과했던, 기술의 발전을 잘 따라가지 못해서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말할 때 약자가 됐습니다.
앞으로 기술은 ‘무어의 법칙’을 크게 거스르지 않고 계속 발전할 것이고, 인간의 수명도 더 늘어납니다. 아픈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데, 의학이 발전해서 아픈 몸을 쉽게 치료해줍니다. 그래서 과거보다 건강하고 더 오래 살 수 있는 육체적 조건을 갖췄지만, 인지능력이 세상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자신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세상에서 ‘낙오’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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